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뎐. 78
할아버지는 30년 전에 돌아가셨다.
나의 첫애가 딸이었다. 할아버지는 기장미역이 최고라고 미역과 쇠고기 두 근을 사 오셨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세상에 크산티페에게 아기 낳느라 수고 많았다.
미역과 쇠고기로 국 잘 끓여주라고 하시고, 이왕이면 둘째는 손자를 낳으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크산티페가 들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에게는 훌륭한 할아버지였지만 아내는 손자 부담 주는 시조부였다.
세월이 흘러 1995년 아내는 임신 마지막달 성애병원 산부인과 의사가 아기는 정상인데 예정 출산일보다 빠를 수도 있으니 장거리 여행은 하지 마라 산통이 오면 바로 성애병원으로 달려올 거리에 있으라고 했다.
전방부대로 관보가 왔다.
<조부사망 급래요망> 관보소식을 처가에 전화했더니, 먼저 알고 계계셨다.
장인이 크산티패를 태워 장례식장으로 갔고, 나도 전방서 고향으로 갔다.
할아버지를 선산에 묻고 바로 서울로 올라와 아내는 몸을 풀었다. 할아버지가 바라던 증손자를 보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아들이 뱃속에 있을 때 전방 관사까지 오셔서 하신 말씀이 나라가 점점 천박한 자본주의에 물들어 30년 후에는 서울 조선시대 문화유직을 죄다 콘크리트 건물이 가로막을 것이다라고 했다.
요즘 오세훈 무식한 놈이 개발을 앞세워 사대문 안에 몇십 층 호텔 건립을 추진한다는 뉴스를 보고 소름 돋았다.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12월 12일 막걸리 한병들고 횡성에 내려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