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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May 19. 2021

'쌀'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됐다

'쌀'에 기반한 사회 분석 - <쌀, 재난, 국가>, 이철승

# '쌀'로 보는 한국 사회

* 박스 안은 인용구



아시아인은 서구인에 비해 타인과 비교를 많이하고, 질투가 많다. 한 사람의 나이, 직급에 대해서도 많이 신경쓴다. 아시아인의 DNA에 질투를 유발하고, 서열에 신경을 쓰게하는 무언가가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까?


미국에 살고있는 아시아인들이 아시아 본토에서 살아온 사람보다 더 자유분방하고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있음을 고려할 때, 호르몬 차이는 아닐거다.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이철승은 이를 '쌀'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제부터 나는 쌀로, 더 정확히는 쌀을 재배하는 문화와 시스템으로 많은 것을 설명할 것이다. 바로 '쌀 이론'의 수립이다.

설명 목록은 위계 구조와 불평등, 불평등에 대한 인식, 급속한 경제 발 전, 협력과 경쟁의 공존, 행복과 질시, 교육열과 사회이동, 노동시장 구조, 성차별, 연공 문화의 존속 그리고 소통의 문화까지 포괄한다.


저자는 쌀 문화가 우리 사회의 비교와 질투의 문화, 연공서열의 문화, 세대내-세대간 불평등, 낮은 수준의 복지국가 등의 단초라고 주장한다. 처음 접했을 때는 좀 당황했다. '쌀'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읽어나갈수록, 흥미롭고 고객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었다. 저자가 제기한 다양한 이슈 중에서, 나는 쌀이 형성한 집단주의 문화, 비교와 질투의 문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서 간략히 서술해보려고 한다.


도대체 쌀이 뭐길래?




# 쌀 재배에 필요 : 집단주의 문화


쌀 재배는 공동체가 함께해야 한다. 저자는 이걸 성공해내느냐의 여부가, 공동체의 풍요, 더 나아가 생존까지 좌우했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비료, 관개, 트랙터 등 기술이 없었던 옛날에는, '사람'이 거의 모든걸 다 해야 했기 때문이다.


부족의 지도자 계급은 저수지 공사에, 둑을 쌓기 위해 혹은 물길을 끌어오기 위한 수로 공사에 자기 부족을 포함해 인근 다른 부족의 노동력을 대규모로 동원, 투입할 수 있어야 했다. 이 '협업'을 어떻게 조직하고 동원할 수 있는지에 따라 부족의 생존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쌀 문화권의 집단주의는 씨족이나 이웃과 함께 생산 스케줄을 짜서 협업을 통해 노동력을 동원-조직한다. 논밭 갈기, 파종, 모내기, 김매기, 수확의 일정은 마을 단위로 조율되며, 농사의 기술과 기법은 협업을 통해 공유, 확산되고 더 나은 방법으로 개량된다.


쌀 재배에는 물길 만들기, 논밭 갈기, 파종, 모내기, 김매기 등 여러 작업이 필요하다. 이건 혼자 못 한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공동체를 만들고, 협업해야 가능하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볼때, 쌀 재배는 엄청나게 번거롭고, 손이 많이가는 작업이다.


농촌진흥청 농업다원기능평가팀('08)


대신 쌀은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높다. 1헥타르당 인구부양력을 따졌을때, 쌀은 20.4명으로 다른 작물에 비해 인구부양력이 높다. 이와 더불어 밀에는 결핍된 비타민 D, 단백질 같은 영양소도 충분하다. 쌀 재배에 성공만 한다면, 인구의 양과 질은 다른 곡식을 키우는 집단을 뛰어넘을 수 있다.


쌀 재배에 성공한 국가는 다른 국가를 통합했다. 그리고 더 많은 인구와 노동력을 토대로, 더 크고 집중된 국가를 만들어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에는 '쌀 재배'에 특화된 공동체가 형성됐다. 이 공동체는 한 해 쌀 재배를 위하여 정해진 일정에 따라 거의 모든 구성원이 동고동락하며 노동에 동원되는 숙명을 짊어진다.


과거 시험에 합격하거나, 집안이 부유하지 않다면, 우리 선조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공동체'에서 '노동의 의무'를 이행하는 '일원'으로 살아가야 했다. 집단주의 문화가 만들어지는 시작점이다.




# 생산-소유의 불일치 : 비교와 질시


그런데 '쌀'이 형성한 집단주의는 좀 골 때린다. 왜냐하면 노동은 같이하는데, 소유는 각자하기 때문이다. 공동체 구성원은 이장님의 지시에 따라 오늘은 철수네집, 내일은 영희네 집에서 모내기, 제초 작업을 함께한다.


하지만 수확날이 다가왔을 때, 그 결과물은 각각 다르다. 누구는 더 많이, 누구는 더 적게 수확한다. 필연적으로 공동체 구성원간 비교가 생긴다. 그리고 비교는 질투를 야기한다. 만약 내 수확물이 더 적으면? 꼭지가 돈다. 내년에는 질 수 없다고 느낀다.


그 누구보다 가까운 '이웃사촌'간에 비교와 질투, 그리고 경쟁이 잉태되는 출발점이다. 저자는 이러한 '네트워크 경쟁'의 사회심리학적 특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벼농사 체제의 '공동생산 네트워크'로부터 유래하는 '네트워크 경쟁'의 사회심리학적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는 경로 의존성으로 인한 경쟁 문화의 무한 반복과 강화다. 둘째는 상호 의존 및 경쟁과 함께 강화되는 '질시의 심리학'이다. 셋째는 상호 의존과 경쟁이 출구 없이 되풀이되며 만들어지는 '신뢰와 불신의 이중적 공존'이다.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는 서로 모순적인, 공동생산-개별 소유 시스템으로 인해 그 내부에 평등화와 차별화의 욕망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함께 일했기에 결과물은 평등해야 한다. 그래도, 내가 남보다 잘 되는건 괜찮다. 다만, 내가 남에게 밀리면, 그건 참을 수 없다.


공동 노동, 사적 소유의 집단주의 문화는, 개인들에게 '평등화와 차별화'의 욕망을 주입시켰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행복을 찾는 불행한 개인. '동고동락'하는 '이웃사촌'과 너무 깊이 엮여버려서, 서로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


저자에 따르면 밀을 재배하는 서양은, 아시아와는 다른 문화를 구성해냈다.  


밀 문화권의 개인주의의 경우 가구 단이나 마을 단위 협업이 아닌 개별-가구별로 생산 단위가 꾸려지고, 따라서 생산물에 대한 소유 또한 철저히 개별 가구 단위로 이루어진다.

더 많이 생산하고 싶은 자는 더 많이 뿌리고 더 많이 키워서 더 많이 거두면 된다. 각자 뿌린 대로 거두는 보상 체계 는 인간의 노동에 비례해서 자연(신)의 수혜를 배분하는 시스템이다.


밀 농사는 대규모 노동력이 크게 필요치 않다. 개인이 독립적으로 일하고, 수확을 거둔다. 쌀 문화만큼 타인의 수확량에 관심이 가지도 않고, 알기도 어렵다. 신께 기도하면서, 각자 알아서 사는거다.


이게 유럽의 중앙집중형 관료제가 아시아보다 늦게 형성한 이유다. 애초에 얘네는 아시아 국가들처럼 '대규모 노동'을 조율할 관료제가 그다지 필요가 없었다. 한반도 중앙집중형 고려왕조는 10세기에 형성됐지만, 프랑스의 중앙집중형 국가는 17세기부터 형성됐다.


'뭘 먹느냐' 그리고 '어떻게 생산하느냐'가 각 사회의 구조, 그리고 구성원의 '마음'을 결정했다.




# 나이가 깡패 : 연공제


저자에 따르면, 쌀은 나이와 신분을 우선시하는 문화를 가져왔다.


연공 문화 또한 벼농사에서 유래했다. 경험 많고 나이든 농부에게 중요한 의사 결정을 맡기는 벼 농사 체제의 위계 구조가 현대 기업 조직의 연공 문화와 임금제도로 정착한 것이다.


과거에는 '나이가 깡패'였다. 나이가 많다고 다 훌륭한건 아니지만, 나이 많은 사람은 기후변화, 재배방식 등을 다양하게 경험했을 확률이 높다. 이게 쌓여서 '노하우'가 되고, 이걸 토대로 한해 농사가 계획되고 수행됐다.  


아시아에서 나이는 '연륜-경험'과 유사어가 됐다. 나이든 사람을 위계의 끝자락에 '모시는 문화'가 생겼다. 한국 자본주의가 산업화되는 1950-70년대, '쌀 문화'에 익숙한 '농민공'들이 회사의 주축이 됐다. 농촌의 집단주의 문화, 연공서열 문화를 체화한 이들은, 회사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일을 했다.


결국 한국의 회사는 연공서열제를 문화적 배경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구성원에 대한 보상을 '짬순'으로 연봉이 올라가는 '연공제'를 채택했다.


저자는 '연공제'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연공제는 회사의 경쟁력을 잠식한다. 연공제는 '능력'이 아니라 '나이'로 구성원들을 보상한다. 이러한 방식은 '공정성'에 민감한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기가 힘들다. 젊은 세대는 묻는다.


"일하고, 고생하는 사람에게 권한을 주고 보상해줘야지, 왜 나이많다고 보상해주나?"


연공 문화는 새로운 세대와 충돌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단기적으로는 연공서열 문화가 강제하는 위계에 침묵하는 법을 배우지만,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민주적 대인 관계의 가치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에게 연공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회계약이다.

청년들은 한 조직에 뼈를 묻으리라 가정하지 않으며, 입사와 함께 짜인 인간관계를 '출구 없는 전근대 마을 공동체'라고 인식하지도 않는다. 평생고용 모델을 기반으로 구축된 연공제의 '지연된 보상' 원리는, 따라서 이들에게 '오래 된 미래'가 아니라 '도래하지 않을 미래'다.


회사를 '고를 수 있는' 유능한 인재들은, 연공제를 기반으로 한 '답답한 조직'에서 일 안 한다. 피치 못하게 일하게 되어도, 기회가 생기면 이직한다. 유능한 젊은 인재가 수혈되지 않는 기업은, 결국 망한다.


게다가 연공제는 불평등도 조장한다.  


상층 대기업 위주 임금 상승 투쟁을 통한 급격한 임금 인상은 하청업체와 비정규직의 임금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임시직이나 무기 계약직과 같이 연공급 계약 의무가 없는 (사실상의) 비정규직을 증대시키고, 자회사 설립과 사내 하청을 통해 연공급 임금 테이블의 초봉과 기울기를 차별화했다.

이와 함께 원청 정규직 노조원들은 단체협상을 벌여 핵심적이고 사대적으로 안전한 업무를 도맡았고, 사내 하청과 외주를 써서 위험 업무는 비노조 비정 규직에게 전가시켰다. 또한 하청 업체 단가 후려치기로 납품가를 억제함으로써 정규직 연공급의 임금상승분에 따른 비용 상승을 상쇄시켰다.


먼저 세대내 불평등이다. '현대자동차'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연공제 상승 투쟁은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했다. 대신 이 대가로, 비정규직, 임시직의 비율이 늘어났다. 어찌보면 간단하다. 기업이 지불가능한 노동비용에는 한계가 있다. 이걸 정규직-비정규직이 나눠먹어야 한다. 정규직이 더 많이 먹으면, 비정규직은 덜 먹는다.


세대내 노동자들 간 불평등이 유발되는 과정이다. 저자는 독일의 노조는 산업 전체 노동자의 처우를 고려하여 임금 인하, 일자리 나눔도 고려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개별 기업 노동자의 연공제 개선에만 집중하여 불평등을 야기했다고 비판한다.


연공제는 세대간 불평등도 가져온다. 연공제는 4050세대 노동자의 몸값을 급속히 불린다. 기업은 증가한 노동비용에 대응하여, 채용을 꺼린다. 이것도 간단하다. 기업이 지불가능한 노동비용에는 한계가 있다. 4050세대가 많이 먹으면, 2030세대는 덜 먹는다.  


<쌀, 재난, 국가> 본문 발췌


통계를 보면, 중소기업-대기업 모두, 2005년 대비 2017년 매출 대비 임금이 증가했다.(좌) 이와 달리, 30세 이하 노동자의 비중은 2005년 25% 이상에서 2013년 20% 이하로 감소했다.(우) 기업은 노동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그럼에도 30세 이하 노동자의 비중은 과거보다 낮다. 기업이 지불하는 노동 비용으로 누가 혜택을 입는가?


지금의 2030세대는 과거 세대보다 평균적으로 더 높은 스펙, 역량, 경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과거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저자는 연공제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직무급제의 도입을 주장한다.




# 몇 가지 퍼즐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다만 아쉬운건, 밀과 쌀의 차이점이 더 상세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또한 밀이 어떻게 개인주의를 촉발하는지에 관한 메커니즘도 추가됐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이와 더불어 연공제를 불평등의 핵심 원인으로 잡고 직무급제의 도입을 주장하는데, 사실 미국 상황을 보면 직무급제라고 마냥 평등하지는 않다. 물론 '짬순'으로 돈을 더 주는거, 이게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같은 아시아 국가임에도 왜 우리는 연공제를 채택했고, 중국, 베트남 등 신흥국은 직무급을 채택했는지에 대한 서술도 부족하다. 쌀이 그렇게 중요하면, 왜 쌀을 재배한 같은 문화권의 나라에서도 큰 차이가 존재하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쌀'을 기반으로 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시아 국가가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 아시아 국가에서 국가권력의 의미와 권력 행사과정, 가뭄과 왕조 교체의 상관관계 등을 '쌀'로 설명한다. 새로운 창과 이론으로 사회를 분석하려는 저자의 독창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뻔한 이야기, 지루하지 않나?


저번에 리뷰글을 남겼던 저자의 전작인 <불평등의 세대>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재밌게 읽었다. 시간을 내어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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