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이야기
요즘이야 군대 투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통제 하여 설치한 군부대 가까운 기표소에서 투표를 한다.
1987년 대통령선거 때 일이다. 연초부터 박종철 고문치사 관련 네 컷 만화에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전두환이 <4.13 조치>라는 것을 발표해 전국은 대통령선거 직선제 쟁취를 위한 데모를 했다.
전국 육, 해, 공군 소대장에게 <4.13 조치와 우리의 자세>라는 노란색 미니 책자가 지급되었다. 이것을 소대원에게 교육시키라고 했다. 교육이 아니라 북한에 김일성 항일로 작선집 암기나 10대 강령 암기하듯 세뇌교육시켜 대대장, 연대장, 사단 참모가 순찰 돌며 만나는 병사 지적하면 총알 같은 답변을 하게 했다. 답변 잘하면 포상휴가증이 쥐어주고, 답변 못하면 소대장이 교육 못한 것이 되어 문책한다고 했다. 요즘이야, 고3학생 수보다 대학 정원이 더 많은 세상이지만 그 시절은 소대원 30명 중에 대학 재학 중 입대한 병사가 채 10명도 안되던 시절이다. 데모로 유명한 서울대, 고려대, 한국신학대, 조선대, 전남대 출신이 교육을 하고 나니 손을 들고 질문했다. 오늘 교육한 내용 소대장님 진심인가요?라고 서울대 출신이 물었다. 군대는 거시기로 거시기를 까라고 하면 까면 된다. 진심은 없다. 소대장이 차인 여자 이름이 김진심이다라고 했다. 한국신학대 출신은 오늘 교육하신 내용은 고뇌에 찬 결단도 아니고 총칼로 정권탈취한 전두환이 직접 선거로는 정권 날아갈 것 같으니까 궁여지책으로 군부독재를 연장시키려는 음모로고 생각되는데, 소대장님 생각을 알고 싶다고 했다. 소대장도 생각은 너와 같다. 하지만 수시로 기무반장이 소초를 돌아다니면서 동향파악을 한다. 거기에 유 병장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유 병장 잡혀가고, 소대장 부소대장은 교육 잘못시킨 죄로 잡혀간다. 더럽더라도 군복 입은 동안은 소대장 말씀을 하느님 말씀으로 암기하기 바란다. 제대하고 민간인 신분이 되면 대학교에서 시청에서 심지어 청와대에 짱돌이나 화염병을 던져도 소대장이 잘했다. 역시 함문평 소대원이야 해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 병사들이 그날 밤 사단 인사참모, 연대장, 연대정훈장교, 대대장, 부연대장이 돌면서 4.13에 대한 질문을 얼마나 답변을 잘했는지 5명이 휴가증을 들고 소초로 들어왔다. 전부 휴가 보내면 근무조 짝이 안 나온다고 휴가 나누어 보낸다고 하니 중대장은 순찰 소대장, 부소대장 혼자 돌고 전령도 근무시키라고 했다. 답변 잘한 병사는 휴가 보냈고, 순찰 혼자 돌고, 전령을 철책 근무에 투입시켰다.
6월이 되니 전국 데모는 심해지고 수방사로 중위가 전출 명령이 났다. 군번 86-03727 중위 함문평, 명. 수방사 보. 소대장 요원
미친놈들이지 소대장 잘하는 중위를 또 소대장으로 쓸 거면 그냥 두지 왜 장기판 졸처럼 이동시킬까? 입이 한발 나와 대대장, 연대장 전출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고 두 분은 똑같은 말씀을 했다. 함 중위 소대장 잘하게 두지 수방사로 소대장 요원으로 뽑아가는 것을 보니 혹시 계엄 소대장으로 탱크 한대 배속받아 대학을 점령할지 모르겠다. 절대로 병사가 시민이나 학생에게 직접 대응하지 못하게 하고, 함 중위 상식과 도덕에 맞게 처신하라고 하셨다.
겁먹고 수방사 지금 사라진 중구 필동에 등록하고, 북한산 자락 보충대에서 대기하면서 전입장교 교육받는 동안 6.29 선언으로 계엄소대장 아닌 56사단 신병교육대 중위 교관 겸 인사장교가 되었다. 훈련병 600명에 대한 부재자 신고를 했다. 기간병에 대한 부재자 신고도 했다. 600명 훈련병 부재자는 반송이 없었는데, 기간병 47명 중 반송이 3개나 되었다. 모두 해태타이거즈 응원지역이었다. 광주, 목포, 무안 각 1명 부재자신고 반송으로 나는 기무부대 방첩과장에게 혼나고 대대장은 기무부대장에게 혼났다. 혼나고 돌아오는 지프차 속에서 대대장이 하는 말 야, 함 중위 훈련병 600명은 이상 없이 체크하고, 기간병 47명을 허술하게 했냐? 고 물었다. 허술하게 한 것이 아니고 등본을 받은 후에 본가가 이사를 해서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왔습니다.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