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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의 추억. 55

장남만 동문 아닌 사연

by 함문평

어머니는 윤대통령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윤기중 교수보다 한 시간 늦게 돌아가셨다.

살아계실 때도 3남 2녀가 전국에 흩어져 살아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다.

월부터 금요일이 기일이면 직장서 눈치 보느라 휴가, 연차, 월차도 제대로 못 낼 자식들을 생각해 눈치 볼 필요 없이 쉬는 날 광복절에 돌아가셨다.


다 모여 밤에 제사를 지내고, 음복을 했다. 어머니와 동생이 통화한 것을 자동녹음으로 녹음한 것을 들려주었다.

몇 분 통화에 장남 걱정하는 장남 이름을 30번이 넘게 나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두 여동생과 두 남동생이 나를 성토했다.

어린 시절은 장남, 장손으로 태어나 어머니가 싸리나무 회초리를 들면 할아버지, 할머니, 시집가기 전 고모, 장가가기 전 막내 삼촌 중에 아무에게 달려갔다.

그러면 싸리나무 회초리 어머니의 무기도 무용지물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여름방학 공통숙제가 학교퇴비장에 퇴비 한 단씩을 제출했다. 학년 가장 높은 5학년 장남 퇴비는 아버지가 낫만 들고 학교 뒷산에 가서 베었다. 5학년 1반 함문평이라고 학교 소사가 들고 있는 장부에 기록하고 퇴비 한단을 던지고 집으로 오셨다. 3학년 경희, 1학년 경화는 여자가 스스로 퇴비를 제출했다. 6학년이 되자 장손은 서울로 전학을 했다. 요즘은 서울도 학생이 줄어 초등학교 폐교가 늘지만 1973년 전학 온 서울대방초등학교는 6학년 8반까지는 남자반 9반부터 15반까지는 여자반이다.

전학 와서 77번이 되었는데 9반부터 15반 77번은 키가 나의 어머니 키보다 더 컸다.

지금은 사라진 농구부가 있어 77번은 거의 농구선수였다.

점심시간에 음악이 나오면 가장 먼저 나오는 음악에 6학년이 1반이 1번부터 77까지 번호순으로 서면 9반이 짝으로 번호순으로 서고, 2반이 서고 나면 10반이 그렇게 반을 바꾸어가면서 점심시간에 포크댄스를 하였다.

그 시절은 쥐 잡는 날은 쥐를 잡았다고 쥐꼬리를 잘라 비닐봉지에 담아 제출하기도 하고, 송충이 잡는 날은 6학년은 공군사관학교, 5학년은 관악산으로 가서 송충이를 잡았다. 개인이 10마리를 잡아 선생님 서계신 곳 삽으로 구덩이 판 곳에 보여드리고 송충이를 구덩이에 던지고 집으로 갔다. 남학생은 금세 잡아 제출했지만 여학생은 아주 강심장 빼고는 저학년 시절 짝인 남학생에게 부탁해 제출했다. 6학년으로 전학 온 나는 9반부터 15반 77번을 위해 70마리를 잡고 큰소리로 외쳤다. 드라마 <허준>에서 임현식 배우가 줄을 서시오~하는 대사처럼 9반부터 15반 77번은 줄을 서시오~외쳤다. 그날 나는 77번 어린 아가씨의 구세주였다. 세월이 흘러 졸업 50주년 행사에 갔다. 그렇게 커 보였던 77번 여자애들이 모두 나보다 키가 작았다. 그녀들은 나를 보자마자 송충이! 했다.

두 여동생, 두 남동생은 모두 강림초등학고, 강림중학교 동문이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근조화환이 강림초, 강림중 동기회 일동이 줄을 섰다. 서울대방초등학교, 서울성남중학교, 중대부속고등학교 근조기, 근조화에 시골 이웃에서 문상온 분들이 서울이름이 달린 근조화를 보고 동생들에게 물었다. 누가 서울서 학교 다녔냐? 물음에 장남이라고 대답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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