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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와 인간의 오만함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 : 「추악한 동맹」, 존 그레이

# 이데올로기과 인간에 대한 믿음


민주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이런 ‘~주의’는 바람직한 사회모델을, 즉 유토피아를 제시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사회’, ‘빈부격차가 없는 사회‘ 등.

우리는 ‘~주의’ 이데올로기라 부른다.


이데올로기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째, 사회문제의 발견과 규정.

ex) 빈부격차가 문제다.

둘째, 바람직한 사회모델의 제시.

ex) 빈부격차가 없는 사회.

셋째, 바람직한 사회를 위한 처방.

ex) 사유재산을 없애야 한다.


이데올로기는 그 밑바탕에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을 깔고 있다.

'인간은 문제를 파악할 수 있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좋은 사회를 구상하고 만들 수 있다'는 믿음.


근대라고 불리는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기간에, 이데올로기가 넘쳐났다.

프랑스 혁명부터 68혁명까지.


인간은 저마다의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며, 때때로 피를 흘려가면서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했다.


# 기독교 종말론적 관념와 이데올로기와의 결합


생각해보면 이데올로기는 수많은 아이디어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다.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사람 역설.


저자는 서양 문명에 내재되어 있는 특정한 태도가 이데올로기와 결합한 것이 이런 파괴적인 결과원인이라고 말한다.

특정한 태도는 바로 기독교 종말론적 이다.

기독교 종말론적 관은 역사에 정답이 있다는 관점과 선과 악이 있다는 관점을 내포한다.

기독교인이 세상을 보는 시각은 대충 이렇다.

우리 기독교인은 세상의 악으로부터 박해받는다.

그러나 이 고난 끝에는 신이 예비한 천국이 있다.

결국 선이 악을 이긴다.


기독교 문화는 서양 문명의 토대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기독교 종말론적 관점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익히며 체화한다.

이 예비한 천국, 선과 악.


역사에 정답과 선악 구도가 있다는 관점과 이데올로기가 합쳐지면, 다음과 같이 된다.

인류 역사의 정답인 사회주의.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악을 만나겠지만, 끝내 선은 승리하리라.


인간의 문제해결 능력에 대한 오만한 믿음과 기독교 종말론적 관점이 합쳐지면, 이데올로기는 정답이 된다.

그리고 세상은 선과 악의 결투장이 된다.

걸리적거리는 자는 제거 일순위가 된다.


공산주의자들의 나라에서는 자유주의자가, 자유주의자들의 나라에서는 공산주의자가, '악'으로 상정되고 제거 일순위가 됐다.


인간의 행복이 이데올로기의 궁극적인 목표인데, 현실에서 인간의 행복은 중요하게 취급받지 못했다.

'더 큰 세상'이라는 구호 앞에서 인간은 도구로 전락했다.


# 최후의 이데올로기, 자유민주주의


이 책은 미국-이라크 전쟁 즈음에 발간됐다.

당시 미국은 '절대 악'인 후세인 정권을 밀어내고, 이라크에 해방시키겠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 자유민주주의는 바람직한 사회모델이었다.

그리고 모든 국가가 따라야할 최종적인 정치체제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따라서 점령국인 미국은 모든 국가가 따라야할 '그 정치체제'를 이라크에 이식시키고자 했다.

러나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돈도 많이 썼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말한다.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모든 사회가 따라야할 보편적인 법칙이 될 수는 없다고.

본인들이 원해서 히잡을 쓰고 알라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이 '악'이 아니라고.

인간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가 '선'이고 모든 사회에 정답이라고 믿는 건 인간의 오만함과 욕심이라고.

인간 능력에 대한 과신을 경계해야 한다고.


# 그럼에도..


나는 이데올로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저자의 주장에 일견 동감한다.


인간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완벽한 유토피아를 제시하고,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인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만,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인류는 발전해왔다.

자유, 평등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데올로기의 깨우침 덕택에, 인간은 행동해왔다.


인간은 때때로 역겨울만큼 이기적이고 편협하며 오만하다.

본인이 그런 인간임을 확인하는 과정은 더 없이 토악질이 나올만큼 고통스럽다.

그러나 역겨워하며 반성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 혐오와 냉소에 빠지면, 세상을 살아갈 에너지를 잃게 된다.

허무주의에 빠지면, 죽음만 의미가 있다. 죽고싶지는 않은데.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경각심을 잘 일깨워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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