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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올무>

by 함문평

소설 <올무> 쓸 때 이야기

고향 횡성군 강림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산에 나무가 울창해서 삼판이 많았다. 또한 화전민도 많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기가 들어왔다. 원주서 강림 버스는 하루 1대 다녔다. 원주서 오후 5시쯤 출발한 버스가 강림에 도착하면 7시 운전기사와 안내양은 지정 식당서 저녁을 먹고 그 집에서 잠을 자고 새벽 6시에 원주로 출발했다.


새벽차를 타고 원주서 볼일을 보고 차 출발 전에 도착하지 못하면 원주서 하루 자고 다음날 집으로 올 수 있었다.


겨울에는 눈도 많이 내렸다. 장독대 위에 눈이 초등학생 손 한 뼘씩 오는 날이 많았다.


할아버지는 눈 내린 다음날 올무를 50개 만들어 앞산에 30개 뒷산에 20개 매설했다.


일주일 후 할아버지 조수를 했다. 어떤 때는 열 마리 아무리 적어도 3마리는 걸렸다.


두 마리는 바로 그날 열한 식구들의 양식이 되었고 두 마리는 털을 벗기고 처마에 매달아 다음 주 일용할 비축 양식이 되고 남는 것은 4일과 9일에 서는 장에 내다 팔았다.


세윌이 흘러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군대서 21년 3개월 마치고 사회 나와서 건설일용직으로 전국을 떠돌던 나에게 모 상조회사 모집인으로 불러서 갔다.


아는 인맥 다 동원해서 상조모집을 하던 중에 군대 동기 안덕영을 찾아갔다.


네이버, 다음, 구글에 <안덕영 간첩>을 검색하면 상세하게 나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기생 4명이 안덕영을 간첩으로 만들고 소령에서 중령 진급을 했다. 이중 두 명은 대령으로 진급했다. 지금은 네 명이 연금으로 배 두들기면서 살고 안덕영은 국가보안법 무죄 판결받고도 최저시급 일용직을 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정의와 불의도 분간 못하는 나라에 80년 90년 전 위안부나 징용을 사과하라면 할 것 같은가?


지 나라 불의나 똑바로 잡고 사과를 요구해도 해야겠지요?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나라 아닌가요? 국가보안법 무죄면 간첩조작자들 표창 삭탈하고 연금을 박탈하고 난 후에 일본에 사과를 요구해야 겁을 내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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