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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Oct 03. 2024

[9월]의 '노래'

혁오 - TOMBOY



9월 30일은 월요일. 징검다리 휴일에 쓴 연차였고 서울에 갔다.


아침에 일찍 준비를 마친 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남산서울타워로 향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친구들과 여름휴가 때 1박 2일로 관광을 갔었던 명동 근처였다. 유명한 대표 관광지여서 그런지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았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비롯해 어떤 나라의 어떤 언어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낯선 말들이 쉴 새 없이 귀에 들어왔다. 귀가 조금 피로한 것 같기도 했다.


지하철에서부터 전망대에 올라가고 나서도 계속 이 노래를 들었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듣긴 했고 노래가 무척 좋았다. 밴드 '혁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5년에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방영했던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그곳에서 정형돈과 함께 '오대천왕'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멋진 헛간>도 좋아한다. 듣자마자 마음에 꽂히는 노래를 찾는 건 정말 어려운데 그만큼 찾아내면 엄청난 기쁨과 희열이 몰려온다. 애호가까지는 아니지만 노래와 음악을 들으며 사는 걸 멈추지 못하는 이유다.


톰보이는 2017년에 발매된 혁오의 첫 정규앨범 '23'에 수록된 타이틀곡이다. 그러니까 발매된 지 거의 7년이 다 된 지금에서야 이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글로만 이루어진 가사가 좋았고, 서서히 저무는 저녁노을과 박명이 하늘을 감싼 시간대와 어울리는 몽환적이면서도 찬란하고 서정적인 밴드 음악과 절규하듯 부르는 특유의 창법이 머릿속에 가득 차 울렸다. 빈틈없이 꽉 찬 음악은 간혹 박자에 맞춰서 심장이 둥둥 울리는 느낌이 든다. 콘서트에 가면 스피커에서 나오는 커다란 베이스와 드럼이 온몸을 공명하게 만들듯이. 청춘이나 성장이 핵심 이야기가 되는 휴먼 드라마의 OST 같기도 하다.


가사가 좋아서 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작은 무지공책에 가사를 적었다. 글씨가 잘 써져서 마음에 들었다. 다른 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샤프도 부드러워서 좋다. 학교에 다니는 사촌동생이 샤프를 알아보았으니 학생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필기구 브랜드인 모양이다. 친구들이 준 선물들로 마음을 가득 담고 기록할 수 있어서 들뜬 마음으로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내가 보고 싶다는 답장이 왔다. 실제로는 장난스러운 분위기였는데, 이렇게 쓰니 퍽 낭만적인 상황이다.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소모되듯 사라져서 남는 게 별로 없다. 한 달이 지나도 마찬가지다. 서른 개의 나날이 모여 한 개의 달이 지났지만 생각나는 건 없다. 이 노래를 들으며 전망대에서 넓은 서울 전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조금 울렁거렸다. 높은 곳이 무서운 것도 있었지만, 나는 사람의 마음에는 크기도 깊이도 다른 우물 혹은 호수나 저수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 누군가는 그저 얕은 웅덩이만 가지고 있을 것이고 ― 그 수면에 파동이 일어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 이 노래는 그 순간을 만든다. 마음의 호수가 아롱아롱한 물무늬를 만들며 일렁거리는 순간.


외로움과 불안은 항상 내 마음에 머무른다. 잃어버린 것도 없어진 것도 있다. 불에 서서히 타면서 연기가 되고 잿더미만 남기고 간 것들,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들도 있다. 뭐가 뭔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훗날 생각해 보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내 마음에서 사라진 것들과 어느 순간 잊어버린 채로 살아온 존재들. 나는 나로 태어나서 나로 줄곧 살아가는데, 그런 내가 낯선 타인처럼 조금씩 변해간다는 사실이 좀 서글프기도 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서 예전의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때 느끼는 슬픔과 상실감처럼.


없어진 것들을 되찾는 대신 애도를 해야겠다. 이 노래는 마모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담겨 있으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생을 산다. 그 수많은 생애 중에서 단 하나조차 알 수 없다. 자생하는 나의 삶도 모르겠다. 스스로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불가해로 여기며 살고 있다.


노래는 외로운 순간과 불안한 순간, 불에 타 사라진 것들과 그것들이 남기고 간 것들, 떠나간 사랑과 찾아온 이별, 떠나간 것들로부터 닮아버린 자신의 모습을 노래한다. 그래서 이 노래를 '9월의 노래'로 선정했다. 10월에는 어떤 노래가 될지 모른다. 노래가 아니라 책이나 문장일 수도 있다. 아니면 하나의 풍경이 될지도 모르겠다. 달마다 나에게 남은 것들 혹은 새로 찾아온 것들을 하나씩 써보려 한다.


무언가를 자꾸 남기려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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