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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 37호

광주에서 계엄군끼리 오인 교전

by 함문평

1980년 5월 24일 광주 개 방대학 뒷산에 11 공수여단은 외곽 봉쇄 임무를 마치고 광주비행장으로 철수 중이었다.


갑자기 도로변 구릉지 매복 진지에서 90미리 무반동총이 공수부대 장갑차를 공격하고 수류탄 투척과 M16소총 사격도 했다.


무기고가 털리고 아시아 자동차 공장에서 장갑차도 털려 시민군이 무장된 상태라 11 공수여단은 시민군 공격으로 알고 즉각 응사했다.


9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장갑차와 트럭 4대가 90미리 공격에 박살이 났다.


공수부대 지휘관은 공격 수준과 화력 집중도와 사격 중지 수준으로 보아 시민군 수준을 넘는 것으로 판단하고 교전을 중지시키려 했으나 상대 무전 주파수를 몰라 저격병을 시켜 상대 90미리 사수를 저격했다.


교전이 종료되고 확인 결과 상대방은 광주보병학교 교도대로 현지 지휘관은 중령이었다.


이 사건으로 서울의 보안사령부는 난리가 났다. 혹시 12.12 사태에서 신군부 측 1.3 공수와 육본지휘부 명령을 받은 9 공수처럼 되는 것 아닌가 와 시민군의 전투력이 11 공수 선두를 차단시킬 정도라면 쉽게 평정될 일이 아니었다.


특전사를 따라다니는 보안반장이 계엄군끼리 오인 충돌이라고 신속히 파악 보고하여 서울 보안사령부 상황실과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한숨을 돌렸다.


세월이 지나 이렇게 바로잡았지 당시는 시민군에 의해 공수부대원이 사망했다고 뒤집어 씌웠다.


숨진 공수부대원에게는 폭도와 교전 중 장렬한 전사를 했다고 공적조서를 작성해 일계급 특진과 훈장을 추서 했다.


죽은 분은 애도의 뜻을 표하지만 훈장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광주사태가 진압되고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에는 광주사태진압유고에 대한 훈장과 표창을 준비했다.


공적심사 준비를 하라는 인사참모부 부장의 지시에 차장이던 박경석 준장은 훈장은 적과 싸워 무공이 있는 자에게 주는 것인데 광주시민에 대하여 평정을 잘했다고 훈장을 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건의했다.


그 일로 박 장군은 준장으로 강제 전역했다. 전역 후 그는 우리나라 전사에서 잘못기록된 것을 바로잡는 일을 했다. 아울러 고인이 된 배선엽 장군에 대하여 명예 오성 장군 명예 원수 추대하려는 움직임에 반대를 하여 원수 추대를 좌절시켰다.


백선엽과 박정희 간도특설대 출신들은 명확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간도특설대 설치 목적이 만주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을 토벌하던 부대가 간도특설대이다.


박정희도 백선엽도 간도특설대에 대한 반성 없이 고인이 되었다. 현대사를 통해 후세 학생들이 선배시민이 잘못한 것을 반복하지 않게 하려면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역사를 가감 없이 정직하게 기술해야 한다. 그전에 발생한 12.12군사반란과 10.26일 시해사건도 정확히 기술해야 후세에 역사 교훈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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