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죽음, 그 애도일기 04
나는 세상 남자 중에서 아빠를 제일 사랑한다. 어릴적 사업을 하던 아빠는 바빠서 내가 잘 때 들어올 때가 많았고 또 모쪼록 일이 없는 쉬는 날에는 쇼파 위에 시체처럼 누워있기 바빴지만 엄마가 딱히 그런 아빠를 한심해하거나 질책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나도 그 모습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항상 우릴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아빠라고 생각했다. 다만 어린시절 나눈 추억과 대화가 없다보니 스무살이 넘어서도 아빠에게 말을 어떻게 걸어야할지 몰랐다. 이게 이해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빠를 너~~무 사랑하고 아빠랑 친해지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몰랐다. 20대 초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 만나는 무수한 남자어른들과 함께 어울려 일을 같이 잘하려면 먼저 내 인생 최초의 남자사람인 아빠와 친해져야하지 않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이건 기특한 생각인데 그렇게 20대 초반부터 나는 현 서른다섯인 지금까지 꾸준히 아~주 조금씩 노력 중이다.
위와 같은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부터 나는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다른 생명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랑 친해지는 건 안해본 종류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연습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같은 발상의 영향아래, 영화과에 입학했을 때, 영화계가 그 당시 다소 위계가 있고 마초적인 분위기가 강하다는 얘기가 많았지만 나는 이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특성들 중에 내가 좋아하는 면들을 포기하진 말자, 내 여성성 포함‘ 라고 결심했다. 이야기를 잘 만들고 찍는다는 것에는 내 취향과 삶이 묻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이기에 내 삶을 예쁘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잘 꾸려나가는 게 곧 내가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다른 생명체인 걸. 불가능한 걸 하려고 노력하느라, 정작 잘하는 걸 못하는 것도 싫고, 그 와중에 내 알맹이를 잃게 되는 건 더 싫었다. 단적인 예로 2년 전에 난 숏컷으로 잘랐는데(남성화 맥락에서 한 건 아니고 예뻐서 했다^^) 학생시절만 해도 '난 절대로 숏컷은 안 하는거야!' 다짐했었다. 다소 어리숙한 발상이지만 세상에 대한 분별있는 시선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때에 걸맞는, 그래도 다행히 크리에이터로서의 내 고유한 색깔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향의 최선의 다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나고 나서도 후회는 없다.
나는 아빠랑은 사이가 어려웠던 반면 중고등학교 선생님들과는 친하게 잘지냈다. 그리고 중학생 때 친했던 몇몇 남자사람친구들은 여전히 아주 간간히 연락하며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사이로 잘 지낸다. 그래서 그런지 막상 학교 다닐 때 들렸던 흉흉한 소문에 비해 업계에서 만나는 남자사람동료, 남자사람상사, 남자사람 후배들과 잘 지냈다. 아빠를 가슴깊이 사랑하는 와중에 나는 현대사회를 사는 남자들의 아픔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던 것 같다. 또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여자로서의 아픔에 대해서는 감각적으로 느끼기도 하고,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각도 많이했다. 그 결과 나는 현대를 사는 남자는 남자대로 짠하고 여자는 여자대로 짠하다는, 다들 고생이 많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일을 함께하는 남성을 남자로 보지 않고 Human으로 생각한다. 적절한 거리감이 있는 채 업무에 대한 얘기를 서로 존중하며 나누는 사이. 그리고 일하는 동료는 나랑 연애감정을 나눌 수 없는 사이로 아예 성적텐션의 문을 닫아버렸다. 내게는 그만큼 일이 중요했기에 일시적인 감정, 호르몬 장난에 의해 내 일을 그르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나쁜 가능성을 배제하고 싶었다. 물론 Human이라고 생각했다고 말은 하지만 내가 어릴 때 학습한 사촌오빠와의 관계나 남자 선생님들과의 관계, 또 내 남동생과의 관계에서의 행동양태가 내 여동생, 우리 엄마, 사촌 언니를 대하는 행동양태는 다 조금씩 다르기에 남자 동료를 대하는 태도가 여자 동료를 대하는 태도와 꼭 같았다는 말은 아니다. 내 남동생과 사촌오빠 그리고 아빠나 학교선생님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 장황하게 남자와 여자에 대한 내 시각에 대해 털어놓은 이유는 다소 민감한 이슈이기도 하고, 나는 내 스스로 남성관에 대해 그 전까지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 치룬 멋진 썸이 알게했다, 나의 잘못된 남성에 대한 시각과 태도를. 여기서 말하는 남성은 일을 함께하는 남성과 분리된 성적인 긴장감을 나눌 수 있는 남성에 국한했을 때, 그들에 대한 내 태도가 남자를 Human으로 대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된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번에 끊어진 이 관계의 남자는 원래 내게 일을 하는 동료 Human이었다. 그런데 상대가 내게 이성적 호감을 표하자 초반에 나는 극도로 경직되어 그를 밀쳐내기 바빴다. 경직 되느라 내 마음 속에서 그를 이성으로 보는지 안보는지 따위는 살펴줄 여력도 없었다. 극도로 경직되었다고 말하고있지만 이건 내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이었고, 또 바깥으로는 내게 호감을 표하는 그의 모습을 귀엽게 봤고 즐겼고, 상대에겐 내가 느긋한 마음을 유지하는 절제된 사람으로 비춰졌을 것 같다. 왜냐면 처음엔 잘될 생각이 추호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점점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의 문이 열리면서 그에 대항 나의 태도는 달라졌다. 그의 호감에 대해 내가 가진 권리는 아무것도 없고, 그저 나눠주면 감사하고 또 좋아하거나 또 싫어하거나 함께 나누는 시간동안 내 느낌만이 내 것임을 아는 사람이면서도 이상하게 그에게 있어 우위에 서 있는 감정같은 걸 느껴버렸다. 바로 이 지점이 나의 남성에 대한 잘못된 시각으로 일컫는 지점이다.
돌이켜보니 이전 여러번의 연애에서도 나는 한번도 먼저 남자에게 다가가거나 고백해본 적이 없었다. 에너지 총량이 작은 인간으로 태어나 일할 때는 항상 창의적이고 진취적으로 일을 하다보니 내 거의 모든 에너지는 일에 썼기에 일보다 우선순위에 밀려있던 (지금은 삶의 행복에 있어 관계의 중요성을 많이 깨달았기에 달라지려고 하고 있지만^^) 연애에는 많은 에너지를 쏟지 못했다. 그리고 스무살 때 연합동아리에서 오빠들과 친하게 지내다가 동아리 선배 언니들에게 가십의 대상이 되고, 따돌림의 대상이 된 경험이 있은 이후로 남자 사람과 친해지는 것에서 오해를 사는 것에 대해 좀 더 조심했던 것 같다. 연애감정을 나눈 대상들은 사적인 만남에서 만나서 호감을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고백을 받고 연애를 했다. 그리고 서로의 감정이 식을 때쯤 헤어졌다. 나는 상대에게 큰 사랑을 원하는 편이 아니라, 대체로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다가 내 임계치에 달하면 헤어졌던 것 같다. 대화와 갈등을 통해 상대가 원하는 걸 꼭 들어줘야하는 게 아니라, 함께 맞춰가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해 준 사람이 직전 마지막 연애였다.
이번의 그를 제외하고도 내 인생에서도 나와 호감을 나누다가 중간에 사라져버린 남자는 꽤 있었다. 그 중에는 아쉬운 사람도 있고, 좋아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떠나는 이를 붙잡을 생각을 못했다. 인연은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여겼고, 남자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상대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더라도, 상대를 좋아하더라도 그냥 그저 내 감정을 내려놓는 것, 참는 것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다. 직전 연애가 끝나고 나를 많이 반추해보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참 수동적으로 연애했구나 싶은 반성에, 정확한 반성보다는 반발심에 앞으로 고백은 내가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타이밍이라는 게 참 이렇다. 탄생 이래 최초의 고백을 연습도 없이 내가 만났던 남자 중에 가장 오랫동안 가까이서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소중한 대상에게 해버렸다니. 지나고보니 그 고백이 성공하리라 만무하고, 순진하게 운의 흐름에 인연의 노름에 내 패를 맡긴 꼴이네.
고백 이후의 내 감정의 요동 중 일부는 이처럼 지금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떠나더라도 뭘 해보기보단 내 욕망을 참거나 내 감정은 나혼자 소화하며 흘려보냈고, 먼저 고백한 적이 없다는 나만의 특수성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너가 먼저 나 좋다고 했잖아? 왜 안돼?"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내 안에서 올라왔고, 이처럼 땡깡부리는 소녀와 같은 유치한 발상을 하는 내 모습에 많이 놀랐다. 실망도 했다. 그가 나눠준 호감은 내게 좋은 감정들을 불러일으켰고, 내 방어기제를 알게하고 열어내는데 도움을 준 고마운 것임에도, 마치 내게 권리가 있는 양, 내가 그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양 구는 구겨지고 모난 감정들을 발견한 것이다.
남녀관계에서 호감의 정도에 따라 나도 모르게 갑과 을을 나누고 있었던 내 일면을 발견한 것이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건 꼬인 감정인걸까? 아니면 동물로서 본능적인 감각인걸까? 적어도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은 본능적인 감각이 있을지라도 그 감각을 언어화해서 내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상대에게 실수로 뱉어버리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내 못난 모습일지라도, 내가 원하지 않았던 내 모습일지라도 발견했다면 인정하고 수용하는 게 먼저일 것. 이런 내 모습을 잘 알아주고 타일러주어 사랑을 받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사랑을 주는 사람으로 나아가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