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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가 구국의 결단이라고(5)

by 함문평

그동안 12.12가 구국의 결단이라고 주장하는 쓰리허를 비롯한 5공 6공 세력들에 의해 이 나라는 고무풍선 누르면 펑! 터지듯이 터진 것이 영화 <서울의 봄>이다.


김성수 감독도 이 영화를 만드는 중에는 관객이 천만 넘을 것이라는 것은 기대 못했다고 겸손한 말을 했는데 난 기획한 것 자체가 천만 이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중학생들 단체관람 학교에 대해 보수 유투버들이 항의를 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인간은 뇌를 해부해 뇌구조가 내 뇌를 해부해 비교해 보고 싶다.


12.12당시 고3이던 김성수 감독이나 저나 그때는 뭔지 몰랐지만 대학생이 되고 그 사건에 대한 신문과 잡지 검찰 수사기록까지 열람하고 내린 결론이 군사반란인데 그걸 구국의 결단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 참 기특하다.


서울의 봄 영화로 묘사한 이 날은 육사 11기를 역사학자들은 은어로 마지막 하극상 세대로 부른다.


박정희 독재로 1971년 이후 민주주의 모래시계가 멈추었는데, 미친놈 또는 一人革命家 김재규가 유신의 심장을 쏘았는데 전두환 일당에 의해 또다시 민주화가 정지된 세월을 보냈다.


서정주 시인은 단군 이래 최고의 성군이라는 아부의 시를 바쳤으며, 언론 역시 부끄러운 아부 일색이었다.


대통령 최규하가 아무리 巖下有佛이지만 엄연한 대통령인데 수해현장을 최규하 보다 전두환 국보위원장 가는 곳에 더 많은 공무원과 기자들이 따라붙었다.


내 말이 거짓말인지는 소급해 1980년 신문이나 방송자료를 보면 안다.


하도 열받은 원주중학을 김지하와 같이 공부한 부산대 철학교수 윤노빈이 <땡전뉴스 > 보기가 싫다고 아내를 대동하고 월북을 했다.


국립대학교 철학교수가 월북을 했는데도 뉴스에 한 줄 보도도 못했다. 이유는 쪽팔려서였다.


죄 없는 김지하만 윤노빈과 원주중 동기라는 이유로 안기부 현재의 국가정보원에 잡혀가 죽도록 고문을 당했다.


국정원 수사관도 머저리 같은 놈이지 원주서 공부할 때나 친구지 지하는 시인으로 유명해졌고 노빈은 부산대 교수인데 방학이 아니면 서울 올 일도 없는데 지하를 족친다고 윤노빈 월북기도가 밝혀지냐고?


구국의 소리방송을 통해 그가 월북한 이유는 박정희 독재도 싫었는데 12.12군사바란으로 하극상 군권을 장악하고 그 일로 행정공무원들이 알이서 기는 꼴이 더러워 월북했다고 했다.


이런 글을 쓰면 아 그렇구나 이해하거나 윤노빈 김지하를 검색하고 공부는 안 하고 내 블로그에 악플을 달거나 함 작가 네가 어떻게 그걸 아냐? 태클을 거는데 미리 말해두자면 윤노빈이 <구국의 소리> 방송 원고 집필 시기에 함 작가는 육군정보 소령으로 대북심리전부대 작전계획장교로 <자유의 종소리> 방송을 하는 부대 근무했기에 아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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