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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문평 Jun 09. 2024

단편소설

04. 사랑은 국경을 넘어

   김종욱은  육군 중사였다. 요즘이야 중학 수학여행을 부모님이 빚을 내서라도 다 보내주지만 우리가 S 중학교 다닐 때는 한 반에 2-3 명씩은 수학여행을 못 가는 학생들이 있었다. 25 명의 수학 여행비를 내지 못한 친구들이 교실에 모여 자습을 했다. 선생님들이 교대로 자습 감독을 왔으나 형식적이라 자습 시간에 만화책이나 선데이 서울 잡지를 보았다. 자습이 지겨우면 나가서 축구도 했고, 야구부가 없는 야구장을 점령해 야구도 했다. 야구공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구공 낡은 것을 투수 없이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친 것을 가지고 수비수는 수비를 하고 타자는 달리는 것이라 여간해서는 다 아웃이라 점수내기 힘든 놀이였다. 그래도 즐거웠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한심하지만 그때는 모든 학교가 그 수준이었다. 수학여행비 못내 못 가는 것도 억울한데 억지로 수업일수 채우라고 등교를 시켰다.

 중학졸업 후 그는 S공업고등학교에 진학을 했고, 나는 인문고를 지원해서 서울 4대 문 안에 있는 고등학교에 배정되었다. 서로 소식도 모르고 지내다가 지난 연말모임에 나갔다. 졸업생은 560 명이 넘었으나 모임에 나오는 인원은 30명 정도였다. 아름아름 인원을 늘게 하자고 시작된 모임에서 나를 총무로 추천해서 하게 되었다. 전임자에게 공금통장과 명단을 인수받았다.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김포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S 중학교 25회 총무 서성천입니다. 종욱이 있나요?”

  “잠깐 기다리세요.”

  “예, 김종욱입니다.”

  “종욱아, 성천이다. 기억하겠니?”

  “기억하지 수학여행 못 간 사람들끼리 자습한 동창인데?”

  “그래, 자습동창들 한번 뭉쳐야 하는데, 어디야?”

  “김포!”

  “무슨 일을 하니?”

  “음, 군인이야. 중사!”

  “그럼 평일에는 시간 내기 어렵겠네?”

  “아니야, 요새는 군대도 퇴근 이후는 실제상황 아니면 터치 안 해.”

  “그래? 그럼 모임 장소를 발산에 잡고 연락하면 나와라.”

  “알았어.”

  졸업 후 50년 만에 처음 통화를 했다.

 총무가 서울 동서남북 안양, 의왕, 용인에 동기들이 많다고 2년 동안 단골로 하던 사당 면옥을 발산에 있는 발산 식당으로 변경해서 동창 모임을 추진했다. 늘 모이던 친구보다 안 보이던 종욱이 나타나자 완전 VIP가 되었다.

  “종욱아, 중사면 언제부터 상사 진급 대상자 되니?”

  “음, 올해부터 상사진급 대상자 되는데 앞차들이 너무 많아서.......”

  “야, 그래도 명문 S 중학교에 명문 S 공업고등학교인데 1차로 상사 진급해야지?”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되면 동기회 밴드에 소식 올리고 한턱 쏜다!”

  “박수!”


 첫인사를 시켰더니 S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위산업체에 근무했다. 5년을 꾸준하게 근무하면 병역을 마친 것으로 처리해 주는 것에 지원을 했는데 완전 사장과 부장 과장들이 갑질이 이어졌다. 자신들의 조카들도 병역을 대신하게 하느라 이름을 등재하고 출근만 하고 슬며시 사라졌다. 그러니 그 없는 사람의 몫까지 다른 몇 명이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야근을 자주 해도 일은 늘 밀렸다. 중간에 그만 두면 현역병으로 끌려가야 해서 대부분 억울해도 참고 일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울분을 느껴 4년 만에 방위산업체를 나와 군대를 갔다. 방위산업체에서 총을 만드는 부속품을 만들었기에 주특기를 총포수리 주특기를 받았다고 한다.

  군대 논산훈련소 공통교육을 마치고 병기학교 후반기 교육을 받을 때는 거의 조교 수준이었다고 한다. 총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 온 놈이 다 만들어진 총을 수리하는 것이니 얼마나 쉬웠겠는가? 당연히 최우수 성적이었고 병기학교장 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자대배치는 김포로 총포수리부대에 이병 계급으로 근무하는데 그곳 부대장이 훌륭한 자원이라고 일병이 되자 하사관학교 추천을 했다. 하사를 달고 중사가 되어 나이도 들고 결혼하려고 여기저기 맞선을 봤다.

  요즘 여자들이 결혼하는데, 사랑도 사랑이지만 남자의 직업, 시집의 경제적 능력을 생각하는데, 별로볼일 없는 놈이라 결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특이한 방법으로 결혼했다. 한 동안 다음카페, 아이러브 스쿨 등 초등 중등 동창 찾기에 열광하던 시기에 그는 인터넷 메신저로 아내를 찾았다. 채팅에서 중국에 있는 한글을 아는 여자와 채팅을 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골인했다고 했다.

 한참 소주잔을 돌리고 인터넷 연애 이야기를 듣는 중간에 식당 주인인 손님 중에 김종욱 씨 계시면 카운터로 와주세요? 하는 바람에 회식 도중에 카운터로 갔다.

 카운터에 찾아온 사람과 몇 마디 이야기를 하더니 자리로 와서 미안하게 되었다. 부대에 일이 있어 들어가 봐야 한다고 미안하다. 다음에 상사 진급하면 꼭 부대에서 운영하는 회관에 친구들 불러 술 한 잔 사겠다고 말을 하고 나갔다. 뒷모습이 횡성우시장으로 팔려가는 소처럼 보였다.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은 한 마디씩 했다.

군대는 퇴근해도 몸이 내 몸이 아니고 국방부 몸이라고 했다. 회식 중간에 불려 나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본 우리들은 잠시 흥이 깨졌지만 다시 중학시절 이야기를 하고 회식을 마쳤다.

  부대에 복귀하자마자 부대장실로 갔다. 대대장실에는 대대장과 이 지역을 담당하는 517 방첩부대장 중령이 와 있었다. 군대서 방첩부대장 중령은 사단장 별 둘을 감시하는 직책이라서 사단장도 사단참모 회식에 꼭 방첩부대장을 초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거 방첩부대장 중령이 정비대대장실에 나타났으니 큰일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대대장이 물었다.


  "김 중사?"

  "예?"

  "아내 확실히 중국교포 맞아?"

  "예, 맞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여기 방첩부대장님이 오셨는데, 김 중사를 당분간 조사를 해야 하니 김 중사 업무를 다른 중사에게 인계하고 기무부대에서 언제가 될지 모르니 조사 다 마치고 복귀해."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제 아내에게도 알려야 하니 집에 가서 갈아입을 속옷도 준비하고 아내에게 말을 하고 방첩부대로 가겠습니다.

그 말에 방첩부대장이 입을 열었다. 이건은 우리가 먼저 한 것이 아니라 경기도 경찰청 정보과에서 먼저 진행하는 일이라 아내가 경찰에서 먼저 조사실로 연행했으니 김 중사는 지금 내차로 방첩부대로 가면 됩니다."

  군대처럼 계급장을 달고 생활하는 집단에서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는 반말을 하는 것이 상식이다. 방첩부대 중령이 중사에게 평어 이상의 존댓말을 쓰는 것이 더 겁나게 했다.

 방첩부대장 지프 뒷자리에서 종욱은 방첩부대장에게 허락을 받았다. 아내에게 전화 한 통만 하겠습니다. 너무 길게 통화하지 말고 그냥 기무부대에 조사받으니 며칠 후에 집에 간다고 말해. 전화를 걸었다. 아내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나야?"

  "음 어디야?"

  "지금 방첩부대에 조사받으러 가는데 며칠 걸려."

  "나도 경찰서 조사받으러 왔어. 사실대로 말해."

  "알았어."

처음 보는 방첩부대는 블록 담장 위에 윤형 철조망이 전방 DMZ가 연상되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일반 가정집 같았다.

작은 방 하나로 안내되었다. 수사관이 왔다.

  "김 중사는 지금부터는 중사가 아니라 간첩으로 의심되는 여자를 숨겨준 국가보안법 간첩 은익에 해당되는 피의자니 존칭 생략합니다. 알겠습니까?"

  "예."

  "군복을 벗고 계급장 없고 허리띠 대신 고무줄 바지를 착용하기 바랍니다. 이유는 조사 도중 자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예. 갈아입겠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았다. 조사관이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김종욱입니다."

  "생년월일은 언제입니까?"

  "1984. 10.26 일입니다."

  "주소는?"

  "경기도 김포시 김포 장기군인아파트 2 동 304 호입니다."

  "직업과 직책은?"

  "직업은 군인 직책은 3 군 지사 총포정비대대 총포수리담당 중사입니다."

  "결혼일자는? 2018년 2월 15일입니다."

  "아내 이름은? 강미영"

  “아내 생년월일은? 1985 4월 15일입니다."

  "아내 최초 국적은? 중국입니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언제 어디입니까?"

  "2013년 1월 26일 중국 선양공항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선양까지 가서 만난 것이 중간에 중개인 조력자가 있었습니까?"

  "아니요. 솔직히 한국 여자와 결혼하고 싶었는데, 연애하던 여자들은 계급이 중사라고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고 명예도 없고 평생 근무해야 상사로 전역해서 연금 받아야 해외여행 한번 못할 거라고 떠났습니다. 한국 여자와 결혼하기를 접고 인터넷으로 채팅을 했는데 2013116일에 처음 채팅으로 중국여자를 알게 되었는데, 그 여자는 자기는 결혼했고 결혼 안 한 아가씨에게 나를 토스한다고 해준 것이 미영이었습니다. 채팅으로 대화를 하고 어느 정도 지나니 이 여자는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무장이 된 여자라 맞선으로 헤어진 여자들처럼 남자의 수입이 많고 적음에 휘둘릴 여자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청혼을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주고받은 여자와 결혼합 시다가 되던가요?"

  "아니요, 처음에는 장난으로 알더 군요."

  "어떻게 했나요?"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했더니 여기 중국인데 전화요금 어찌 감당하려고요? 하더군요.  숙소에 인터넷 설치되어 있는데 인터넷 전화로 걸면 전화요금 부담 없이 통화가 가능합니다. 하니 알려주더군요."

  "전화번호가 어떻게 됩니까?"

  "예, 중국번호 130-727-8603727x입니다."

  "강미영이 중국 국적이 아니고 탈북자라고 여자 간첩으로 의심이 된다고 경찰에서 먼저 조사 중이니 남편도 조사하라고 이런 공문이 왔는데 아내가 탈북자라는 의심은 안 했나요?"

  "예, 의심을 했다면 제가 결혼을 했겠습니까? 군인이 간첩과 결혼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고 또 제 아내가 간첩이라고 칩시다. 간첩이면 고급 정보 수집을 위해 장교이고 고급 정보를 빼낼 남자에게 접근하지 저처럼 중사에게 접근하는 간첩이 있을까요?"

  "그것이 이상하지만 일단 국적을 숨긴 것 자체가 국가보안법으로 의심이 가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탈북자인데 중국에서 가자 신분증으로 살다 한국에 왔다고 하면 국정원이고 하나원이고 합동조사만 마치면 도와주는데, 국적을 숨기고 10 년이 흐른 뒤에 이런 조사를 하니 간첩을 의심할 수밖에 없어요."

  "조사하면 판가름 나겠지만 제 아내는 제가 살면서 간첩으로 의심할 만한 일이 하나도 없었고, 저랑 살기 위해 애도 둘씩이나 낳았습니다.

  요즘 한국 여자들 애 안 낳아 난리인데 애를 두 명 낳았으면 간첩누명이 아니라 여성가족부장관 표창이라도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정말 조사관으로 조사는 하지만 난감한 조사를 합니다."

  "예. 일단 오늘 조사한 것으로 방첩사령부에 피의자 조사를 해 본 결과 국가 보안법 상의 대공 용의점 없다고 보고하겠습니다. 하지만 강 현옥의 조사 결과가 간첩이 된다면 다시 소환 조사할 것이고 거짓말한 것을 추가하여 가중처벌 될 것입니다."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예, 돌아가세요."

  방첩부대를 나와 하늘을 보았다.

파란 하늘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없었다. 자유가 이처럼 좋은 것을 기무부대에서 헐렁한 고무줄 옷을 입고 조사받으면서 이런 것이 범죄 수사구나 경험을 했다.

아내 미영은 지금 쯤 조사가 다 되었을까?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있으니 다음에 걸어달라는 안내음성이 들렸다. 김포경찰서 정보과에서 조사를 하고 2 차 조사를 받으러 경기도 경찰청 정보과로 이첩이 되어 수원으로 갔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 근처의 정보과 특별조사실이 있었다.  안전가옥이다. 국가보안법으로 의심되는 피의자들만이 일반 피의자와 격리되어 조사하는 곳이다. 겉에서 보기에 관공서가 아니라 일반 가정집처럼 보였다. 2 층으로 안내되었다.

여자 수사관이 조사를 했다. 역시 옷은 그녀의 옷은 벗고 헐렁한 고무줄 바지로 갈아입고 조사를 받았다.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았다. 조사관이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강미영입니다."

  "생년월일은 언제입니까?"

  "1985. 4. 15 일입니다."

  "주소는?"

  "남편 이름은? 김종욱"

  "남편 생년월일은? 1994. 10. 26 일입니다."

  "남편을 처음 만난 것은 언제 어디입니까?"

  "2016 년 10월 26일 중국 선양공항입니다."

  "한국남자를 중국 여자가 만난 것이 중간에 알선자나 조력자가 있었습니까?"

  "아니요. 저는 중국서 옷 가게에서 일을 했는데, 거기 총무 언니가 인터넷 채팅으로 한국 남자를 알게 되었는데 이 남자가 자꾸 자기랑 결혼하자고 하는데 자기는 이미 결혼한 여자니 결혼 안 한 아가씨를 소개해준다고 하니 그렇게 하라는데 미영이 너 채팅해 볼래? 해서 언니가 소개를 해준 것입니다."

  한국으로 온다가 아니고 이미 한국에 와서 국정원 대성공사에서 다 불었어요. 북한 강원도 통천이 고향이고 언니가 강현옥인데 한국에 와서 살고 형부가 군이 중사라고 다 불었는데 거짓말하면 정말 여간첩 원 정화처럼 간첩되고 싶어요?

  선생님 솔직히 말하면 저는 통천서 학교 졸업도 못하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왔어요.

  그래도 최초 국적은 북한 정확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아니어요?

  맞습니다.

  왜 국적을 속였나요?

  속인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한국 온 것은 중국 국적 여권으로 이상 없이 공항 검색대를 통과해서 입국하고 남편과 결혼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해서 아무 문제 없이 살았는데 이게 왜 문제 되는 거죠?

  "강현옥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아니고 신문조서 작성 중에 있어요. 신문이 문지 알아요?"

  "알아요. 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노동신문을 말하는 거 아녀요?"

  "그런 신문은 한자로 신문(新聞) 새로운 소식이라는 신문이고 지금 강현옥을 묻고 답하고 조서 작성하는 것은 발음은 같아도 신문(訊問)이라고 하는 겁니다."

  "정말 너무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법입니다. 뭐가 그리 복잡해요? 간첩 아니면 바로 풀어주고 간첩이면 바로 교도소에 처넣으면 되지?"

  "교도소에 가는 것은 국가보안법상 이적행위 간첩죄를 했나 지금 조사 중인 것이고 조사 결과 간첩행위 없으면 풀려나는 것입니다."

  "조사관님 저를 간첩으로 만드는 조사면 이 시간 이후 저는 묵비권입니다."

  "묵비권이면 정말 간첩이 되어도 좋다는 뜻이지요?"

  "뭔 소리야요? 간첩이 아니니까 간첩 만드는 조서에 불응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묵비권 행사 하면 간첩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더 이상 묵비권으로 조사할 수 없음 서서 국가정보원으로 보내면 끝입니다. 그렇게 해드릴까요?"

  "아니요?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간첩이 아닙니다!"

  "강현옥 씨가 간첩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 꼬치꼬치 묻는 것입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

  "물어보는 것에 정직하게 답변을 하면 됩니다."

  "정직하게 답변하겠습니다."

  "북한을 탈출하기 전에 가족사항을 말씀해 보세요?"

  "아버지는 통천에서 수산사업소 당 간부였고, 엄마는 수학 교원이었습니다. 제가 큰 딸이고 2 살 아래 강미옥, 네 살 아래 강미경이 다섯 식구였습니다."

  "아버지 성함은?"

  "강훈철."

  "어머니 성함은?"

  "최금순."

  "아버지 형제들은?"

  "큰아버지가 결혼도 못하고 돌아가신 강 민철입니다."

  "강민철, 미얀마 테러리스트 전투원?"

  "예, 맞습니다."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일부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은 보상금 많이 준다는 말에 거짓말로 친척도 아닌데 친척이라고 말하거나 원자력 핵 분야에 근무하지도 않고 근무한 척 말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들은 20년을 이런 일만 한 사람이라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다 탄로가 나요."

  "육군 중사 아내로 근 십 년 가까이 살았는데 무슨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강민철이 아버지 보다 형이라면 할아버지 할머니 성함은 무엇입니까?"

  "할아버지 강석준, 할머니 김옥선 고모 강 경숙입니다."

  "강민철이 미얀마에서 아웅산 묘소 폭파를 했으니 대우 잘 받았죠?"

  "아닙니다. 임무수행 후 잡히면 자폭하라고 했는데 자폭 안 하고 미얀마 교도소에서 25년 살다가 사망해서 집안은 대우받은 것이 없습니다."

  "통천을 탈출해서 중국으로는 언제 갔나요?"

  "1999 년 고등학교 졸업 전에 갔습니다."

  "중국에서 무슨 일을 했나요?"

  "솔직히 처음에는 중국말을 못 해서 어디 취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 거지생활을 했나요?"

  "중개인이 한족에게 아이 낳아주는 곳으로 팔았습니다."

  "예?"

  "한족 중에는 돈은 많은데 본처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아이를 낳아주는 여자를 들이고 임신해서 아이를 분유로 키울 수 있을 정도까지 있어주면 돈을 몇 만 위안 주거든요."

  "얼마나 받았어요?"

  "2 만 위안으로 갔는데 나올 때 3만 위안 주더군요."

  "아이 보고 싶지 않으세요?"

  "지금도 그 애 생각만 하면 잠이 안 옵니다. 눈에 밟혀서."

  "한족 집에서 나와 어디로 갔나요?"

  "한족 집에 1년 반 살면서 기초적인 중국어를 익혀서 선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사투리가 심해서 알아들을 수가 없더군요."

  "선양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요?"

  "처음에는 통조림공장에서 일하다가 생선 다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옷 파는 가계로 이직했습니다. “

  “거기서 지금 남편 김종욱 중사를 알게 되었나요?‘

  “선양에서 엄청 크게 하는 화장품 가게입니다. 점원이 7 명이고 총무 언니 있고 사장님이 계시는데, 총무 언니가 인터넷 채팅으로 한국 남자를 알게 되었는데, 자기는 결혼했다고 해도 자꾸 사귀자고 하는데. 결혼 안 한 착한 아가씨 소개해 준다고 했는데 니들 중에 한국 남자 사귀어볼 사람 손들어? 하는 겁니다. 아무도 손을 안 드니까 저를 찍어서 소개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생전 처음 채팅이라는 걸 했는데 신기했어요. 한국에 있는 남자와 인터넷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일 마치면 밤마다 했죠. 하루는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전화번호를 알려줘 하더군요. 130-774-86-xxxx로 알려주었더니 밤에 정말로 전화가 왔어요. 떨리기도 하고 신기하고 반갑고....... “

  “혹시 인터넷으로 사귀어 한국에 데려가 어디 농촌이나 섬에 팔아넘길 거라는 의심은 안 했나요?”

  “예, 콩깍지가 씌웠는지 정말 모든 것이 다 좋게만 보였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중국에서 가짜 신분증으로 살아가는 것이 겁이 나고 싫었습니다. 언제 가짜가 들켜 공안에 이끌려 북한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늘 불안 초조하게 살다 보니 신분 안전에 대한 갈망으로 한국 남자랑 결혼하면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이 컸어요.”

  “중국서 가짜 신분증은 얼마 주고 만들었나요?”

  “2만 위안 주고 만들었습니다.”

  “가짜 신분증이 몇 명인지도 알 수 없겠군요.”

  “예, 사진을 자기 사진을 부착한 가짜 신분증이라 그 신분증 번호 원래 소유자가 죽으면 호구 정리하다 보니 탄로가 납니다. 그전에는 모르고 유통하는 것입니다.”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에서 사는 사람이 몇 명인지 통계도 없겠군요?”

  “예, 중국은 워낙 인구가 많고 호구 조사가 제대로 안 되어 통계를 현재 잡혀있는 것만 발표하니 탈북자가 몇 명이 가짜 신분증으로 일하고 몇 명이 신분증 없이 지내는지 알 수 없어요. 말이 잘 안 통하는 동안에는 여자들 돈벌이라는 게 ‘몸 팔기’ 아니면 ‘뜀뛰기’입니다.”

  “몸 팔기는 알겠는데 뜀뛰기는 무엇입니까?”

  “뜀뛰기는 중개인랑 여자랑 짜고 한족에게 2만 위안에 팔려가서 어느 정도 살다가 약속된 날에 그 집에서 나오면 중개인이 차에 태워 다른 곳 돈을 더 받고 넘기는 것을 말해요.”

  “인터넷 채팅을 하다가 처음 만난 것은 언제 어디서 만났나요?”

  “2012년 10월 26일입니다. 중국 선양공항에서 만났습니다."

  "군인이 중국까지 가다니 놀랍군요?"

  "예, 사전에 부대장에게 보고해서 휴가도 10일로 얻고 기무부대에 해외여행 계획서 미리 제출해서 승인 다 받고 중국에 왔다고 했어요."

  "이해가 안 가는군요. 채팅으로 만난 여자를 결혼하겠다고 혼자 중국에 찾아가다니?"

  "저도 이 남자가 미쳤나? 아니면 한국에서는 여자들이 상대도 안 해주는 고자인가 재혼인가 별의 별생각이 다 들었어요."

  “청혼하던 이야기를 자세하게 말해 줄 수 있나요?”

  “아마 채팅 6 개월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채팅 중에 오빠 너 하고 결혼하고 싶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오빠 결혼은 돈도 많이 들고 서류도 복잡해. 중국서 한국 남자랑 결혼하는 거 더러 봤는데 공안이 별별 트집을 다 잡고 여권 심사 중에 통과 안 되는 사람 많아요. 했더니만 서류는 천천히 준비하고 돈이 얼마나 드는데? 하는 겁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3,000 만 원 정도 든다고 들었어요. 했더니 바로 계좌번호 보내 봐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통장이 없고 엄마 통장으로 계좌번호를 알려주었더니 퇴근하기도 전에 3,000 만원 송금했다 확인해봐 하는 문자가 오는 겁니다. 엄마에게 전화로 엄마 퇴근하면서 통장 정리 해봐 한국에서 3,000 만원 송금했을 거야. 했더니 엄마가 뭔 돈이냐? 물어 집에 가서 말할게 했죠. 그날 퇴근해서 엄마랑 엄청 싸웠어요. 세상에 미친년 아니고서는 한번 만나지도 않은 남자에게 돈을 3,000만 원 보내게 하고 보내는 남자가 얼마나 못났으면 한국에서 여자 하나 못 사귀고 채팅으로 만난 여자랑 결혼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냐? 사기다.

  3,000 만원에 여자 사서 어디 무인도나 산골에 6,000 만 원 받고 되팔 수작이니 너 이 돈 돌려주고 당장 채팅이고 뭐고 끊어라 하는 겁니다. 아니 엄마 어떻게 사람을 한 번 만나보지도 않고 그런 악담을 해요? 난 이 남자가 채팅만으로도 나를 믿고 3,000 만원이면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반인에게는 큰돈인데 선뜻 보낸 건 믿음이야. 나를 믿는 남자를 의신하면 안된다고 생각해. 했더니 엄만 완전 둘 다 미친년! 미친놈! 그러는 겁니다. 이 남자랑 결혼하면 다시는 너는 없는 딸로 간주한다고 하였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엄마가 졌어요. 선양 공항에서 그 남자 만나서 택시로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최고의 맛난 음식을 준비했고 중국인 새아버지는 고급술을 사 오셨어요. 집에 새아버지 빼고 엄마 나 동생 모두 여자라서 술을 집에서 드시는 일이 없었는데, 사위 덕에 집에서 마음 놓고 눈치 안 보고 술 마실 수 있다고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한국에는 언제 입국했나요?”

  “200X 년 2월 16일에 입국했습니다."

  "중국서 한국 오는 절차는 위조신분증으로 다 통과되었나요?"

  "예, 천만다행으로 제가 한국 입국 신청했을 때는 가짜 신분증 원래 주인이 살아있어서 통과되었는데, 한국에 오고 1 년 후에 그 사람이 죽어서 호구정리를 했고, 그 이름으로 한국행 여권발급이 되어 한국으로 가서 중국에 귀국한 흔적이 없어서 중국 공안이 난리가 난 것입니다. 가짜 신분증 해준 분과 중국 새아버지가 잘 아는 사이라서 중국 공안에 시달려도 절대로 딸을 중국에 다시 오지 마라 와서 공안에 잡혀가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해요. 그 말에 제가 아니다. 나는 이미 한국인으로 한국국적을 얻었고 한국여권으로 중국 간다고 엄마와 새아버지, 여동생 선물을 가득 준비해서 중국에 남편 10일 휴가 얻은 기간에 다녀왔어요. 선양공항 검색대에서 공안이 저를 와보라고 해서 갔어요. 공안 말이 중국에서 만든 여권으로 출국하지 않았냐? 그렇다. 그런데 한국에서 결혼해서 대한민국 국적 얻었고 여기 여권도 대한민국 여권으로 입국했다 당당하게 말했어요. 뭐가 문제입니까? 했더니 아니라고 그냥 중국 여권으로 출국한 거 알고 있다고 그 말을 하면서 말끝을 흐리더군요. 그래서 당당하게 대한민국여권의 소중함과 위력을 경험하고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여자에게 여자 간첩을 만들려는 수작은 너무 유치한 서커스 아닙니까?"

  "알았어요. 더 이상 여간첩이란 말 안 하겠으니 화내지 마세요."

  "왜 한국 오자마자 국정원이나 주민등록증 만드는 동사무소에서 말하지 않았나요?"

  "누가 그걸 말해준 사람도 없고 탈북자라는 것이 자랑거리는 아니지요? 그래서 말을 못 했습니다. 이번 합동조사에 남편이 말은 못 해도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숨긴 것을 이유로 이혼하자고 해도 저는 할 말이 없어요."

  "채팅으로 1000 만원 보내준 남자니까 이혼하겠어요?"

  "조사도 조사지만 집에 가서 남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걱정입니다. 차라리 3,000만 원에 사서 6,000 만 원에 되팔아 넘겼으면 경찰에 신고하고 나 탈북자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예, 군인이라서 여기 조사받는 것보다 더 심하게 조사받고 있을 것입니다."

  "애들은 몇 명인가요?"

  "큰 아들은 2014 년 생 10 살이고요, 동생은 2018년 생 6 살입니다."

  "아이들도 엄마가 탈북자라는 것은 모르겠군요?"

  "예, 그런데 이번에 여동생이 국정원에서 조사 중이니까 마치고 나오면 이모라고 소개하고 엄마도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었나요?"

  "말입니다. 같은 조선민족인데 왜 말이 이리 다르고 억양도 다른 지 처음에는 문밖에 나가기가 싫었어요."

  "예, 강현옥 씨는 간첩이 아니라고 신문조사 보고는 하는데, 탈북자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국가정보원 대성공사에서 이 보고서를 상부에 보고하면 입소 통지가 갈 것입니다. 조사에 솔직하게 답변해 주어 감사합니다. 잘 가 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셔요."

조사실을 나오니 해가 져서 어둑어둑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전원이 꺼져 있으니 나중에 다시 연락 바란다. 흘러나왔다.

 중학 동창회 공지를 밴드에 올렸다. S 중학교 동창들에게 알려드립니다. 기독교 천주교 친구들이 성탄절에 하면 불참이라 무조건 12월 둘째 주 금요일을 송년회로 하겠습니다. 회비 3만 원입니다. 전화가 왔다. 지역번호 031인걸 보니 종욱이다.

  “성천이다. 오랜만이야?”

  “그래 지난번 모임에 중간에 빠져나가 미안했다. 이번에 중사에서 상사로 진급했다.”

  “오! 축하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송년모임을 우리 군부대 회관에서 준비하려고?”

  “그래 장소를 문자로 주소 전화번호 약도 보내.”

  “알았어.”

  12월 13일 번개회관에 동창들이 모였다.

  “동기 여러분! 모두 바쁜 와중에 이렇게 멀리 김포까지 찾아주셔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는 우리 25기 송년회이자 금년 중사에서 상사로 진급한 김 종욱을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그럼 먼저 종욱과 그 가족을 소개합니다. 모두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중학 졸업 후 연락 없이 살아온 인생인데 제가 진급했다고 많이 참석해 감사합니다. 제 아내를 소개합니다. 이름은 강 현옥입니다.”

  “안녕하세요? 남편 김종욱 예비상사 아내 강 현옥입니다. 여러분 억양에서 느끼셨겠지만 저의 고향은 북조선 통천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고) 정주영 회장님 고향입니다.(박수)

  “큰 아들 김길수, 작은 아들 창수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아들 김길수, 수입니다.”

북조선을 탈출해 국적 취득하고 10년 흐른 뒤에  신문(訊問)을 받았지만 당당한 가족에게 박수를 보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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