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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직구 5.18

06. 훈장

by 함문평

군대에서 훈장은 귀중한 것이고 대대로 가보로 물려줄 만한 것이다. 훈장이 훈장답지 못한 때가 있었다.


광주사태가 진압되자 육군본부인사참모부에 훈장 포장에 대한 공적조서 지시가 내려왔다.


훈장 포장 내역의 일부다.


계급과 성만 표시하고 직책과 서훈 등급만 나열해 본다.


이유는 우리나라 법이 개불알 같아서 뭐 사실을 사실 대로 말해도 죄가 되는 사실적시 명예 훼손법이 있다고 법을 전공한 후배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이 후배는 변호사인데 안덕영 간첩조작 사건으로 서초동 법원에서 만났다.


안덕영이 간첩이더라도 안덕영은 간첩이다라고 말하면 법에 걸린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나참 ㄴㄱㅁ 거시기 같아서.....


특전사령관 정호용에게 충무무공훈장,


20 사단장 박준병 충무무공훈장,


제3공수여단장 최 세창에게 충무무공훈장,


11 공수여단 차정환 소령에게 화랑무공훈장,


11 공수여단 변상진 소령 화랑무공훈장,


7 공수여단 최연인중 위 화랑무공훈장,


11 공수여단 조청구 중령 화랑무공훈장,


7 공수여단 대위 박병수 화랑무공훈장,


11 공수여단 김태룡 대위 화랑무공훈장,


11 공수여단 김석찬 대위 화랑무공훈장. (이하생략)




국군광주통합병원장 김 모 대령에게 보국훈장삼일장 등이 초안이 되어 육군본부 인사참모차장에게 전달되었다.


그 당시 인사참모부 차장은 박경석 준장이었는데 전두환과 박경석은 월남전 참전했다.


박경석은 베트남전쟁에서 훈장을 많이 받았다. 월남전에서 완전철수 후 전두환은 술만 마시면 자기도 월남전 참전유공자인데 박경석은 무공훈장이 왜 그렇게 많으냐? 고 투덜거렸다.


박 준장은 위 이름에 나오는 자들에게 훈장을 수여되게 했으면 별 둘이 될 수도 있었지만 훈장은 적과 싸워 무공이 있는 자에게 수여하는 것이지 광주의 데모를 평정했다고 훈장을 주는 심사는 사양한다고 전역을 했다.


결국 후임자가 훈장 공적조서를 만들어 수여되었다. 세월이 흘러 여의도 국회가 여소야대 시기에 훈장이 삭탈되었다.


여기서 다음 카페에 박경석의 글 일부를 소개한다. (전두환과 나에서 인용)


진해 욱군 대학에서 전두환은 박경석을 껄끄럽게 보면서도 그의 경력과 업적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는 대범한 모습을 보이는 척했지만 내면으로는 그를 늘 질시하며 경계했다.


육군대학을 졸업 후 훗날 이야기지만 전두환은 자기도 베트남전에 참전했는데 박경석은 웬놈의 무공훈장이 그렇게 많으냐고 술만 마시면 투덜댔다.


박경석이 잠시 전두환 보다 앞섰던 시절이 있었는데 육군본부 인사운영 감실 대령과장 시절이었다.


그는 몇 달 후면 장군진급이 예약된 정황이었고 전두환 대령은 2년 후부터 장군 진급 대상이었다.


어느 날 사무실에 찾아와 간곡히 저녁 식사 대접을 한다기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따라나섰는데 도착해 보니 어마 어마한 요정이었다.


아마 생애 최고 식사 장소로 기억된다. 무른 미녀들의 시중은 영화에서나 볼 정도의 요염 그 자체였다.


박경석은 전두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그 요정을 벗어났다.


몇 개월이 지났다. 장군 진급 1순위라던 박경석은 진급 명단에 없었다.


다음 해도 없었고 전역을 앞둔 선임 대령이 되었다.


12.12 군사반란 후 쿠데타에 성공 대통령이 된 전두환과 준장 박경석이 경회루 축하연에 시 만났다.


전두환은 놀란 기색으로 아직도 준장이네요? 했다.


며칠 후 육군 소장 직위인 육본 인사참모부 차장이 되었다.


영전인 줄 알았더니 함정이었다.


당연직인 육군 공적심사위원장으로 저 위에 열거한 12.12와 5.18 유공자 훈장 포장 공적심사를 하라는 것이었지.


박경석은 반란군에게 무공훈장을 수여 결정으로 역사의 죄인이 될 수 없었다고 한다.

정호용 등 그때 훈장 받은 군인들은 세월이 흘러 정권이 바뀌고 여소야대 국회가 되었을 때 훈장이 삭탈되었다.


내가 통일전망대를 중심으로 10여 킬로미터를 경계하는 중대장 시절 경험담이다. 민간인 어선 한 척이 어로 한계선을 넘어 북상했다.


신호탄 공포탄 실탄 사격을 해도 소용이 없어서 106미리 무반동총 사격을 건의 승인을 받았다.


통일전망대 고가초소 아래 106미리 진지로 대대장, 부대대장이 출동하여 나의 사격을 지켜보고 있었다.


106미리 분대장이 사격 준비를 완료하고 보고를 했다. 사격제원을 명중으로 맞추었냐?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분대장에게 저건 월북인지 아닌지 모를 때는 일단 월북 아닌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줄이기 십 미터 해서 탄이 배 후미로 들어가 수압에 의해 앞으로 튀어 오르는 물기둥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중대장님!

차라리 명중해서 훈장을 받는 것이 편하지 후미로 쏴서 북으로 도망가면 우린 다 처벌받습니다라고 했다.

처벌은 중대장 이상 계급만 받게 할 테니 후미를 조준하고 줄이기 10 사격 개시!

사격 제원 수정한다. 줄이기 십!

줄이기 십!

발사! 발사!

정말 신기할 정도로 106미리 고폭탄이 배 후미로 들어가 배 앞에 물기둥이 솟구쳤다.

놀란 사공이 뱃머리를 서서히 돌리고 자기 러닝을 벗어 흔들었다. 더 이상 쏘지 마리는 신호였다.


명파 어촌계로 연행해서 거진경찰서 정보과장

우리 부대 지윈 기무반장, 국가정보원 속초 파견관, 정보사령부 신문기정팀장이 달려와 합동신문을 했다.


윌북 기도는 없었고 배를 수리하는 것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 화가 나서 배에서 술을 마시고 조타키를 잠시 고정에 두고 잠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입회했던 대대장, 부대대장은 명중했으면 무공훈장이라고 했다.


민간인을 뻔히 아는데 막말로 수장시키고 훈장을 받았다면 출세는 했겠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걸 보면 1980년 광주에서 민간인에게 사격을 하고도 43년 되는 동안 양심선언이 없는 것을 보니 뇌구조가 그들은 나와 다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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