플랜 C 또는 통계에 속지 마라
할아버지는 오직 서당공부를 15년 하셨고, 아편장사를 9년 하셨고, 훈장을 15년 하셨다. 나머지 인생은 장손 뒷바라지 하시느라 할머니는 자동으로 따라오라고 해서 중, 고 6년에 재수, 삼수, 대학 1, 2학년을 뒷바라지해주셨다. 3, 4학년은 작은 여동생이 공부를 잘해서 서울 S는 아니더라도 K, Y정도는 갈 실력인데, 오빠와 남동생 밥을 해주면서 공부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청주에 있는 대학 지원했다. 4년 장학생으로 뽑혔다. 여동생은 억울했지만 참고 공부하고 막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청주서 지내다가 막내가 대학생이 되자마자 결혼했다.
중학 3년 고등학교 3년 동안 정말 늦잠 자서 아침도 못 먹고 헐레벌떡 학교 간 일이 6번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때마다 지팡이 짚고, 도시락 들고 교실문을 노크도 없이 여셨다. 한동훈이 윤석열에게 90도 폴더 인사하는 각도 보다 5도 아래로 선생님께 인사를 하셨다.
선생님, 이거 죄송합니다. 수업 중에는 대통령도 교실문 열면 안 된다는 거 알지만 이 시간에 다카키 마사오가 대방동에 올 일도 없고, 수업이 몇 분에 끝나는지도 몰라 무례하게 문을 열였습니다.
우리 함 씨 집안 장손 점심 굶으면 안 됩니다 하시면서 선생님께 도시락을 주고, 역시 폴더 인사를 하고 가셨다.
나는 왜 할아버지가 도시락을 가지고 오게 하냐고 플라스틱 자로 손바닥을 몇 대 맞고 도시락을 받았다. 고등학교 흑석동에서도 그랬다. 학교를 졸업한 지 46년이 되어도 동창 모임 가면 할아버지 도시락으로 친구들이 기억한다.
수학시간 통계 배울 때 할아버지는 통계를 배운 적이 없는 분이 통계에 속지 마라라고 하셨다. 내 죽고 난 30년 후에 통계로 장난질 치는 천자문도 모르는 연놈들이 세상을 어지럽힐 것이다. 장손은 글로 그런 것에 속지 않는 글을 쓰라고 하셨다. 독자 여러분! 작가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걸히더라도 이말은 꼭 하고 싶었습니다. 검찰 이놈들이 왜 명태를 풀었을까?다시 한번 통계 조작으로 김문수를 이재명 보다 1-2%앞서는 여론 만들라고 풀어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