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이야기
장남이자 장손이라는 이유로 정말 금이야 옥이야 컸다.
어려서는 사리 분별없이 할아버지가 장손이라고 모든 태클을 막아주셨다.
어린 시절 우리 집안 담배 피우는 수준은 전매청장 표창감이었다. 할아버지 2갑, 할머니 1갑, 아버지, 작은아버지 2갑, 고모부 1.5갑, 고모 1갑, 막내삼촌 1갑이었다.
작은 아버지는 중사, 고모부는 상사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요즘이야 원사가 있어 상사로 무공세우면 원사 특진이 있는데, 그 시절은 상사가 끝이고 준위는 시험을 봐야 했다.
월남전에서 무공을 세워 작은 아버지는 중사에서 상사 특진을 했고, 고무부는 상사라 그냥 무공훈장과 주월사령관 부상이 끝이었다. 월남서 한국군 철수를 했다. 새로 배치된 부대로 가기 전 휴가 5일에 강림 촌구석에 월남전 참전유공자가 할아버지께 인사를 왔다. 월남전에서 는 것은 담배라고, 할아버지, 고모부, 작은 아버지가 하루 담배 2갑을 피웠다.
고모부, 작은아버지가 귀국하면서 가져온 것은 일종의 군용 물 유출인데, 씨레이션, 고무보트, 크래커였다. 그 시절 헌병 인원이 부족해서인지 횡성군 강림 촌구석에 씨레이션을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리장에게 마씀드리고 크래커를 터뜨릴 것이니 고기 담을 그릇을 들고 합수소로 모이라고 방송을 했다. 정말 월남전서 쓰다 남은 크래커 위력은 엄청났다. 쾅! 쾅! 두발을 터뜨리니 합수소 물고기가 모두 기절해 하얗게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으로 낚시, 그물 말고 그냥 바구니를 들고 와 고기를 주워 담는 경험을 했다.
세월이 흘러 서울로 전학을 하고 중학생이 되었다. 교복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고 담임에게 슬리퍼로 맞았다. 그 일로 하루 담배 2갑 피우는 할아버지, 아버지, 작은 아버지 아래 자란 장손, 장조카는 담배를 못 피운다. 내 동생, 4촌 동생 모두 담배 없이는 못 산다. 명절에 모이면 제수씨들은 자기 남편에게 큰 형님처럼 담배 끊고 살라고 한다. 그녀들은 나의 중학입학식 후 슬리퍼로 맞은 사연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