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분석 : 「사랑은 왜 불안한가」
에바 일루즈라는 사회학자의 「사랑은 왜 불안한가」를 읽었습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왜 대박 났는지 분석한 건데요.
되게 재미있게 잘 썻습니다.
글자취를 남겨보려 합니다.
1.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영화와 책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도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들어봤을 겁니다.
출간 즉시 미국·영국 등에서 곧바로 판매량 1위를 하고 작가는 300억원 이상을 벌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뭔 내용이길래?
2. 전형적이지만 섹시한 신데렐라 스토리
기본 골격은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입니다.
“평범한 여직원이 돈많고 잘생긴 사장님과 사랑에 빠진다~”
신데렐라 스토리는 차고 넘칩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돋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직원과 사장님의 ‘BDSM' 관계.
잘생겼지만 변태적인 사장님은 여비서에게 지배적이고 구속적인 관계를 요구합니다.
"오늘은 나랑 데이트 하는 날이야. 오늘은 나랑 스테이크 먹는 날이야."
때리고, 욕하고, 지배하는.. 가학적 성관계도 동반됩니다.
주로 남자 사장님이 여자 비서에서 이렇게 대합니다.
(5페이지 당 한번 꼴로 성관계 묘사가 나온다고 합니다.)
여성 인권은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요즘의 인간관계에서 자율성·평등성은 제일의 가치입니다.
‘구속적인 관계’는 저주받아야할 무언가입니다.
자율적이지 못한 선택, 평등하지 않은 관계, 독립적이지 않은 자아.
현대의 개인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어쩌면 혐오하기까지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구속, 지배, 얽매임을 다룬 이 책이 도대체 왜 인기가 많을까요?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린 이유는 뭘까요?
3. 사랑만큼은 좀 섹시하게 하자
“오늘 너의 손을 잡아도 기분이 상하지 않겠어? 나와 데이트를 해도 괜찮겠어? 너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싶은데, 너의 의사를 미리 알고 싶어. 지금 너에게 전화해도 괜찮아? 클럽에 가고 싶다는 너의 의사를 존중해야겠지..?”
극단적인 예시지만,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이러면 뭔가 답답합니다.
서로 의사를 존중하는 건 좋습니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거 좋죠.
근데 저는 그냥 꺼려집니다.
서로 너무 떨어져 있는 느낌이랄까? 이게 뭔 연애야?서로 선을 긋고 있나? 뭔가 불안합니다.
“나만 평생 사랑해주라. 오늘 데이트는 너가 좋아할 코스로 짜놨어 날 따라와. 너 클럽 가지마, 나 질투 심해, 나도 안갈게. 오늘 집에 가지 마.”
차라리 저는 이게 더 나아 보입니다.
자율성과 의사는 조금 침범당할 수 있습니다.
근데 누군가가 리드하고 구속하니까 불안함은 덜합니다.
조금 더 불타는 것 같습니다. 연애가 뭔가 진전되는 느낌이랄까?
하여간 더 섹시합니다.
꼭 자율적으로 독립적으로 살아야만 하나? 아 피곤한데.
4. 자율, 평등, 독립. 좋지만 가끔은 피곤해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을 진다.
개인이 따라야할 정언명령입니다.
남이 결정해주는 삶?
자동반사적으로 거부감이 듭니다.
그런데 가끔 피곤합니다.
나도 잘 몰라, 결정이 어려워.
그리고 불안합니다.
이래도 될까? 다 내 책임인데.
구속이 편할 때도 있습니다.
나랑 사귀자. 나만 바라봐. 나만 사랑해.
나랑 영화관 가자. 나랑 여행 가자.
꼭 내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할까요?
상대방이 날 해치는 것도 아니고, 돈 털어가는 것도 아니고.
아 그냥 연애하는 건데..
돈많고, 잘생기고, 몸 좋고, 젠틀한 사장님이 나를 구속한다.
내 의사를 직접 묻지는 않지만, 센스있게 날 리드하고 지배한다.
침대에서도 끝내준다.
싫어할게 뭐람?
이게 소설의 흥행 요인이라고 합니다.
너무 많은 자유로 오히려 불안한 시대.
누구나 좋아할 남자가 내게 가하는 구속.
불안함은 없고 섹시함만 남는 관계
자유와 구속.
저는 그 중간쯤에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