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문평 Jun 04. 2024

유년시절의 추억. 18

선생님

학생시절에는 몰랐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40년이 넘어 은사님들이 다 돌아가시고 몇 분 안 남아서야 그 시절 우리 선생님들이 쟁쟁한 분임을 알았다.


과목은 기술 담당인데 역사 선생님보다 더 일제강점기와 광복과 해방의 차이를 설명해 주신 최승 X 선생님은 월북 무용가 4촌 동생이었다.


  요즘이야 다들 남녀 불문 하나만 낳아 잘 키우다 보니 4촌 찾기가 힘들지만 그 시절은 사촌 육촌까지 왕래하던 시절이라 사촌 누나면 엄청 가까운 사이였다.


유월 수업 시간에 실실 잠이 쏟아지면 선생님은 조선 최고의 미녀이고 아시아 최고 무용수 최승희 사진을 1 분단부터 돌렸다.


잠이 싹 달아났다. 그렇게 기술 선생님은 사촌 누나의 미모로 학생들 졸음을 몰아내고 수업했다. 요즘은 역사교육이 잘되어 8.15를 광복이라 부르지 해방이라 부르는 몰지각한 인간이 없지만 그 시절은 교장 선생님도 8.15 해방이라고 했고 박정희 대통령도 8.15 해방과 광복을 오락가락했다. 더 심한 것은 6.25를 유기오로 발음 못하고 융이오라고 발음했다. 기술 선생님은 노발대발하시면서 역사 선생님이 화낼 일을 대신 화를 내셨다. 해방은 일본 놈이 우리에게 시혜를 베풀었다는 의미고 광복은 일제치하의 어둠에서 다시 광명을 찾았다는 뜻이니 너희들은 꼭 광복이라는 단어를 쓰라고 하셨다. 그때는 광복이나 해방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했는데 요즘 일본국가장학금 1호 아들이 일본에 저자세 외교를 보니 기술 선생님 화가 다시 떠오른다.


생물 민ㅇㅇ 박사는 실제는 와세다 대학교 석사인데 광복직후 서울대 초대총장과 노선이 달라 교수가 못되고 우리 교사를 하셨다.


그 시절 생물시간 해부는 그냥 해부도로 교육하던 시절 교장 선생님과 재단 돈줄 쥐고 있는 행정실장을 설득해 생물시간에 현미경으로 세포 관찰, 개구리 해부를 한몇 안 되는 실습을 제대로 하고 졸업한 학생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나이 60이 되어 등단한 원천은 대학교를 국어교육과 졸업한 것도 있지만 중학시절 부장교사, 교감, 교장 승진 안 할 테니 나의 국어수업과 문예반 지도와 교지 편집에 일체의 간섭 없이 학교는 지원만 하라고 일종의 똘끼를 발휘하신 임 XX 선생님 덕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문예반 특별활동 시간에 준비물은 원고지 5매, 또는 10 매였다.


준비 안해은 학생은 복도에서 교실 안에 윈고지 지참한 학생들 쓰는 거 구경하는 것이 특활시간이었다.


학기 초에 한두 번 그걸 당하면 졸업까지 귀찮아도 늘 문예반원은 군인들 실탄 장전하듯 가지고 다녔다.


지금도 생각나는 이야기는 이태백은 퇴고 없이 시를 쓰고 두보는 엄청난 퇴고를 했다고 전해지는데,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이백은 퇴고를 남 안 볼 때만 했다.


퇴고는 딱 세 가지만 기억하라고 하셨다. 지우고 줄이고 바꾸기가 퇴고의 핵심이라고 하셨다.


원고지에 작문한 것을 학년 불문 옆사람과 바꾸게 했다. 서로 쉰 후배 친구 사이 무시하고 빨강 볼펜으로 가차 없이 지울 것 삭선하고, 표현이나 더 좋은 단어로 바꿀 것은 바꿔라.


   마지막으로 그 상태에서 동어반복 나오면 둘 중 하나를 죽여라. 죽이는 것을 앞을 죽일지 뒤를 죽일지는 전체를 읽어보고 그 글이 주장하는 바 주제를 잘 부각할 곳을 살리고 아닌 곳을 죽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잘 가르치고 잔소리 많은 선생인데 58세가 되도록 신춘문예 등단 못하신 것이 한이라고 제자 중에 시인, 소설가 되거든 무덤에 올려다오 하셨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년시절의 추억. 1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