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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문평 Jun 14. 2024

유년시절의 추억. 24

전학생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리에서 태어나 강림초등학교에 입학하고 5년을 마쳤다.


5학년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셔서 아버지 할아버지께 문평 학생을 중학교에 보내실 건가요?

 하는 질문에 아버지 할아버지 대답은 중학 아니라 대학까지 가르칠 것이라고 했다.


  그러시면 여기 강림서 초등학교를 마칠 것이 아니라 원주나 서울로 유학을 시키는 것이 어떻겠냐? 하시고 담임 선생님은 가셨다.


 마침 막내 작은 아버지가 군대를 공병대 병장으로 제대를 하고 서울서 택시회사 택시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께 택시 한 대를 사달라고 했다.


  할아버지 명의의 산 하나와 소 세 마리를 팔아 택시를 사주는 대신 장손을 초등학교 6학년만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중학생부터 대학 마칠 때까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맡아 덜 볼 테니 6학년 1년 동안만 돌봐주기로 했다.

  

  강림초등학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400명 정도인데 전학을 간 서울 D초등학교는 6학년이 15반까지 있었다.


  8반까지는 남학생반 9부터 15까지가 여학생 반이었다.


  강림에서는 1.2등 하던 놈이 6학년 서울서 첫 월말시험에 77명 중에 34등을 했다.

눈물이 났다.

그냥 시골서 공부할걸 괜히 왔나? 했는데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고 했는데 낙심하지 말고 우리 집안이 뇌구조가 부실한 집안이 아니다 34등 다음 시험은 31 등 그다음 시험은 28등 한번 시험 볼 때마다 큰 욕심 내지 말고 3등씩만 올라가거라 그러면 고 3 되어 대학 갈 무렵에는 선두 그룹이 될 가다 하시고 내려가셨다.


  5월 어린이날이 지나고 6월 초등학교에 수영장이 개정되었다.


지금은 수영이 박태환 이후에 각광받는 종목이 되었지만 당시는 수영 우리 반 77명 중 수영할 줄 아는 사람이 3명뿐이었다.


강림천과 주천강이 만나는 합수소에서 익힌 수영 실력으로 50미터 수영장을 왕복했더니 완전 스타가 되었다.


  미정이라는 6학년 14반 여자애가 수업을 마치고 8반 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네가 시골서 전학 온 함문평이니?

  응!

  너 토요일 수업 마치면 가지 말고 교문 옆 미끄럼틀에서 기다리고 있어? 하고는 그녀는 떠났다.


  토요일 수업 마치고 미끄럼틀 옆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녀가 나를 불렀다.


그녀가 데리고 간 곳은 지금 해군호텔이 된 해군본부였다.


 지금은 해군본부가 계룡대에 이전했지만 당시는 우리 초등학교 후문 뒤가 해군본부였다.


  그녀가 해군본부 위병소 초병에게 아빠 이름을 말하고 정문통과 했다.


 수영장에서 환복을 하는데 걱정이 되었다. 모두 수영복을 입었는데 난 수영복이 없는데 걱정이 되어 미정아 난 수영복 없는데 어떻게 하지?


걱정 마 우리 아빠가 가지고 오실 거야?


정말 그녀 아버지 모자에 대령 계급장이 번쩍이는 모습으로 오더니 학생이 시골서 전학 온 물개야?


나만 몰랐지 9반부터 15반 여학생 사이에 내 별명은 함 물개였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해군본부 수영장에 들어가니 수심이 1미터 1.5미터 2미터 2.5미터 구간 표시가 되어있었다.


  군용 보트에 아버지는 타라고 하더니 상신이와 나를 2.5미터 구간에서 보트를 뒤집어 버렸다.


 미정이는 수영을 잘하니 바로 자유형으로 탈출을 했고 나는 잠수로 2.5미터 구간에서 끝으로 잠수 오르내리는 계단 난간에서 살며시 물 위로 눈만 올려봤다.


  난리가 난 것이다.

물속에서 안 올라오니 안전요원을 풀어 수색을 했다.


잠수로 2미터 구간 경유 1.5미터 구간 난간에서 숨이 막히면 잠시 푸! 하고 숨을 쉬고 다시 잠수로 안전요원이 나를 찾을 때까지 반복했다.


  사이렌이 울리고 안내방송이 나왔다.


수영장에 D초등학교 함문평 어린이는 즉시 다이빙대 앞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잠수로 다이빙대 밑에 가서 살금살금 얼굴을 내밀었다.


   미정 아버지는 학생 미안해?

내가 학생을 테스트해 본 것인데 정말 우리 상신이 말대로 별명이 물개군 하시면서 지프차에 퇴근하면서 나를 그 집으로 데려갔다.


지금은 아파트단지로 변한 군인관사촌에 그녀 어머니는 미리 음식을 준비하고 우릴 맞이했다.


  강림 촌에서는 구경도 못 하던 이름 모를 생선과 쇠고기 국도 이름 모를 국인데 맛있게 잘 먹었다.


  그 후 나는 매주 토요일이면 해군본부 수영장서 수영하고 그녀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왔다.


   가을이 되어 수영하기 물이 차지자 그녀는 자기 집에서 공부를 같이 하자고 했다.


그녀 집에는 해군 병사인데 S대학교 물리학과를 다니다 해군병사가 된 병장이 전역 3개월 남기고 대령집 딸을 수학과외를 하는데 이미 중학과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상으로 중학과정 수학을 공부하고 중학생이 되었다.


아버지는 시험 한 번에 3등씩만 추월하라고 했는데 중1 수학시험 560명 중에 수학 한 과목은 1/560이었다.


등수는 3등 오른 것이 아니라 30등이 올랐다. 지금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 중학 3년 수학 평균 98점은 졸업 40년이 지나도 깨지지 않았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제주지사 원희룡이 전국 수석하면서 수학 2점짜리 하나 틀렸다고 한 시험에 난 영어를 많이 틀려 수석을 못했지 수학은 25문제 만점이었다.


  중학생 시절에 그녀 아버지는 장군진급 탈락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녀에게 들은 말이 선거에 군인이면서 박정희 안 찍고 김대중 찍은 걸 방첩부대가 알아서 자기 아빠는 장군이 못 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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