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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문평 Jan 26. 2024

소설 <기미정란> 쓸 때 이야기

1979년 12월 12일 고3이었습니다.

당시는 예비고사를 봐서 서울지역 대학에 갈 사람 경기 강원 지역 갈 사람을 성적순으로 두부모 자르듯 자르고 또 본고사라고 대학마다 출제해서 국어, 영어, 수학 1이나 2를 봐야 했습니다.


이과반이라 수학 1은 이길동 수학 2는 황승기라 황 선생에게 수학을 2년 배웠고 그날은 고난도 문제 특강을 듣고 집에 가는데 84번 버스가 흑석동을 가야 하는데 서울역서 더 이상 못 가고 하차했습니다.


터덜터덜 걸어 한강다리 6.25 피난민 넘듯 걸어서 흑석동 집에 오니 발이 부르트고 힘들고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날은 영문을 몰랐는데 며칠 후 할아버지가 연못시장 복덕방을 다니더니 복덕방 통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보안사령관이 각하~

시해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육군침모총장이 관련 있는 혐의를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정승화 총장을 연행조사를 재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는데 우리 강원도 출신 최 대통령이 암하유불답게 현재는 비상계엄 중입니다. 계엄사령관의 연행은 중대사안인만큼 국방부장관의 보고를 들어 신중히 처리할 것이니 장관을 오라고 했거늘 예전에 윤필용 사건 때도 국방장관 배석 없이 처리했다고 재가를 요청했다.


대통령이  재가를 안 하자 나중에는 다른 장군들을 떼거리로 데리고 가서 재가를 요청했으나 국방장관 오라는 말만 했다고 하셨다.


조선시대 병판대감 김종서가 <계유정난>에 살해된 말씀을 하시면서 노재헌 국방장관이 김종서 발끝도 따라가지 못할 놈이라고 하시면서 손자에게 할아비가 해준 이야기를 손자만 알고 있고 절대 누구에게 술좌석에서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손자는 손이 근질근질해서 대학생이 되자마자 이 이야기를 소설을 썼다.


제목 <기미정난(己未靖難)>이었다.


청주에서 대학생활하는 4년 결혼하기 전까지 신문사만 변경해 보냈으나 뽑아준 곳은 없었다.


1995년 12월 14일이 할아버지 장례식이고 나의 아들이 태어난 날이다.


할아버지가 당신 사후 30년이 되거든 책을 내라고 하셨는데 일 년 먼저 냈다.


책 속에 할아버지 호 가경선생 어록은 할아버지께서 최규하 대통령 하야하던 8월 16일에 하신 말씀이다.


선생은 최규하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시게. 천자문도 모르는 놈들에게 얼마나 수모를 많이 당했소? 이제 누추하지만 누구 하나 전화도청도 할 수 없는 이곳에서 하고 싶어도 못했던 말을 마음껏 하시게?

일단 밀주나 한 사발 주시오?

한 사발이 뭐야? 한 말이라도 드시게?

가경 선생은 촌에 살고 있지만 서울에서의 그 일을 손금 보듯이 다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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