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평야담

by 함문평

文平野談 十七

昭和二十二年 서기로 1947년 봄에 다카키 마사오 소위가 조선경비연대 8 연대 경비중대에 전입 왔다.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를 3등으로 졸업해 四月 一日 춘천 소양강변에 있던 八연대 제4경비초소 소대장이 되었다.


중대장은 김점곤이었다. 김점곤은 1기로 졸업했으나 나이는 다카키 마사오가 六歲나 위였다. 김점곤은 와세다 대학 재학 중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관동군에서 소대장을 했다. 다카키 마사오와는 구면이었다. 둘은 가끔 춘천 시내에 나가 음주가무를 즐겼다.


어느 날 다카키 마사오가 김점곤과 연대장 원용덕을 식사대접을 하겠다고 했다. 이날의 물주는 남로당 군사총책 이재복이었다.


소양강변 춘추산장으로 초대했다. 시로 인사를 하였는데 원용덕이 다카키 마사오에게 삼촌이라더니 싱이 다르다고 물었다. 당황한 다카키 마사오는 이재복을 외삼촌이라고 둘러댔다.


교회 목사였던 이재복은 남로당 군사조직을 확대하기 위해 군관들을 포섭했다. 그는 대구폭동에서 경찰 총에 사망한 다카키 마사오의 셋째 형 박상희의 친한 친구였다.


이재복은 그렇게 만주군, 일본군 출신 고위 당교들을 포섭해 남로당군사조직을 늘렸다.


후에 여수 순천 반란사건 때 昭和二十三年 十一月十一日 다카키 마사오가 남로당이 밝혀져 체포 서울 명동증귄거래소 지하 감방에 수감되었다. 이때 백선엽이 다카키 마사오에게 남로당 조직도를 제보한 것을 참작해 풀려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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