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정리]4월11일 미세먼지 가득한 어느날
어느날 친구는 말했다. "영화감독이 직업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해." 조금 멈춰버린 지금의 시간 속에 불안해하는 내게 친구가 해준 충고. 사실 내 스스로 먼저 영화감독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영화감독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인가?'하는 질문부터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냐?' 하는 질문까지. 근간을 흔드는 질문들이 매일매일 반복되었다. 카페 알바를 하다가 친구가 해준 그 말이 맴돌아 휴대폰으로 '직업'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다. 네이버 사전에 뜨는 '직업'의 정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고 나왔다. 정의를 봤을 때 첫 인상은 한 문장에 너무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생계를 유지시켜야하고 /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아야하며 / 일정기간 동안 - 오랜 시간을 써야한다니. 네이버 사전의 정의에 따라 나를 평가해보면 일단 영화를 찍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고 / 자신의 적성과 능력? 재밌어서 이 일을 공부했지만 이 구절에 대해서는 어떤 내 스스로의 믿음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 일정기간동안 계속 종사한다?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종사'라는 단어를 다시 사전에 검색해보니 '1 어떤 일에 마음과 힘을 다하다, 2 어떤 일을 일삼아서 하다' 이렇게 두가지 의미가 나온다. 1번에 대해서는 다행히 일말의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되어졌고 2번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쩝.
조금 우울해졌다. 그럴수록 카페 알바를 열심히 한다. 구석구석 시키지도 않은 카페 곳곳을 닦고 있다. 단순 노동은 생각을 하지 않게 하니까. 어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그러다 잠이 들었고 오늘의 날이 밝았다. 그런데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가고 있는데 내가 언제 쓰여진지도 모르는 네이버 국어사전의 정의에 너무 영향받는 게 아닌가?'
사실 직업이라는 단어도 만들어진지 오래된 단어이고.
이런저런 사고의 과정을 거쳐 내 나름대로 마음을 정리한 건 내가 나를 정의하고 때때로 그 정의를 내가 믿고 살고, 때때로 필요시에 타인들에게 소개할 때 필요한 나만의 소개방식. 그런게 오히려 필요할 것 같다 정도이다. 나는 나혼자도 살 수 없고 타인에 의존해서 살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나지만 '나'와 '내 주변'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유지해야한다. 이건 모든 인간의 죽기 전에 영원한 숙제겠지.
세상이 상상이상으로 빨리 변하고있고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정보에 허덕이며 그래서 어떤 기준없이, 우선순위를 분류할 시간 여유를 갖지 못하고 행하며 살고있다는 기분? 내 스스로의 상태가 인지될 때가 있다. 어쩌면 그런 마음에서 비롯되어 이렇게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그 와중에 내가 좀 더 평정심을 유지하고 살기 위해서는 세상의 정의를 알고 또 내가 그 정의와 내 상황에 견주어 나만의 정의를 찾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그건 '직업'이라는 네이버 국어사전적 의미에 내 현 상황을 비춰보는 것부터 그 정의와 달리 나만의 직업이라는 정의를 찾아보고, 또 현재의 내 상태를 특징짓고 잘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어휘와 구별법을 찾는 것, 더 나아가 '직업'이라는 단어를 넘어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힘들게 하는 그 모든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더 잘 알고싶은 것에 대해서도 필요하다.
이처럼 생각이 흘러흘러 고3 담임이 학년이 거진 끝나가고 입시가 거의 끝나갈 무렵 수업시간에 했던 말이 기억났다. "너네가 대학을 가면, 지금까지 배운건 다 잊어버리고 니가 배우는 그 모든 것 경험하는 그 모든 걸 의심해봐야해. 니가 믿고있는 것까지도 그게 아닐 수도 있어."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에 뉘앙스가 좀 달랐을 수 있지만 그 때도 이 말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들었을 때 인상적이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로 살아가기 위해. 거창하진 않아도 지금 가진 기질 속에서 좀 편안한 방향은 뭘까? 어쩌면 담임선생님이 해준 이 말과 오늘어제 느낀 생각에 해답이 있는 게 아닐까 했다. 물론 생각이란 게 또 좀 있으면 변할 수도 있겠지만. 뭔가 답을 찾고 싶고 명쾌해지고 싶은 인간의 마음. 잠시나마 그런 순간을 발견하는 기쁨을 적어도 나는 살면서 계속 느껴서 살아있다는 걸 확인받고 싶다. 그래서 오늘부터 조금씩 나에게 영화를 찍는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나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 설명하기 전에 내가 아는 것부터 좀 귀를 기울여야겠다. 마냥 우울해지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