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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Mar 13. 2021

전기는 전기 도로를 타고 달린다

전력 계통에 대해 아시나요?

# 미국에서 정전이 일어나다니


일반 시민에게도, 전력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지옥같은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지난 2월 초, 미국 텍사스에 이례적인 한파와 대규모 정전이 불어닥쳤다. 이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60명에 육박했고, 반도체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는 등 경제적 피해도 발생했다.



전기가 나간 것 뿐인데, 사람이 죽고 경제는 멈췄다. 보통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정전의 원인으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전력 시장 자유화 등을 지목한다. 이거 가지고 좌와 우로 나뉘어서 싸운다.


나는 다른 측면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전기가 움직이는 도로, 즉 '전력 계통'을 살펴보려고 한다.




# 텍사스, 고립된 전력 섬


예상을 뛰어넘는 한파 때문에 풍력 발전기, 가스 발전기, 원전 발전소가 모두 멈췄다고 치자. 그랬다고 해도 만약 다른 지역에서 전기를 끌어올 수 있다면, 정전이 지속되지는 않았을 거다.


우리나라 상황만 봐도 그렇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우리나라 전력의 40% 가까이를 사용한다. 그런데, 서울의 전력자급률은 1.3%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서울 사람들은 부족함 없이 전기를 쓴다. 해안가에 위치해 있는 대규모 석탄,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우리나라 주요 원자력, 석탄 발전소의 위치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원자력은 주로 동남쪽 해안입지해있고, 석탄은 서해안, 동해안 쪽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 전기를 대규모로 생산하고, 이걸 수도권에서 끌어다 쓰고 있는 거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좌), 석탄 발전소(우) 위치


텍사스는 안 그랬다. 텍사스는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 전기를 끌어올 수 없었다. 얘네들은 독립된 '전력 계통'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 계통이라는 단어가 낯설텐데, 그냥 '전기 도로'라고 이해하면 된다.


텍사스의 전기 도로는 다른 지역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 자기들 지역에서 전기가 부족해졌음에도, 다른 지역의 전기를 자신들의 전기 도로에 끌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정전이 오래 갔다.


아무리 전기가 적절하게 잘 생산이 되어도, 전기 도로의 상태가 구리면 해당 지역의 전기 공급에 문제가 발생한다. 반대로, 특정 지역에서 전기가 생산되지 않아도 전기 도로가 잘 운영되고 있다면, 해당 지역의 전기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전기 도로'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 대규모 발전소와 장거리 송전망


지난 글에서,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50% 이상을 원자력과 석탄이 담당하고 있다는  확인했다. 그리고 방금 살펴봤듯, 주요 원자력, 석탄 발전소는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가 주변에 위치해 있다.



수도권이 우리나라 전력의 40% 정도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러한 전력은 수도권 외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 전력의 소비지역과 생산지역이 괴리되어 있으니, 우리나라의 전기 도로는 이걸 잘 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전기 도로는 크게 송전망과 배전망으로 구분된다. 거칠게 구분하자면, 송전망은 지역과 지역 사이를, 배전망은 지역내에서의 이동을 책임진다.


우리나라 전기 도로는 해안가에서 생산한 전력을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수도권으로 전송하는 특징을 보인다.



위의 그림은 우리나라의 송전망을 보여준다. 보면 알겠지만, 송전망은 결국 서울, 경기도와 같은 수도권으로 향해 있다. 이게 그간 우리나라가 구축해왔던 전력계통 체계다.




# 그런데, 이게 어렵다고?


그런데, 이게 어려워졌다. 우선, 송전망 추가 건설에 어려움이 생겼다.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시민 의견이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송전망이 건설되는 지역 주민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밀양 송전탑이 대표적이다. 2001년에 송전망을 짓기로 결정했는데, 실제로 운행에 들어간 건 2014년이다.



누군가는 님비라고 욕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의견도 타당한 측면이 있다. 지역 주민들의 입장을 살펴보자.


우리 지역에서 쓸 전기도 아닌데, 송전망을 짓겠다고 한다. 미관에도 안 좋고, 누군가는 전자파가 건강에 유해하다고 우려의 목소리 표현한다. 결정적으로, 재산권에도 침해가 간다. 쉽게 말해, 땅값이 떨어진다.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평생의 노동을 통해 마련한 집과 토지일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송전망 건설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 쓸 전기도 아니고, 나한테 이득이 되는 것도 없는데, 왜 여기에 송전망을 지어? 제대로 보상은 해줄 수 있어? 이렇게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규모 석탄, 원전 발전소의 추가 건립도 어렵다. 탈원전, 탈석탄에 우려를 보이는 사람도, 막상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 인근에 대규모 원전, 석탄 발전소가 들어온다고 하면 환영할 수 있을까? 이것도 주민들과 합의를 해나가야하는 이슈인데, 이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시대 변했다. 모두가 탄소중립을 말하는 이 시대에, 대규모 석탄 발전소를 짓겠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나? 원전도 마찬가지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전에 대한 두려움은 굉장히 커졌다. 당신 지역에 석탄, 원전 발전소 위치하면 찬성할텐가?


그간 유지해온 전력 체계가 도전에 직면했다.




# 분산에너지의 시대가 왔다


전기를 만들어내는 방식도, 전기를 이동시키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해진 상황이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갖다 쓰는게 아니라, 각 지역에서 필요한 전기는 알아서 생산해서 쓰는 시스템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전력의 소비 지역 인근에 태양광, 소규모 풍력, 연료전지, 열병합발전과 같은 '중소형 발전소'를 지어놓고, 송전망이 아닌 '배전망'을 통해 전력을 이동시켜야 한다.


이렇게 에너지의 소비지역 인근에서 생산된 전기를 '분산에너지'라고 하는데, 우리가 나아가야 할 에너지 시스템이 바로 '분산에너지 시스템'이다.


이건 다음에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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