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가 사망했을 때 재야단체들은 타살 의혹을 제기했으나 정부발포는 타살 흔적이 없다였다. 자살이라는 뜻이다. 광복군으로 활동했고 사상계를 반석 위에 올린 분이 심약한 자살이 믿을 수 없다고 할아버지는 연못시장 복덕방이 쩡쩡 울리게 분노했다.
그 시절은 보안사령관은 상관인 국방부장관을 생략하고 대통령에게 독대보고가 있던 시절이다. 경호실장이나 안기부장이 대통령을 독대보고는 이해가 가지만 국방부장관의 배석 없이 보안사령관이 독대보고하는 것은 박정희의 통치술의 일환이라 그가 죽었기 때문에 그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문세광이 박정희를 저격하려다 오발로 육영수 여사가 사망했다. 실의에 빠진 큰딸 근혜에게 한 통의 편지가 뱌달 되었다.
그 시절은 비밀이었는데 세월호 이후 세상에 온통 풍자의 글이 나돌게 한 최 태자마마였다. 최순실의 아버지가 최 태자마마다.
본명 최태민이라고 하는데 이름이 몇 개인지 모른다. 일제강점기 북한에서 순사를 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북한에서 김일성이 대대적인 친일분자 색출을 하자 남으로 도망 온 것이다.
남조선은 이승만이 정권 창출과 유지를 위해 친일파를 계속 군인과 경찰에 행정부에 중용했다.
어머니의 예고 없는 총탄에 슬픔의 나날을 보낼 때 최 태자마마가 어머니가 가신 것은 딸에게 큰일을 하도록 자리를 비켜주신 것이라는 편지에 근혜는 슬픔을 잊고 스물몇 살 나이로 어머니를 대신해 박정희가 각종 기념행사에 아버지 옆에서 행사를 했다.
머리스타일이나 의상 모두 육영수를 연상하는 스타일로 했다.세월이 지나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때도 육영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요즘 윤 총독 옆에 김건희는 뒤에서 천공이 유튜브에 떠드는 대로 하고 건희 말을 들어 윤 총독이 영일만 해저에 우리 할아버지 복령 캐는 확률보다 더 희박한 확률에 도박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