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야사 Jul 12. 2024

사람은 사랑을 기억하며 걷는다

한 번 받은 애정도 평생의 기억이 되듯이


기념일이나 이벤트에 다소 무심한 것은 천성이기도 하지만 집안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기념일은 가족 구성원의 생일, 엄마와 아빠의 결혼기념일, ― 다만 기억하는 사람은 대부분 엄마다. 아빠는 결혼기념일은 물론 자신의 생일도 자주 까먹는다. 물론 나도. ― 외조부모님의 생신 정도가 전부였고, 생일이라고 해도 그 전날이나 당일에 생일 케이크를 사서 함께 먹을 뿐 특별한 일정은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가족끼리 혹은 친척들이 모여 어디로 놀러 가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 워낙 어린 시절이라 기억은 많이 없다.


작년 생일에는 엄마가 손편지를 써 주었다. 엄마와 아빠는 평생 나를 사랑할 거라고 적혀 있었다. 사실 생일이라고 해도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짜를 기억해서 축하할 뿐이지만, 때로는 말 없는 선물보다 진심이 담긴 편지 한 장이 더욱 깊게 와닿을 때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생일은 아홉 살 때다.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가 있는 안방으로 갔는데, 누군가 ­― 아마 외할머니나 이모였을 것이다. ― 와 통화를 하던 엄마가 내게 저쪽 방으로 가 보라고 했다. 내가 왜? 하고 묻자 엄마는 그냥 가 봐, 라고 말했다.


엄마가 말한 저쪽 방에는 생전 처음 보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아마도 분홍색이었을 현수막에는 '엄마 아빠의 보물, 생일 축하해'라고 적혀 있었다. 보물이 아니라 기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천장에는 풍선이 여러 개 매달려 있었고 발치에도 알록달록한 풍선이 굴러다녔다. 부모님으로부터 생일 이벤트를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나 또한 전혀 기대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내가 엄마에게 웬일로 저런 걸 했느냐 했더니 엄마는 또 그냥, 이라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도 좀 부끄러웠던 것 같다. 애정 표현에 인색하지는 않았으나 엄마도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하기는 어색해했으니까. 다만 나보다 먼저 태어난 형제들은 그런 생일 이벤트를 받았던 기억이 없다는 게 의아한 점이다. 내가 막내여서 특별히 가장 어린 나에게만 생일 이벤트를 해 주었던 걸까. 혹은 내가 모르는 걸 수도 있다.



사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기억인데 얼마 전에 불쑥 떠올랐다. 아마 '사람은 어린 시절에 받은 부모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글을 본 직후였을 것이다. 부모님이 미워지는 순간이 찾아와도 쉽게 등을 돌리지 못하는 이유는, 몸과 마음에 기억으로 새겨진 애정과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오랫동안 지니고 산다. 엄마가 잠에 들려는 내 얼굴을 다정하게 쓰다듬어줬을 때나 어린 나의 발바닥에 뽀뽀를 해줬을 때 느꼈던 편안하고 깊고 따스한 사랑과 안정감 같은 것.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걷다가 비행기나 그네를 해달라고 하면 엄마와 아빠가 양쪽에서 내 몸을 번쩍 들어주었던 기억, 아빠가 내게 비행기를 태워주고 목마를 태워주었던 기억…. 좋은 추억이 대부분 어린 시절에 머무른다는 점은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가족은 상당수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경험하고, 가장 많이 부딪히고, 가장 깊게 기억하는 공동체인 만큼 선택할 수도 없고 마음대로 떠날 수도 없다는 점이 괘씸하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며 너그러움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존재하고 가족주의 또한 강한 만큼, 때로는 가정이나 가족에 구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화목하면서도 자유로운 집안에서 태어나 건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며 성장했다면 제일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으니까.



무탈하게 멀어지고, 올바르게 미워하는 것도 어쩌면 사랑의 방식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원망이나 서운함만 쌓인다면 누군들 마음이 편하겠는가. 부모든 자식이든 불완전하고 미흡한 인간이다.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성인이 되어서도 선명하게 남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 사실을 기억하려 한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부모와 자식은 불가항력으로 수직적이었던 애착 관계에서 조금씩 탈피하고 가치관이나 성향, 학업, 금전적인 문제 등의 갈등에 부딪힌다. 자신의 인생관을 만들어내는 자식의 정서적 독립 시도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적으로 돌리거나 자식이 부모로부터 벽을 쌓는 일을 막아내는 것은 결국 긍정적인 기억이 얼마나 많은가, 건강한 유대 관계가 얼마나 형성되어 있는가일 것이다.


나와 부모님 사이의 연결고리가 튼튼하고 흠집이 없다는 말은 할 수 없다. 누군가가 힘을 세게 주어 당겨내면 혈연이라는 관계는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나는 문득 떠오른 저 기억을 비롯한 일부 기억들, 이따금 엄마가 내게 하는 말과 ­― 엄마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좋은 성적을 강요한 적도 한 번 없다. ― 걱정과 편지에서 깊은 애정을 느끼고, 그렇기에 마음을 끊어내지 않는 것이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지금도 외할머니, 이모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모들과는 단체 채팅방도 있어 자주 소식이 오간다. 그 또한 엄마가 가족들과 나누며 자란 사랑, 유대감, 긍정적이고 즐거운 기억의 결과물이리라. ­― 안타깝게도 아빠는 정반대지만 ― 사람의 삶, 전체를 통틀어는 아니더라도 유년 시절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건강하고 올바른 형태의 사랑임을 부정할 수 없다. 사랑한다고 무조건 감싸거나 넘어가지도 않고, 사랑한다고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통제하지도 않는 사랑.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관계. 참 어려운 부분이다. 부드러운 훈육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육아는 양육자와 아이의 규칙 없는 싸움이자 기나긴 타협이기에 교과서 몇 권으로는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실수를 저지르고, 심하게는 자식과의 건강한 애정 형성에 실패하며, 더 심하게는 삐뚤어진 애정관으로 학대를 행하는 게 아닐까 싶다. 강제와 학대에 악의의 유무가 따로 있을까. 폭력은 결국 폭력이라는 선 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은 사랑받은 기억 위를 걸으며 다른 존재를 사랑한다. 사랑을 받아본 적 없더라도 사랑할 수 있다. 다만 사랑을 받은 경험과 사랑한 경험이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조금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사랑을 찾는 과정도, 사랑의 제로섬게임도 아니다. 나는 광범위한 사랑이 인간의 삶과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무의미하고 칙칙한 인생이라고 단정하는 건 지나친 자만이다.


다만 내가 누군가에게 준 애정이나 상처가 그에게는 생각보다 훨씬 큰 조각이 되어 삶의 일부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항상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다. 어린아이도 누가 자신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정도는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어른이 되어서까지 기억할 수 있다. 한 인간을 정서적 결핍 없이 도덕적으로, 폐쇄 없이 기르는 게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인지…. 그건 어느 정도의 행운도 따라야 하는 일이다.



거창하게 바랄 것은 없다. 그저 기억해야 할 것만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 애정,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닳고 마모되어 갈 것이다. 심장은 뛰면 뛸수록 점점 느려질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잊지 않겠다. 기억이 없더라도 감각으로 기억하고 싶다. 하나뿐인 삶을 쓸모없는 마음에 허투루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 최대한 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이 글이 문득 떠오른 어린 시절의 생일 이벤트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신기하다. 글은 자유연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간혹 길을 잃지만 그 또한 생각의 모험이자 문장의 여정이라고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후회와 죗값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