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응석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 중에 오늘 이 시점에 딱 맞는 이야기 한마디 하겠다.
할아버지가 4수 시키려고 횡성한우 4마리 판 돈을 농협통장에 넣어 할아버지 신분증, 통장, 도장을 주셨다.
요즘 젊은것들은 카드만 주지 뭐 그렇게 다 주냐? 하겠지만 1982년은 요즘처럼 스마트뱅킹, 폰뱅킹이 없었다.
대학 입학식을 마치고 식당에서 하신 말씀이 대학이라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겠지만 서양의 학문은 쪼개고 쪼개는 학문이고 동양학문은 통합의 학문이라고 하셨다.
어떻게 직업을 얻기 위해 사법고시, 행정고시, 기술고시에 합격하지만 인성이 바르지 못하면 사악한 것에 빠질 수 있다고 하셨다.
그 사악함이 건진에게 압수한 관봉 돈다발을 증거인멸한 신응석 전 남부지검장이 한 예라고 말할 수 있다.
사법시험 기수로 윤석열 한참 아래가 윤 눈에 들기 위해 헌법정신, 법학공부의 기본, 인의예지신 다 무시하고 오직 김건희, 건진, 윤석열에게 잘 보이면 차후 보직과 승진이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관봉 띠지를 제거하라고 하급 검찰직원에게 명령했다.
1982년 교육학 개론 시간에 고인이 되신 박화엽 교수가 한 말이 여러분은 멋진 선생님이 되고자 사범대학교에 왔지만 이 교육학 개론 시간에 꿈깨라고 했다.
여러분이 아무리 제자에게 열성을 다해 가르쳐도 교육으로 될 것이 있고, 죽을 때까지 교육을 해도 안 되는 것은 안된다.
한두 번 수업 시간에 말해도 안 되는 것이다. 빨리 포기하고 미련 없이 다른 교육을 하라고 하셨다.
다 인연이 있다. 그분은 원래 서울대학교 사범대 교육학 교수였는데, 전두환이 등극 시기에 뭔가 미운털이 찍혀 서울대교수 재임용에 탈락했다.
하는 수 없이 무심천강변 사범대로 좌찬성 교수가 되었다. 작가가 서울대 못 가고, 3수 해서 지방 사범대간 것도 전두환이 징집 나이를 줄여 4수 실탄을 할아버지가 마련한 상태서 4수 못하고, 미아리 만신이 점지한 곳에 원서 내고 100% 합격했다.
서울대를 안 가고도 서울대 전직 교수 강의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부가적으로 박화엽 속독법으로 속독법을 익혀 졸업 전에 도서관 책 일만 권을 읽고 졸업하려고 했으나 ROTC로 선배들 갈굼과 군사훈련으로 6천 권만 읽고 졸업했다.
신응석 떠나간 남부지검장은 건진에게 압수한 고인봉 돈다발 띠지 제거 경위를 이실직고하라. 솔직히 네가 말 안해도 1982년 교육심리 배운 실력으로 말하자면 윤석열 사단에 거의 꼬랑지 기수로 윤과 김건희 건진에게 잘보여 검사장 빨리 달고 싶어 그랬지? 아니면 작가를 고발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