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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레 Feb 16. 2023

[내향인의여행일기] 이스탄불 여행기 4편 안녕!

이스탄불 여행기 마지막 편. 이제 튀르키예를 떠나기.


아야소피아

내가 이스탄불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아야소피아!

아야 소피아랑 하기야랑 다른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아야나 하기야 나 같은 뜻이라고 한다.

과거 비잔틴 제국 시절에는 성당이었지만 지금은 이제 거기에 개종을 곁들인… 모스크. 


오스만 제국 시절에 하기야 소피아가 너무 멋있어서, 그대로 두자고 했다고 한다.

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서유럽의 경우 ‘성당’하면 뾰족한 첨탑, 스테인글라스, 직사각형의 형태의 건물인데, 하기야 소피아의 경우 그와는 반대로 둥글둥글 지붕, 거대한 사각형의 건물. 서유럽처럼 위로 뾰족한 것이 아니라.. 옆으로 널찍한 건물. 이슬람에서 이러한 형태의 건물을 보고 멋있어서 모스크 만들 때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슬람 건물 지붕이 대부분 둥글둥글.



아무튼 이번 이스탄불 여행의 목적이 아야소피아였다. 그런데 아야 소피아가 무료 개방으로 변하면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사람들이 줄을 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네 그러니까. 들어가기 어려워졌대요. 파워 J인 나는… 그럼 언제 가서 줄을 서야 하나요?

라고 생각했는데, 돌아오는 답은 알 수 없으니 아무 때나 가라고 했다. 네? 아무 때요? 그게 가능하나요?


그래서 내가 선택한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아침을 먹고.. 재빨리 아야소피아로 향했다.

네. 예상대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문제는 끝이 안 보였다. 그 끝을 찾기 위해… 줄을 되짚어가보니 무슨 골목길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대형 유적의 위엄이랄까…)


여기서 내가 경험한 사실 하나가 있는데, 바로 중동 사람들의 질서 의식? 이전에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종교적으로 깊은 사람들… 중동 사람들은 뭔가 질서를 잘 지킬 것 같은 그런 이미지가 있었는데 (왜 있는지 모름). 이번에 아주 산산조각이 났다.


"줄을 서는데요. 제 차례가 안 오네요."


줄을 서 있는데(그러니까, 마땅한 대기줄이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새치기를 해왔다.

감당 못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고개 돌리고 다른 데 보고 있으면 어느새 내 앞에 새로운 모습의 뒤통수가 나타났다. 뭐야? 친구는 히잡 스타일이 달라지고 있다고, 내 눈앞에서 패션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뭐야..라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사람이 자꾸 내 앞에 추가! 추가! 하고 되니까 나중에 사람이 빠질 때가 되면 아주 눈에 불을 켜고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다. 개인적인 경험이니까.. 나만 그런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아무튼 약 1시간 30분을 대기해서 들어가게 된 아야소피아! 생각보다 오래 대기를 하지 않아서, 나름 꽤? 괜찮다?라고 생각했다. 새치기만 아니면 아마 한 시간 정도 걸리지 않았을까?!


그렇게 웅장한 하기야 소피아에 들어오게 되면, 일단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한인민박에서 가기 전에 신발을 담을 가방을 챙겨가라는 조언을 들어서(실제로 너무 편했다.)


보통 유적지 사진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조우하게 되면 크기가 작다는 느낌이 강했던 적이 많은데, 아야 소피아는 그냥 컸다. 실외도 크고! 실내도 크다! 그냥 컸다! 어떻게 오랜 시간 동안 이 자리에서 버텨주었는지 감사할 따름이었다. 내가 동로마 시절의 건물을… 걷고 있어! 이런 느낌이 들자마자 마음이 웅장해지기 시작했다. 실내는 사람이 정말! 정말! 많았는데, 나와 같은 관광객도 많았는데 무릎을 꿇고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뭔가 나까지 경건해지는 느낌. 종교는 달랐지만, 그들이 하늘을 향한 마음이 간접적으로나마 전달이 되었다.


과거 바르셀로나 가우디 성당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느낌이랄까…

떠들고 싶어도 분위기에 압도되어 떠들 수 없었다.


웅장 그 자체였던, 하기야 소피아


하기야 소피아는 로마의 판테온처럼 대형 천장이 아주 높게 솟아있는데, 과거에는 모자이크 벽화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때 그 모습이 100% 유지가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앞서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고 했는데, 여름에 오면 전 세계의 발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다행히 가을이라서 그런 냄새를 맡지는 않았다. 신발을 벗고 들어와서 좋은 점이라곤… 아무 바닥에 편하게 앉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여름에는 못 오겠다. 전세계 사람들의 발냄새가 궁금하지 않으니까!"


몸도 마음도 쉴 겸 약 한 시간을 소피아 성당에 있었다.




갈라타 타워

갈라타 타워는 중세시대에 지워진 돌로 만든 타워인데, 이스탄불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 중 하나! 페리를 타고 건너다가도… 그냥 걷다가도 볼 수 있는 타워인데. 누가 봐도 랜드마크!라는 느낌이 확 든다! 이스탄불을 떠나기 전. 친구가 아픈 관계로 혼자 가게 되었다.


"이스탄불에 오면 한 번쯤은 가볼 만한 곳. 아니?! 가는 게 좋겠다!"

저 멀리 보이는(?) 갈라타 타워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내려서 또 2층 정도를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타워답게, 올라서면 이스탄불의 시내를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다. 타워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발코니(?)가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사진 찍기도 애매한 곳.

갈라타 타워 쪽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구도심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난 굳이 사진을 찍지는 않았는데,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좋았던 곳.

돌아다니다 보면, 늘 볼 수 있었던 갈라타 타워.


구두 사기

여행하면서 사기, 소매치기 이런 일은 당해보지도 않았다. 물론 가기 전에 미리 알고 갔고, 공부를 했다. 인종차별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당한다고 쳐도, 사기나 소매치기는 내가 조심하면 그래도 지킬 수는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갈라타 타워에서 내려오는데 저 멀리 구두상자를 들고 가는 아저씨가 보였다.

그러더니 딱 내 앞에서 구두 솔을 떨어트리는 거. 사기라고 1도 생각 안 해봤다.


솔을 주워주었다. 그랬더니 고맙다며 내 신발을 닦아주겠다고 했다.

엥? 내 신발 운동화인데요? 어떻게 닦아주겠다는 거지? 난 됐다고.. 바쁘다고 했는데

내 신발은 안 닦아주면 자신이 너무 불행할 것 같다고 했다. 음… 뭐 그런가? 하고


조심스레 신발을 내었는데, 아저씨가 재빠르게 구두 솔에 물을 묻혀 신발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축축이 젖어드는 신발. 그런데 아저씨가. 갑자기


자신에게 딸 둘이 있다. 강남스타일 좋아한다. 한국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난데없는 외국인의 한국 사랑 이야기.

삐빅- 사기입니다. 사기입니다. 사기!


그 순간 아 도망쳐야겠다…라고 했는데 늦었다.

내 신발은 이미 축축… 우울했다. 한 5분 닦아 주셨는데… 감사하다! 하고 가려는데

붙잡더니 돈을 달란다. 200리라…


200리라면 거의 한국 돈 16,000원 정도. 아니 무슨 신발 닦는데… 16,000원이에요..

아저씨는 그때부터 말이 안 통하기 시작..


"아니! 저 운동화인데 구둣솔로 왜 닦죠?!"


나 돈 없어요 아저씨. 현금 190리라뿐인디…라고 하니까.

그거라도 주라고, 아니 보이자마자 가져가심. 내가 돈 없다. 나 여행자다라고 하니.

10리라 깎아 주셨다…(?) 


결국 어이없게 삥이 뜯긴 나는 숙소로 돌아오면서 기분이 너무 안 좋아졌다. 아… 정말..

어이가 없어서… 여행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기분이.. 너무 안 좋아져 버린다.

그날 하루가 여행을 망치는 기분…


우울한 기분을 달래주었던, 이스탄불의 고양이들.


하… 내 돈…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안녕, 이스탄불

감기에 걸린 채… 이스탄불 여행이 끝이 났다. 나 때문 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리에서 이스탄불로 넘어온

내 친구도 몸살에 걸리게 되는데, 누구 때문일까… 나 때문일까? 괜히 미안해지네.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이틀은 거의 숙소에서 나가지도 않았다.

나와 내 친구는 기침만 하다가 이스탄불 여행을 했다. 기억도 안 난다. 그저 기침하고 스트렙실 먹고

또 차 마시고 골골대고… 이스탄불의 고양이처럼 골골댄 기억만 난다. 


그래도 이스탄불에서 많은 고양이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달달한 것도 엄청 먹고.

마냥 나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행이란 건 원래 이런 거니까.


친구는 이스탄불 여행을 마치면 바로 한국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아테네로 넘어가고…

떠나는 날 우리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떠나는 날 이상하게 기분이 오묘했다. 떠나게 돼서 다행인 걸까?!"


그리고 눈물의(?) 이별을 했는데 친구를 먼저 떠나보내니 기분이 묘했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데 그런 우리가 유럽에서 만나다니… 한국 가면 과연 우리가 자주 만나면 좋은데


그래도 덕분에 든든했던 것 같다. 사실 여행하면서 혼자 하는 것도 좋았지만

편한 친구와 함께하면 더 좋기도 하다. 친구는 이스탄불이 싫다고 했다. 아무래도 아프기만 하다 가는 것이니까… 물론 나도 아쉽기는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괴레메와 같은 튀르키예의 소도시를 안 간 것인데 덕분에 다시 올 이유가 생겼다는 것.

사비하 괵첸 공항에서 바라본 내가 탈 비행기 '페가수스 항공'

공항에서 마지막 차를 마시고, 아테네행 비행기를 탔다.

안녕 이스탄불,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올게.




테러 그리고 지진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유럽 여행 중. 점심을 먹고 있는데, 식당에 설치된 티브이에서 튀르키예, 테러라는 영어 자막을 보았다.

무슨 일이야? 하고 알아보니,


탁심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설마 했는데, 그것이 진짜였다.

일주일 전 내가 매일 돌아다니던 그곳에서 말이다. 심지어 테러가 일어난 곳은, 친구가 묵었던 숙소 근처였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사상자가 일어난 정말 그 폭탄테러! 예전에 공항에서 테러가 일어나서 공항 입장할 때나 퇴장할 때나 짐검사를 했었는데 그렇게 철저한 대비는 당연했나 보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도 들었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지금 살아 숨 쉬고 안전하게 돌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이자 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 일어난 지진까지… 안 그래도 경제 때문에 상황이 많이 좋지 않다고 들었었는데… 하루빨리 잘 극복해 내는 튀르키예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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