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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의 추억. 61

충성!

by 함문평

작가는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리 출신이다. 태어나기는 강림서 태어났으나 같은 횡성군내 청일면 유동리 버들골 작은 도서관 근처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장손이라고 젖을 떼자마자 데려다 키웠다. 그러다 학교길 나이가 되어 강림으로 왔다. 검정고무신 두 개 연결해 기차놀이를 함께하던 길수, 인수, 창열이가 1학년에 입학했다. 심심한 것과 중학생이 되면 고무신으로 기차놀이 함께 한 애들에게 충성! 거수경례하는 것이 싫었다. 할아버지를 졸라 입학식이 3주 정도 지난 후에 1학년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충성! 은 국가에 대한 충성이었다. 그것이 조폭으로 가서 보스에 대한 충성으로 변질되더니 정치권에서도 당수에 대한 충성이 되었다.

70년대에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오자 원로 정치인들이 김영삼 김대중에게 구상유취라고 했다. 역사에 가정법이 없지만 그 시절 김대중, 김영삼이 40대에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었을까는 아무도 모른다. 김영삼도 김대중도 다 늙어 대통령이 되었다. 그래도 김영삼은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로 나라가 악의구렁텅이에서 구했다. 김대중은 정보통신망을 청와대나 인제 원통이나 하의도나 같은 속도로 깔아주시오라고 체신부에서 정보통신부로 명칭이 변경된 장관에게 지시했다. 한강대교 북단 그 시절 데이콤 건물에서 대통령이 직접 컴퓨터 앞에서 천리안인지하는 통신망 수업을 받았다. 나의 중학동창 몇 명도 대통령 뒷줄에서 공부했다. 대학시절 일문과 영문과 출신이 인터넷공부를 하고 일본으로 영국으로 갔다. 거기서 글로벌회사 임원을 역임하고 은퇴했다. 작가가 중학졸업동기 총무를 8년 하다 보니, 모임서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한다.

충성! 이것은 개인이 개인에게 쓸 말은 아니다. 권성동이가 구속되자 그 아내가 김혜경 여사를 찾아가 남편만 뺘주면 사모님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한다. 충성이 객지서 고생이 많다. 윤석열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멋진 말을 하고 자기는 후배 검사들이 윤석열에게 충성을 바랐고, 김상민 까라 몇몇이 충성을 객지서 고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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