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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디자이너가 된 공주 (9)

by 함문평

공주는 솔직히 지난 8월 15일 광복절에 나의 어머니이고 공주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못 왔다. 정규직만 5일간의 유급 경조휴가가 있고 계약직은 그 일당을 까일뿐더러 차후 재계약에 불리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현실이 그래서 그냥 일을 했다. 하지만 11개월에 근무가 끝나자 이럴 줄 알았으면 안면몰수하고 올걸 그랬다고 했다. 아니야, 그때 왔었으면 오늘 네가 느끼는 바가 달라졌겠지?

기억을 더듬어 왕방산에 올랐다. 포천이 공주 아빠 선우재길 중사가 근무했던 1980년대와 많이 변했지만 등산로에 이정표와 안전로프가 잘 설치되어 있었다. 산 정상에서 자작리 군단사령부가 잘 보이는 곳에 나무그루터기 두 개를 발견했다.

야, 명당 찾았다. 여기 나 앉을 테니 너 거기 앉아라?

예. 저기 운동장 보이는 부대가 아빠 근무했던 부대야?

그래. 나무 두 줄 똑바로 서 있지?

예.

그거 똑바로 올라와 산 바로 밑이 군단사령부고 지상 건물도 크지만 지하로 여기 왕방산 아래 엄청 큰 벙커가 있다. 전쟁 나면 폭탄이 여기 군단에 떨어지면 건물 박살이 나도 지하 벙커에서 전쟁을 수행해야 하기에 전방에 큰 산에는 다 전쟁대비 시설이 있고, 서울 여의도 공원 지하에도 있어.

그런데, 외삼촌 아빠는 포천 군인이 횡성 엄마를 어떻게 만났어요?

너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 못 들었어?

예.

이거 정말 몰라?

엄마 아빠 싸울 때, 엄마가 아빠에게 너 나 이런 고생시키려고 순진한 여고생 졸업하자마자 동거했냐? 소리는 들었는데, 부부싸움에 나온 소리라 물어볼 수 없었어요.

그래. 본인들이 말해주지 않는데, 물어보기 그렇겠다. 그럼 내가 자세하게 말해줄게. 집에 가서는 모른 척 해. 미숙 이모와 네 엄마 미정이는 한 살 차이라서 싸우기도 엄청 싸우고, 공부도 서로 안 지려고 했고, 미숙이는 음악을 잘해 피아노로 상을 탔고, 미정이는 그림을 잘 그려서 횡성교육청, 춘천, 강릉 오죽헌 등에서 미술대회를 하면 금상은 못 탔어도 늘 은상이나 장려상은 받아왔거든. 외할머니는 상장을 동네 사람 보라는 듯이 방 벽 한 면을 도배지 대신 상장으로 도배를 했다. 미숙이가 원주여고 합격하자 원주여고 보다 더 센 강릉여고 원서내고 시험 보고 합격증을 내보인 거야.

집에 들어오면서 강릉여고 합격 통지서를 흔들어 보였는데, 이놈의 계집애 여자가 집 가까이 여고 가야지 대관령 넘어 강릉이 어디라고 거기 시험을 봤냐고 혼만 나고 아버지, 할아버지가 절대 입학금 못 낸다고 하여 이미 원주여고는 입학사정 마치고 등록포기자도 없어서 횡성여고 갔다. 횡성여고는 완전히 강릉여고 합격자를 신입생으로 받으니 좋아했고.

그러니 네 엄마가 공부했겠어? 공부해 봐야 대학 보내줄 것도 아니니 공부는 대충 하고 미술부에 들어가 그림 그리고 사생대회 있으면 거기 참가했다. 그러다 학교에서 국군장병 아저씨께 위문편지를 쓰라고 했다. 횡성여고 위문편지가 여기 왕방산 부대로 와서 병사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나중에 남는 것을 간부들이 받았는데, 미정이 편지가 선우재길 중사가 받은 거야.


선우재길 중사는 자기 집이 여기 왕방산 아래 저기 과수원이 보이지 저거 선우중사 아버지 공주 할아버지 땅이었는데, 생모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재혼을 했는데, 계모가 구박을 해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집을 나와 서울서 껌팔이, 구두 수거 다 닦고 난 후 배달 및 수금 목욕탕 잡부, 나이 더 들어 오토바이 배워 배달을 하면서 고입검정, 대입검정 합격하고 군대 가서 하사 시절은 눈치 보여 공부 못하고 중사 때 방송통신대 공부했단다.

그런데, 왜 엄마 아빠는 오빠나 나에게 그런 말 안 했지?

글 세다.

나중에 외삼촌에게 들었다 소리 하지 말고 슬며시 물어봐?

아니요. 물어볼 필요 없고 외삼촌 정말 고마워. 이제 엄마, 아빠랑 말할 수 있고, 방콕 안 하고 살 수 있어요. 외삼촌이 저를 음지에서 탈출시켜 준 정신과의사입니다라고 하면서 내 품에 안겼다.

그래. 내가 고맙다. 보통 자식들은 엄마, 아빠의 인생스토리 2세들이 태어날 때까지의 영웅탄생 설화는 아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제갈영경과 제갈우혁에게 했는데. 네 엄마 아빠는 나와 다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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