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 노래와 가수의 정체를 찾았다. 가수는 슈퍼밴드라는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호피폴라(Hoppipolla)'였고, 노래는 2020년 8월에 발매된 싱글 음원 <Let's!>였다. 특이하게도 다른 밴드처럼 드럼과 베이스가 없고 보컬, 기타, 첼로 연주 멤버로만 이루어져 있다.
밴드에 첼로라니, 생소한 조합이었다. 잔잔한 강물처럼 흐르는 첼로 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다. 별자리처럼 풍성하고 아름다운 선율. 내가 사랑하는 트로피컬 하우스 장르의 곡.
그들의 무대는 유튜브에서 처음으로 봤다. DJ 프로듀서 故 아비치(Avicii)의 노래 <Wake me up>을 컨트리로 편곡하여 연주하는 영상이었다. 원곡은 초반부터 신나는 컨트리 기타 소리로 시작되지만 이 밴드가 편곡하여 꾸민 무대는 노래 중간까지 발라드처럼 잔잔한 첼로, 고요하고 섬세한 보컬로 이어진다. 2절이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전환되고 조명이 밝아지면서 즐거운 노래가 시작된다. 이때 첼로의 연주는 가히 금상첨화인데, 웅장한 클래식 음악에서만 쓰일 것 같은 첼로가 밝고 친근한 멜로디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다.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글이 몇 개 있었다.
무대를 위해서 자기 악기를 내어주다니 정말 멋있다.
악기에 손을 대게 하는 게 엄청난 변화인데, 노래와 팀을 위하는 마음이 진짜다.
멤버들이 모두 첼로를 연주하는 장면에서부터 이미 무대가 완성되었다.
무대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는 보컬도, 기타도, 건반도 아닌 첼로다. 옆에 있던 멤버들이 한 명씩 다가와 조심스럽게 첼로의 현을 튕기며 음을 내거나 첼로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리듬을 만들어내는 퍼포먼스. 음악 쪽으로는 문외한이기에 댓글을 읽으며 의아함을 느꼈다. 악기를 내어준다는 게 뭐지. 남의 악기에는 손을 대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 걸까. 첼로가 비싼 악기여서 그런 걸까.
연주 전문가 입장에서, 자신의 악기를 다른 사람이 연주하게 하게나 손대게 하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를 호가하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본래 악기 ― 특히 현악기 ― 는 예민하고 섬세한 존재인지라 조금만 잘못되어도 소리가 이상해지거나 악기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밴드에서 첼로를 담당하는 멤버는 음악대학교를 첼로 전공으로 졸업한 첼리스트. 그러니까 그는 멤버들이 자신의 첼로를 연주하다가 첼로가 망가지거나 소리가 이상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무대를 위해 기꺼이 다른 사람들이 첼로의 현을 만지고 몸체를 두드릴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것이다.
악기의 귀중함이 단순히 가격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수천만 원의 악기가 망가져서 연주할 수 없다면 악기를 고치거나 새로운 걸 구매해야만 하는데, 이는 단순히 '비싼 악기가 부서졌다!'에서 그치는 일이 아니다. 똑같은 곳에서 만든 똑같은 악기를 구매한다고 해도 결코 기존의 악기와 똑같은 느낌과 안정감은 받을 수 없다. 비록 무생물일지라도 수십 년을 함께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이어지며 호흡을 맞췄던, 가장 소중한 동료가 사라진다니. 연주가로서 얼마나 허무하고도 비통한 일인가. 똑같은 재료에 똑같은 방법으로 조리해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지듯이, 내 손에 들린 악기에 따라서 노래의 호흡이 달라지고 음악의 맛이 달라진다.
악기 연주가에게 악기는 단순히 직업을 위한 도구가 아닐 테다. 삶에서 가장 귀중한 동료일 수도 있고, 온전히 나에게만 맞추어진 모습으로 조금씩 가꾸어진 투영체일 수도 있다. 갑자기 새 악기를 주면서 "당신이 지금 쓰는 악기보다 훨씬 비싸고 좋은 악기입니다. 앞으로 이것으로 연주하세요!"라고 한다면 흔쾌히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라면 "나에게 가장 좋은 악기는 지금 나와 함께하는 이 악기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삶을 음악으로 본다면, 지금 나는 어느 구간을 지나고 있을까.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 중 무엇을 따르고 있을까. 쉼표는 어디에 있고 셈여림표는 무엇이 붙어 있을까. 오직 나에게 맞춰진 것. 의도하지 않은 사이에 나에게만 맞추어진 것. 나의 것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건 삶의 일부분이고 과정이다. 각자의 방향과 길을 찾아가는 여정. 각자의 삶에 맞는 악기.
삶을 하나의 음악이자 악보라고 생각해 볼까.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내가 만든 음악을 감상하고 선율을 들으며 마음을 되짚어보는 일. 경쾌하게 연주할 수도 있고 악보 한 면을 쉼표로만 채울 수도 있겠다. 나침반도 등대도 이정표도 하나 없이 불안한 길을 걷고 있지만 이것도 음악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음정도 박자도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음악이라고 생각해 보면, 나는 선율 위를 걷고 있다. 오직 내가 만들어내고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목적이 없는 유랑이고 여정이고 모험이니까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어둠이 찾아오고 추위에 떨고 넘어져 다치더라도, 숲을 나가면 다시 드넓은 하늘과 그리운 들판이 바람에 연주되고 있을 테니까. 나의 인생은 내가 아니면 연주될 수 없는 단 하나의 악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