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먹은 이야기. 이것도 모자라다는 게 유머
카이막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튀르키예 편이 방송되었을 때, 백종원 님이 카이막에 대해서 극찬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봤겠지…
그때 백종원선생님이 천상의 맛이라고 아주 격렬하게 카이막을 찬양하셨다. 그런데 그때는 코로나가 한창이라…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었는데, 그래서 다시 해외여행이 시작되면 무조건 이스탄불! 카이막!이었다. 그래도 요즘에 이태원이나 홍대 저 멀리 제주도에서도 카이막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나름(?) 보편화되었다. 맛은 뭐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가격은 거의 3-4배 차이가 난다. 근데 당연함. 왜냐하면 만드는 것이 굉장히 번거롭고 귀찮다. 백종원 님의 말로는 가성비가 더럽게 떨어진다고…
카이막은 원유를 오랫동안 끓이는데, 끓이다 보면 부유물이 생기는데 그때 부유물이 식을 때까지 내버려 둔다. 그리고 다시 끓여서 굳어진 부유물? 유지방을 건져내는데 이것을 카이막이라고 한다.
맛은 생크림 같은데 꾸덕한 생크림?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아니? 영국의 클로티드 크림과 비슷한 듯.
생크림보다는 덜 달고, 더 담백하다. 근데 유지방을 분리한 것이라서 느끼함…
아무튼 이스탄불에 와서 3일 차 아침.
누구보다 일찍 일어났다. 바로 아침 9시에 카이막을 먹어야 하니까. 뒤늦게 나의 이스탄불 여행에 합류한 친구와 탁심광장에서 8시에 만났다. 우리가 찾아갈 곳이 ‘Boris'in Yeri’라는 식당인데, 네. 맞습니다. 이곳이 백종원 님이 드시던 카이막 집입니다.
주요 관광지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정말 카이막! 만 먹으러 가는 곳.
아닌가? 식당에서 아야소피아까지 도보로 20분 정도 걸리니… 관광지와는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가는 길이 꽤나 귀찮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가야 합니다.
아무튼 아침 9시가 다 되었을 시각에 도착한 식당.
그런데 이미 나와 친구가 도착하기 전, 많은 한국인들이 점령해 있었다.
오죽했으면, 인사를 하시는 직원분도 한국어로 해주셨다. 아… 정말 나보다도 부지런한 사람이 있다니. 자존심이 상한다. 내가 먼저 도착했어야 했는데…
우리는 자리를 잡고, 백종원 님이 시키신 그대로 주문했다. 올리브, 토마토, 꿀이 들어간 우유, 그리고 카이막. 아 참고로 그냥 카이막 말고… 꿀이 들어간 카이막을 주문해야 한다. (그림 보고 주문하면 된다.)
제일 먼저 빵과 카이막이 나왔는데, 빵을 잘라서 카이막을 올려서 먹으면 된다.
한국에서도 생크림을 바게트빵에 올려서 먹으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갔던 것 같은데, 카이막도
그랬다. 빵? 있었습니까? 카이막? 있었습니까?
먹다 보면 조금 물리기는 하는데, 그때 올리브 한 점 먹으면 게임 속 생명을 추가로 얻은 느낌.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맛이라고 생각한다. 얼핏 이런 맛이 나겠지?라고 생각하면 비슷하기는 한데
어딘가 더 특별한 맛. 꾸덕하지만 은은하게 단 맛이 퍼지는 카이막. 보통은 기대하고 가며 약간은 실망할 수도 있는데, 카이막은 그러지 않았다.
맛있었다. 맛있네.. 맛있어.. 맛있다…
사람 행복하게 하는 맛이랄까…
바클라바
과거 이태원에서 튀르키예 디저트 가게에 간 적이 있다. 아 물론. 그때 카이막 세트를 먹으러 갔을 때. 근데 거기 튀르키예의 전통 디저트인 바클라바를 먹어본 적이 있다. 바클라바는 얇은 밀가루 반죽(엄청 엄청 얇은…)을 겹겹이 쌓아서 미친 듯이 시럽에 적시고 피스타치오 같은 견과류를 올려 먹는 디저트를 말한다.
한 입 먹으면 정말 달다. 달아서, 입이 절로 벌어지게 된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이렇게 단 것을… 주로 먹나 했는데, 실제로 가니까. 정말 달고 사는 듯했다. 실제로 터키쉬 딜라이트, 바클라바 가게가 우리나라 편의점만큼 걷다 보면 나오고 또 나오는 수준. 게다가 여기에 카이막까지 곁들어서 먹는다. (당뇨 괜찮습니까?)
오스만 튀르크 제국 당시, 왕권 다툼에서 형제들을 죽여도 된다는 법안이 있다던데..
이런 극강의 달콤함이랑 묘하게 잘 어울렸다. 묘하게 튀르키예스러운데? 느낌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바클라바의 식감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바삭거리면서도 후드득 떨어지는 견과류
먹다 보면 조금 물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가끔 생각나는 디저트.
아이스크림이랑 먹으면 더 맛있음.
괴프테 케밥
지금까지 나는 케밥이라고 하면, 얇은 밀가루 피에 고기가 싸져있는 그런 케밥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케밥의 뜻 자체가 그냥 ‘구운 고기’라고.. 이제야 앎. 공부할 것이 많아졌다.
아무튼 아야소피아 쪽에 돌다가, 알게 된 유명맛집이었는데 (이전에 소개한 적이 있음).
오후 3시 즈음에 갔는데도,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유명한 집. 그저 사람이 많아서 들어간 식당이었는데, 유명한 맛집이었다. 역시 돼지라서 그런가 맛집이 자연스럽게 끌린 것인가?!
괴프테 케밥은 튀르키예식 떡갈비라고 한다. 맛은 떡갈비와는 다른 맛. 소고기를 다져서 구운 것이라서 생긴 것은 되게 비슷하다. 익숙해서 달달한 갈비의 맛이 나려나? 했는데, 그저 숯불에 구운 고기 맛이 느껴지는 쌈장이 있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아무튼 고추와 괴프테 케밥을 먹을 만큼 잘라서, 빵에 싸 먹으면 되는데… 어?
갈비랑 상추에 밥이랑 같이 싸 먹는 것이랑 비슷하네…? 역시 형제의 나라인가?!
의외로 샐러드와도 잘 어울리는 맛인데, 담백하니 적당한 기름진 맛에 아삭한 채소나 고추가 함께하면
무난하게 건강식이 되는 느낌이었다. 밥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날 정도로 상당히 익숙한 음식이었다.
아이란
아이란은 튀르키예 국민 음료인데, 정말 식당…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다. 정말 많이 아주 많이.
그냥 아이란이 물과도 같아서, 그냥 아이란 한 잔없으면 일상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다.
아이란은 양젖발효요구르트를 물에 희석해서 소금을 첨가한 묽은 요구르트 음료라고 하는데, 처음 이미지는 무언가… 밀크셰이크 같아서, 달달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너무 건강한 맛이었다. 시큼한 맛의 강렬함이 뇌리를 때리는데 처음엔 먹으면서 으엑 뭐야 이게!라고 했다.
평소에 나는 그릭요구르트로 맛없다고 안 먹는 사람이라… 그런 반응은 당연했다. 아니 바클라바는 그렇게 달면서 아이란… 은 왜 안 달고 시큼하죠?! 중간은 없는 건가?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역시 시간이 흐르고… 아이란을 물대신 먹다 보니.. 물 사 먹는 돈이 아까워서…
어느새 아이란이 없는 튀르키예는 이상했다. 누가 보면 오래 산 줄 알겠지.. 고작 일주일도 안 되었습니다.
시큼한 아이란 한 잔 마시면, 한 끼가 꽤나 풍족해졌다.
식사와 함께하는 음료로 요구르트라니 조금은 어색했지만 그것도 익숙해졌다.
그냥 마트에 가서 사서 먹을 정도로.. 나에게도 익숙한 음료가 되었다.
그냥 튀르키예? 하면, 아이란이 먼저 떠오를 정도.
웨버거
이스탄불에 도착한 친구가, 이스탄불을 여행한 여행유튜버를 보았다고 그 유튜버가 ‘웻버거’를 먹고 맛있다고 해서 먹어야 한다고 했다. 웨버거? 뭐야 젖은 버거? 무슨 뜻이지? 햄버거를 물에 적신 것인가?
워낙에 빵을 식사라고 생각해보지 않는 나였기에… 그게 뭐 딱히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물에 적신 빵이라니(직역하면…) 뭔가 식감도 이상할 것 같았다. 아직 전통 케밥도 안 먹은 마당에
퓨전 음식 따위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떠나기 하루 전날. 아픈 친구의 저녁을 사러 탁심 광장에 있는 케밥집에 들어갔다.
케밥을 포장하려는데, 거기 마침 Wet Burger 메뉴가 있었다.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았고… 그게 먹고 싶다는 아픈 친구가 떠올라서 웨버거 하나를 포장했다.
한 입은 말 그대로 촉촉한 햄버거 맛이었다. 뭐라고 해야 하지, 햄버거 맛인데
겉이 촉촉해서 수분을 가득 머금은 햄버거 맛이었다. 덕분에 손에 뭐가 많이 묻어…
그리 크지 않아서, 한 개 정도로는 부족할 수도 있는 점.
뭐 특별히 대단한 맛은 아니었지만 한 번쯤은 사서 먹어도 좋을 이색적인 음식이랄까.
케밥
대망의 케밥. 튀르키예에 왔으니, 먹어야 하는 건 당연히 케밥이 아닐까?
사실 그렇게 케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고기는 뭔가 상추나 밥에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빵에 싸서 먹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왕 튀르키예에 왔으니 먹어야 하지 않을까?!
워낙 케밥으로 유명한 식당이 많아서.. 사실 어딜 가도 맛은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웬만하면 다 맛있다.
내가 찾아간 곳은 그랜드 바자르 근처에 있는 식당. 그랜드 바자르 구경하기 전에 미리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아이란 한 잔, 케밥 한 개를 주문했다.
빵이 일단 두툼해서 좋았는데, 진하게 느껴지는 숯불의 향이 미각을 더 자극했다.
식감도 좋았는데 기름과 육즙이 진하게 터지는 것 같아서 인상이 깊었다. 그렇게 맛있게 먹었는데..
옷에 흘렸다. 그것도 기름을 흰 옷에…
기름…. 지워지나? 안 지워집니다. 그 옷은 이제 엔딩이 나버렸다.
그랜드 바자르를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름이 묻은 옷을 입고 다니기는 조금 그래서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네. 케밥만 먹고 온 사람이 되었다. 말했다시피 케밥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여기 케밥은 다시 생각이 난다. 두툼해서 다시 먹어보고 싶은 그 케밥… 잘 지내죠?
베이란
튀르키예에 와서, 한인민박에 먹으니까 딱히 한국 음식이 그렇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마다 정갈한 한식을 먹어서이기도 했는데…근데 하필이면 내가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가. 얼큰한 것이 먹고
싶었다. 얼큰한 것… 얼큰한 국물!!
그러다 한인민박에서 베이란을 먹어보라고 했다. 무슨 맛인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가서 한 입 먹으면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마침, 이집션 바자르 근처에 갔다가 내가 이전에 찾아놓은 베이란 맛집이 생각나서… 배부르다는 친구를 데리고 들어갔다.
베이란과 빵을 주문했다.(아니 베이란을 주문하면 빵이 나온다.)
그리고 나온 베이란. 한 입 먹고. 눈물을 흘렸다.
왜 튀르키예에서 한국의 맛이 느껴지죠?
그렇다 완전한 육개장의 맛이었다. 얼큰하고 진한 육개장의 맛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한국과 비슷한 음식을 찾을 수 있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건 너무 육개장이잖아요…. 한국 안 가도 되겠어요.
근데 밥이 없이 빵이 있어서… 안타깝기는 했다. 밥도 있기는 했는데, 양념된 밥.. 기름과 향신료로
버무린 밥… 아냐 이거 아냐… ㅠㅠ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기억도 안 난다. 국물을 흡입을 한 것 같다.
결국 빵을 찢어서 베이란 국물에 적셔 먹었다. 앞으로 여행이 3주 정도 남았는데, 그동안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맘만 먹으면 매일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참고로 베이란은 가지안테프 지역의 음식이라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가지안테프 지역은 이번에 지진이 난 곳이다. 안타깝다..
튀르키예 여행기를 쓰는 와중에 튀르키예 지진 소식을 들었다.
다녀와서 그런지 더 마음이 쓰이는 것 같다. 하루빨리 복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