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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의 추억. 50

(고) 문선명 총재와 나의 할아버지

by 함문평

(고) 문선명 총재 우리 고교 선배


1982년 교육사회학 시간이었다. 교수님이 강의실에 오더니 우리나라 사람으로 미국에 가서 백인에게 굽신거리지 않고 백인, 흑인, 황인 전 세계 남녀 결혼을 6천 쌍, 1만 2천 상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 질문에 혼자 손을 들었다.

문선명 통일교 총재라고 대답했다. 교수는 왜 문선명 교주라고 하지 않고 총재냐? 물었다. 교주는 왠지 이단종교 같고, 총재는 인간조직의 맨 윗자리 같은 느낌이 들어서 총재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교수는 교육사회학 사범대에서 몇 년 동안 첫 시간은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처음 자기 마음에 드는 답변이라고, 그 시절 한창 인기리에 팔리던 <학교는 죽었다>를 주셨다.

다른 학생은 그 책을 사거나 도서관서 빌려 리포트를 써야 하는데, 교수에게 책을 받아 다른 학생의 시기, 질투, 부러움을 받았다.


사실 고등학생시절 여름 방학에 흑석동 명수대 초등학교 길 건너 있던 통일교 교회에 교리 공부 한 달 했었다. 그때 교리 공부 담당 전도사가 고등학교 선배였다. 선배 말이 통일교 문선명 총재도 선배라고 했다.


우리는 인문고교였는데, 전신은 낙양상고였고, 일본 강점기 시절은 경성상공실무학교였다. 광복 이후 임영신이 상공부 장관도 하고, 이승만에게 잘 보여 중앙대학교도 만들고, 중대부속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 대학원으로 주식회사처럼 학교를 문어발로 키웠다. 일단 좋고 나쁘고 가치판단 이전에 총재가 학교 선배고, 가르치는 전도사가 선배라 빠져들 법했다. 할아버지가 교리공부 노트를 보시더니, 내가 태어날 무렵 아버지가 통일교에 빠져 완전히 문선명 다음 박보희와 늘 붙어 다니는 네 아비를 떼어놓기 위해 무척 고생했다. 종교는 자유지만 지금은 대학준비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통일교 교리반을 끊으라고 하셨다. 그런 교리는 대학생이 되고, 한자 공부를 좀 더 해서 문선명이 쓴 원리강론, 원리해석 초판본 국한문 혼용으로 된 것을 옥편 없이 읽을 실력 되면 구태여 허접한 교리공부에 시간 보내지 말고, 장손 나의 장손답게 세상을 살라고 하셨다.

대학생이 되고 5 공시절, 수업 반 휴강 반 시절 리포트를 쓰고 남는 시간에 대학도서관에서 국한문혼용체 원리해석을 첫 장부터 마지막 값이 얼마 인가까지 다 읽었다.

오는 12월이면 장손밖에 모르고 오직 당신의 전재산 한우 99마리를 장손에게만 팔아 쓰신 할아버지 가신지 30년이 된다. 할아버지 산소에 근사한 소설 한 권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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