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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Oct 23. 2024

진실과 진심 사이

이꽃님 著, <죽이고 싶은 아이> [장편소설]


- 제목 : 죽이고 싶은 아이

- 저자 : 이꽃님

- 출판사 : 우리학교



환절기에 몸이 놀랐는지 감기에 걸려 정신이 다소 몽롱한 상태로 쓰는 글이기에 다소 두서없거나 이상한 문장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리 양해를 구한다. 또한 1권과 2권의 줄거리 및 결말이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주의를 요한다.


청소년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한 번쯤 읽었으리라 생각한다. 청소년 소설은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와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에 이어 이 작품이 세 번째다. 여담으로 앞서 두 작품은 모두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청소년 문학의 장점이라면 아무래도 문체와 이야기가 음울하거나 무겁지만은 않다는 것.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욕심, 이면성, 원망, 우울, 고독 등 내면이나 감정을 형상화한 이야기보다는 뚜렷한 세계관 혹은 사건, 해결 과정이 존재한다는 점을 좋다고 느낀다. 기본적으로 결말 또한 희망적인 경우가 많아 순수문학 작품을 읽다가 조금 벅차다고 느낄 때면 비교적 산뜻하고 가벼운 청소년 문학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청소년 독자를 겨냥한 책이라고 해서 산뜻하고 가볍다고만 생각하면 오산일 터. 당장 이 책도 한 아이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은 '박서은'이라는 아이가 학교 뒤편에 있는 소각장 근처에서 머리에 벽돌을 맞아 사망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는 서은과 가장 친한 친구였다는 '지주연'이라는 아이. 그러나 서은의 사망 직전까지 함께 있었다던 주연은 정작 자신이 그때 서은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서은이 죽기 직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말로는 용의자라지만 이미 주연의 부모님, 경찰,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을 비롯한 사람들은 모두 주연이 서은을 살해했음을 확신하며 주연을 추궁한다. 하나뿐인 용의자는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는지 아닌지도 기억하지 못하니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질 뿐. 1권은 '서은을 죽인 사람은 정말 주연일까?', '서은이 죽던 날 있었던 진실은 무엇일까?'에 집중하는 서스펜스 추리 이야기다.



숨겨진 진실과 전해지지 못한 진심


빠르게 결말을 이야기하자면, 서은을 죽인 사람은 주연이 아니었다. 복도 창문에 벽돌을 놓고 간 사람은 주연이었지만 그 벽돌을 실수로 쳐서 서은의 머리 위로 떨어뜨린 사람은 다른 학생이었다.


책은 각 등장인물의 시점이 나오며 이야기가 전개되고 중간마다 어느 기자가 주연과 서은의 주변 인물들, 같은 학교 아이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나오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주연과 서은을 기억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 특히 같은 학교 학생들은 더더욱 ― 주연을 '악독하고 무서운 애'라고 말한다.


주연은 자수성가하여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두었고 어머니도 입김이 센 인물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담임교사가 "주연이 부모님은 워낙 유난스러운 분들"이라고 할 정도로, 교사들 또한 우수한 성적에 재력가 부모를 둔 주연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다만 물질적 지원만을 사랑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와 주연을 과시용 자랑거리로만 여겼던 어머니는 주연에게 성공만을 강요했고,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애정을 느끼지 못한 채 성장한 주연의 결핍은 처음으로 생긴 친구 서은을 향한 과한 집착으로 변질되고 만다.


서은과 주연을 기억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지주연이 박서은을 모질게 괴롭혔다"고 말한다. 서은을 가장 소중한 친구로 기억하는 주연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그리고 실제로 이는 맞는 말이었다. 주연은 서은을 향한 소유욕과 독점욕을 느낀 나머지 서은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는 일부러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면서까지 철저히 서은을 혼자로 만든다. 서은의 친구들, 서은의 남자친구에게 강한 질투를 느낀 나머지 서은이 혼자가 되면 자신만을 의지할 거라는 생각에 그런 일을 벌인 것이다.


이 외에도 서은의 평소 행실은 굉장히 나쁜 축에 속한다. 서은에게 매번 "넌 나를 친구로 생각하긴 하느냐"며 신경질을 내면서 부려먹은 것은 기본이고, 고깃집에서 일하는 서은의 어머니를 업신여겼으며, 자신을 혼낸 학원 강사를 성추행범으로 몰아 학원에서 잘리게 만들기도, 어머니와 싸우던 도중 자해를 하고는 어머니를 가정폭력범으로 만들기도 했다. 현실이었다면 이렇게 영악하고 무서운 아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아이들 역시 이러한 행실 때문에 아무도 서은이 주연과 동등한 친구 사이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은은 주연에게 잡혀 사는 아이였고, 주연이 화만 내면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였으니까.


서은은 주연과 정반대로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를 어릴 적에 교통사고로 여의고 반지하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서은은 주연이 입지 않는 새 옷과 신발을 선물 받거나 금전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다. 작중에서 "주연이는 서은이를 도와줬다"고 진술하는 아이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또한 서은이 항상 주연을 좋은 친구라고 이야기했던 것을, 주연이 서은에게 베푼 물질적인 호의를 기억하는 서은의 어머니는 그런 주연이 자신의 딸을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 사랑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자란 일은 안쓰럽더라도, 주연이 뒤틀린 마음으로 저지른 잘못은 결코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주연은 타고난 악인이었을까. 정말 자신의 친구를 벽돌로 내리쳐 죽인 살인범이었을까. 주연이 과연 범인일지 아닐지 궁금해서 흥미진진하게 글을 읽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보다 보면 주연이 서은을 죽였을 것 같은데, 정작 주연은 서은을 죽이지 않았다는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자 극도의 불안과 외로움에 시달린 나머지 서은의 환영을 보기까지 한다. 그토록 서은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한다. 정말 주연이 서은을 죽였다면, 아무리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서은을 애타게 찾고 '네가 내 옆에 있으면 외롭지 않다'라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교차했다.


후반부에는 서은이 죽던 날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이 자세하게 나온다. 서은에게 같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남자친구가 생긴 후 서은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는 분노와 질투에 휩싸인 주연을 학교 뒤로 서은을 불러내 "그동안 나한테서 단물만 빨아먹고 남자친구가 생기니 나를 버리냐, 나와 너의 남자친구 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쏘아붙인다. 그러던 중 이성을 반쯤 잃고 벽돌을 집어 들어 올리는데, 그때 서은은 처음으로 걱정하거나 미안해하는 눈빛이 아닌, 화가 나고 질린다는 듯한 눈빛으로 주연을 바라보며 이제 그만 좀 하라는 말을 꺼낸다.


그날 서은은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주연에게 털어놓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남자친구 때문이 아니라 자신도 주연에게 선물도 사 주고 맛있는 것도 사 주기 위함이었다고. 그동안 받기만 하는 게 죽도록 싫었고, 가난한 집도 싫었으며, 주연이 자신에 대해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고. 그러면서 서은은 그동안 자신이 주연을 이용해 왔다고 말하면서 주연을 한 번도 친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발언을 한다. 불쌍한 척, 착한 척 굴면 몇십만 원짜리 옷도 내어주는 주연이 있어서 편했는데 진짜 불쌍한 사람은 자신이 없으면 기댈 사람이 아무도 없는 주연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이제는 그런 짓도 그만두겠다는 것이, 그날 서은이 주연에게 말한 진심이었다.


"그러게 사람 개무시하지 말고 좀 잘해 주지 그랬냐"고 말하는 서은은, 주연이 그동안 알고 살았던 서은이 아니었다. 서은은 주연이 굳게 믿었던 것처럼 바보같이 착하지도, 약하지도, 물렁물렁하지도 않았다. 그 내면에는 주연이 바라보지 못했던 ― 혹은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 자존심과 당당함이 있었다. 안타까운 점은 주연은 정말 서은에게만 진심이었고, 서은을 한순간도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연은 서은을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정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아이였다. 서은을 향한 애정이 소유욕으로 변질되어 툭하면 서은에게 짜증을 내고 몰아붙이는, 감정적이다 못해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표출되고 만 것이다. 마치 자신의 부모님처럼.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크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딸아이에게 부드럽고 따뜻하게 안겨줄 수 있는지 전혀 몰랐던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말이다.


후반부에 서은이 주은에게 말하는 진심만 보면 서은을 '위선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1권과 2권을 통틀어 주변 사람들과 주연이 기억하는 서은은 언제나 착하고 예의가 발랐던 아이다. 무엇보다 내가 작가라면,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주연의 유일한 친구이자 버팀목이 되어 준 서은을 그저 위선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아이로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은은 분명 선한 마음을 가진 아이다.


서은은 주연을 한 번도 친구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것이 거짓이라고 믿는다. 아니다. 정확히는 그렇게 믿고 싶다. 주연에게 그동안의 진심을 털어놓는 서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정말 서은이 주연을 철저히 이용하려고 했다면, 주연을 그저 비위만 잘 맞추면 비싼 선물을 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면 서은은 후련하고 통쾌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서은은 그러지 않았다. 서은이 만약 주연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와 남자친구에게 주연에 관한 이야기도 구태여 꺼내지 않았을 테고, 자신이 돈을 벌어 주연에게 선물을 사 주고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으리라. 서은의 마음속에는 자신을 내내 무시하고 업신여기던 주연을 향한 분노와 원망, 끝까지 저에게 집착하는 주연의 모습에 대한 실망감과 서러움이 어지럽게 얽혀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건 서은이 분명 주연을 소중하게 생각했었다는 증거다.


그러나 서은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집착하는 주연의 자기중심적이고 거만한 태도에 지쳐서 끝내 주연의 손을 놓기로 했다. 가난한 자신과 달리 가진 게 많은 주연을 보며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고, 박탈감 혹은 질투도 느꼈을 테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되레 실망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착한 것과 참는 것은 별개다. 하물며 자신에 대해 안 좋은 소문까지 퍼뜨린 주연의 편이 되어 줄 이유가 서은에게는 없다. 어느 정도 금전적인 이득은 있었다지만, 서은이 주연에게 등을 돌리기로 결심한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자신을 독차지하려고 혼자로 만드는 친구를 어느 누가 진정한 친구로 여길까. 그건 우정도 사랑도 아니다. 그저 이지러진 집착일 뿐.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


주연이 처음부터 서은을 다정하게 대했다면 어땠을까. 두 사람의 결말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서로를 정말 좋은 친구이자 버팀목으로 여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이 줄곧 남는다. 주연이 뒤늦게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진심을 깨달았지만 그것을 전할 서은은 이미 세상에 없으니까. 어쩌면 그것까지 주연이 감당해야 할 죗값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만에 후속작으로 나온 2권에서는 주연이 서은을 죽이지 않았음이 밝혀진다. 결정적인 진술을 하여 주연의 유죄를 입증한 목격자가 진범이었음을 형사가 밝혀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주연을 '부잣집에서 태어나 주변 사람들에게 갑질을 하고 착한 동급생을 괴롭히기까지 한 악마'로 여겼고, 주연 역시 정신적인 충격과 자신이 서은에게 저질렀던 언행에 의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주연은 여전히 서은의 환영을 본다. 집에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학교에서도 혼자가 되지만 서은의 환영과는 이야기를 한다. 물론 서은의 환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니 사실상 주연이 홀로 말하는 것에 가깝다. 주연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피폐해진 상태인지를 알려 준다.


1권이 '서은을 죽인 범인'과 '왜곡된 진실'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2권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주연의 부모는 주연이 불안정한 상태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애써 외면한다. 주연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주연을 잊을 것이고, 그러면 주연도 다시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현실을 부정한다. 주연의 부모와 서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그들의 속마음도 전권보다 자세하게 나와 주목할 여지가 있다.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참담한 심정은 말할 것도 없다. 서은의 어머니는 주연을 원망하면서도 측은해한다. 차라리 주연이 서은을 죽인 범인이어서 마음껏 미워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주연이 서은의 환영을 따라오다가 서은의 집에 당도했을 때, 서은의 어머니는 주연을 매몰차게 내치려다가도 잘못했다고 울먹이는 주연의 목소리와 배가 고프다고 작게 읊조리는 주연의 목소리가 서은과 꼭 닮았다고 느낀다. 주연을 향한 원망보다도 서은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이 크다.


그렇게 주연은 서은의 어머니와 단둘이 밥을 먹는다. 서은의 어머니는 서은에게 그랬던 것처럼 정성껏 식사를 차려 주고,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음식이 넘어가지 않아 굶으며 지내는 주연은 밥을 먹는다. 두 사람은 함께 서은을 떠올린다. 원망하고 싶지만 마음껏 원망할 수 없는 아이. 죽이고 싶을 만큼 밉지만 계속 살리고 싶은 아이. 서은의 어머니에게 주연은 그런 아이였다. 서은의 어머니는 더는 곁에 없는 서은을 떠올리며 주연에게 "아기가 웃어 주면 엄마는 아이를 낳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 잊는다. 그러니 너도 엄마에게 부족한 딸일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서은이가 또 찾아오면 이제는 오지 말라고 하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주연에게 서은은 유일한 친구였다. 그저 친구를 넘어서 위로하는 방법을 알려 주고 사랑을 알려 준, 은인이자 가족이자 동아줄이었다. 서은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주연은 자신에게 서은이 어떤 존재였는지 깨달았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은 주연의 진심을 서은에게 영영 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서은의 진심을 더는 못 봐주겠다는 마지막 푸념으로 알게 된 것도. 이미 떠난 자는 말이 없다. 먼저 떠난 사람은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숙제를 안겨 주고 갔다.


서은의 마음은 내가 상상해야 할 몫이 되었다. 서은은 결국 주연을 진짜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해석도 있는데, 어쩌면 그것이 진실인지도 모른다. 서은이 죽기 전까지만 해도 주연 역시 서은을 이용했으니까. 주연은 제 마음에 뚫린 구멍을 서은으로 채우려 했고, 그래서 서은에게 집착하고 서은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서은 역시 그런 주연을 이용하면서 이익을 얻으려 했다. 때늦은 진심이란 이토록 허망하게 빗나간다. 남은 사람들이 아무리 애써도 사라진 이의 빈자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그 빈자리를 두고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이, 마음껏 슬퍼하는 것이 남겨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애도이자 사랑이 아닐까.



198p - 나는 종종 진실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진실은 사실 그대로인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것인지. [1권]

작가의 말이다. 쉼 없이 쏟아지는 온갖 정보 중에서 진위를 명확하게 파악할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다. 진실을 믿지 않거나, 반대로 거짓을 굳게 믿으며 살아간다. 인간은 똑똑할지언정 현명하지는 못하다. 그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같다. 머리가 좋은 탓에 지나치게 어리석은 삶을 살기도 한다.


믿는 사람이 없다고 진실이 거짓이 되고, 믿는 사람이 많다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살기도 한다. 나 역시 그렇다. 진실을 거짓으로 여기고, 반대로 거짓을 진실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설령 그동안 믿었던 사실이 진짜가 아니었음이 밝혀진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늦게나마 인정할 수 있는 마음. 우리에게는 그것이 필요하다.



109p - 어쩌다 증오의 사회가 되었을까. 누군가를 헐뜯고 미워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어떤 변명도 들어 주지 않은 채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어둡고 불쾌한 구덩이를 점점 더 크게 만들어 누군가를 파묻고 나면, 그렇게 하면 안식이 찾아오는 걸까. [2권]

서은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진범이 밝혀지고 나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주연을 미워하고 욕한다. 어쨌든 주연 역시 깨끗하고 결백하기만 한 건 아니니까. 그래서 마음껏 저주하는 글을 달고 신상을 캐고 불태워 죽여야 마땅할 마녀처럼 취급한다. 물론 사람들이 주연과 서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주연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나 역시 이런 사건이 있었다면 '어쨌든 괴롭힌 건 사실이고,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것도 사실'이라며 주연을 끔찍한 학교폭력 가해자에 잠재적 살인범이라고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점점 누군가를 증오하고 폄하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에는 이견이 없다. 자신이 단 댓글이 누구를 죽이든, 자신이 퍼뜨린 헛소문이 누구에게 피해가 가든 일절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흥미와 쾌락만을 따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서 어떻게 인간이랍시고 살아가고 있을까! 남을 깎아내리고 혐오하며 죽음으로 내모는 일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짓이니, 이것이 진정 인간다운 일이라며 아둔하고 졸렬한 변명이라도 할 셈일까.


나 역시 깨끗한 인간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을 질투해 왔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비난당하는 모습을 보며 은연중에 통쾌하게 여긴 적도 무수하니. 하지만 그 질투심과 혐오감을 드러내어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은 비난당할 일이 아닌가? 악의적인 댓글과 소문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연예인들을 뉴스에서 많이 봤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들 중 대다수가 나와 같은 세상에서 초연한 얼굴빛을 한 채로 살고 있음을 생각하면 진짜 괴물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151p - 늘 그렇다. 아이가 입을 다무는 건 어른들이 듣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 이유 때문에 입을 다무는 건데도 어른들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고 다그쳤다. [2권]

주연의 부모는 주연이 괴로워하는 와중에도 진짜 부모로서의 역할이 무엇인지 몰랐다. 서은의 어머니를 찾아가 함께 밥을 먹고 온 주연을 되레 나무라는 아버지의 태도는 강압적인 어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주연의 아버지 역시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하며 어렵게 성장했다. 자신은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주연에게 많은 것을 누릴 기회를 주었지만, 결국 그토록 증오하는 아버지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만 것이다. ― 그나마 다행히 나중에는 이 점을 무척이나 후회하며 갱생의 의지를 가진다. ―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속담은 마음을 뜨끔하게 만든다. 자신이 아이였음을 기억하는 어른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구태여 어린 시절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나를 꾸중하는 직장 상사에게 "그게 왜 제 잘못입니까?"라며 항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말을 꺼내면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해 봤자 이득은커녕 손해만 볼 게 뻔하기에, 우리는 입을 닫고 입을 열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침묵을 지킨다. 그렇게 나 자신의 안위를 지킨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닫는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르는 어른들이 생각보다 많다! 물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말이 줄어들고 부모님과의 대화를 귀찮아하는 아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바로 나를 들 수 있다. 중학교 시절의 나는 엄마가 급식으로 뭘 먹었는지 물어보는 것조차 귀찮아서 대답하지 않았던 불효자식이다.


하지만 다만 농담이 아니라 아이들이 입을 닫는 것은, 마음을 숨기고 등을 돌리는 것은 그저 사춘기 시절 잠깐 지나가는 치기일 뿐이라고 넘길 일이 아니다. 부모들이 저지르는 가장 무지한 실수다. 그건 이미 아이가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대상에서 부모를 지워버렸다는 것과 같다. 어른들은 분명 아이였음에도 아이들의 마음을 모른다. 살아온 시대가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고, 또 부모와 자식은 아무리 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결국에는 '타인'이니까.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손 놓고 있다간 아이는 영영 부모 곁을 떠나갈 것이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는 이미 커버렸다. 발소리만 들려도 엄마와 아빠를 부르며 뛰쳐나와 품에 안기던 작고 여리고 따뜻한 아이는, 더는 나를 안아주지 않는 부모를 떠날 수도 있다. 그럴 능력이 있고 그럴 마음이 있다.


그러니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많은 사랑을 안겨주어야 한다.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과 지지와 격려를 보내야 한다. 나를 사랑해 준 부모를 매몰차게 떠나는 자식은 없다. 만약 있다면 부모가 과도한 보호나 지나친 엄격함을 사랑이라고 착각했거나, 그냥 자식이 이기적인 사람으로 자란 것이다. 잘못이든 뭐든 감싸준다고 사랑도 아니고 작은 일에도 호되게 꾸중한다고 사랑이 아니다. 일방적이지 않고 연결된 관계가 진짜 사랑이고 상호작용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기는 쉽다. 한 '인간'을 잘 키워낸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까다로운 일인가. 부모의 노력만이 아니라 자식 운도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결국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어린 시절에 느낀 사랑과 믿음으로 뼈대가 만들어진다.



이 책은 진실과 거짓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진심을 드러내지 못한 이들의 안타까운 말로이기도 하고, 한 번 무너졌지만 다시 일어나 이번에는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려는 가족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아이들보다도 미성숙하고 치기 어린 어른들이 비로소 진짜 어른, 진짜 부모가 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은 뭉클했다. 자식을 잃고 실의에 빠졌던 서은의 어머니 역시 힘들더라도 조금씩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다. 사랑하는 딸을 기억하기 위해.


혼자가 된 주연을 도와주는 사람도 하나둘 생겨난다. 주연은 서은을 떠올리며, 비록 자신이 많은 잘못을 저질렸고, 저에게도 "친구로 생각한 적 없다"는 차가운 말로 상처를 남겼지만, 여전히 유일한 친구이자 버팀목이자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서은을 떠올리면서 정신과 상담을 받고 고장 났던 마음을 조금씩 고쳐간다.


진실과 진심이 무시당하고 묻히는 순간은 무수히 많다. 세상은 진실을 궁금해하지도 진심을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진실과 진심이 사라진 세상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세상이든 진실은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인간의 마음이란 언제나 진심을 되찾는다. 작품 속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고 각자 다른 상처를 가지고 사는 이들의 마음도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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