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레 Sep 30. 2021

[오늘먹은것은] #19, 나의 첫 소곱창

22살, 나의 첫 소곱창은 그리 좋지 않았다.

22살, 나는 미술학원에서 보조강사 알바를 하던 시절

첫 월급이 나온 날. 같이 일하던 형이 월급도 나왔는데, 이런 날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했다.

집에 가야지.. 뭔.. 맛있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귀찮아했지만, 월급 받았다고 좋아하는 형은 마냥 신났는지

내 표정을 읽지는 못했다. 


사실 미술학원 보조강사 알바는 보통 밤 10시에 끝났고, 뒷정리하고 집에 가면 밤 12시였다.

근데 그 사이에 무언갈 먹으러 가자고 하니.. 그거 먹고 게다가 술자리로 이어지면

분명 집에 새벽 첫 차를 타고 가야 할 것 같은데.. 그걸 포기할 정도로 맛있어야 할 텐데..


그런 나를 이끌고 형은 소곱창집으로 데려갔다.

상수역에 위치했던 소곱창 집. (지금은 없어졌음)

'드르륵' 문을 열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형은 소곱창 2인분과 소주 두 병을 시켰다.


"일이 힘들면 술이 달대~ 너도 아냐? "

누가 보면 한 몇십 년 인생 사는 것처럼 보였는데,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기는 했다. 일이 힘들거나 삶이 고되면 술이 달다고

쪼르륵 술을 받고 잔을 하고 마셨다. 나도 달까?


땡! 안 달았음. 알코올 향만 가득했다.

한 잔 마시고 입맛이 급격하게 사라졌다. (내 기억 속 술의 맛은 그랬음)

아직까진 일이 할만했나 보다. 그 와중에 형은 술을 혼자서 연거푸 세 잔을 따라 마셨는데

무슨 일이 힘들길래.. 저렇게 마시지..


기본 반찬으로 나온 당근, 오이를 쌈짱에 찍어먹으며 형의 이야기를 듣던 와중

소곱창이 나왔다. 지글지글


돌판 가운데 아직 자르지 않은 소곱창, 감자, 부추, 그리고 염통 같은 부위들이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삼겹살 같은 향인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기름 냄새 말고는 별다른 향이 맡아지지는 않았다.

뭐 대충 돼지껍질 같은 맛이 나겠지 하고..

갈색 빛의 먹음직스럽게 익은 소곱창 하나를 들어 양념장에 콕 찍어서 먹었다.


음..

음..

느끼했다. 별다르게 고소하다거나 담백한 맛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게 맛있다고 하는 건가? 그냥 기름 범벅인데? 그리고 묵직하게 흘러나오는 곱들 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형은 계속 맛있지 하고? 물었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부추랑 함께 싸서 먹어보라고 해서 그렇게 먹었지만.

음.. 모르겠다.

그냥 부추 양념이 맛있는 거지.. 곱창이 맛있지는 않았다.

그렇게 무슨 맛이지 하고 씹어대니 곱창이 질겨졌고,

언제까지 씹고 넘겨야 하지?라는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졌다.


"형 이게 맛있는 거예요?"

"그럼! 너도 아직은 모르지만.. 나중엔 알게 될 거야! 일단 먹고 소주 한 잔 하자!"


웃겼다.

아무 맛도 모르겠는 건 둘째 치고. 누가 보면 나보다 한 10살 이상 많은 것 같은데

고작 한 살밖에 차이 안나면서....


그 뒤로 곱창에 손이 가지는 않아서 그냥 감자랑 부추만 집어먹었고

기름 냄새가 좀 거북해서 사이다를 시켜서 먹고 끝냈다.


언젠가 맛있어지는 날이 오겠지 뭐..

(아 물론 지금은 없어서 못 먹음)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먹은것은]#18,이것저것하이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