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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Oct 16. 2024

때로는 고민이 사치

노선경 著, <엉망으로 살자> [에세이]


- 제목 : 엉망으로 살자

- 저자 : 노선경(팬티요정)

- 출판사 : 떠오름코퍼레이션



고등학교 때 친구로부터 생일선물로 받은 책이다. 저자의 필명은 '팬티요정'이다. 나의 필명인 '심야사'에 비하면 훨씬 귀엽고 개성적이고 특색 있는 필명이다. 저자는 유튜버 겸 일러스트레이터이지만, 나는 책을 선물 받았을 때도 지금도 저자의 유튜브나 일러스트를 제대로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책은 감명 깊게 읽었다. 고등학생 시절은 지금보다도 고민도, 생각도, 망설임도 많았다. 무언가에 푹 빠지면 거침없이 질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세상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싶어서. 하긴 당연한 말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데. 전 인류를 대충 분류하더라도 족히 부류가 백 가지는 나올 것이다. 나처럼 허허실실로 가만가만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열정을 불태우며 질주하듯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법.


책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다시피 '고민하고 망설일 시간에 뭐라도 하자! 인생은 한순간이고 청춘은 짧으니까!'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젊음의 유쾌한 긍정을 나타낸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지. 나도 아직은 젊다 못해 어린 나이지만, 젊음을 불태우는 삶은 버겁고 힘들고 벅차다. 늦게까지 놀면 어김없이 피곤하고, 밖을 돌아다니기보다는 집에 있는 게 훨씬 좋고,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행복하다. ― 물론 그렇다고 나의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기 싫다는 건 아니다. 우정이란 가장 완벽한 사랑. ―


삶의 목표 중 하나는 물 위를 흘러가듯 허허실실로 유유자적 살아가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건강한 식사를 하고,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동물과 함께 산다면 더 좋을 것이고…. 그야말로 한적한 시골 동네 같은 삶. 특별한 재미도 없고 새로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삶. 텔레비전에서 방영한다면 몇 분 보다가 지루하다며 금세 틀어버릴 것만 같은 삶. 그게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보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의 삶은 흘러갈 때까지 흘러갈 것이다. 그러니 내 시간이 흐르는 물결이 존재하는 이상 나는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미치는 삶


무언가에 미친 사람은 기괴하면서도 아름답다. 기괴함과 아름다움의 조합이라니, 이 또한 기괴한 표현이다. '미치다'라는 말에는 지나치게 열중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니까 미친 사람은 지나치게 열중하다 못해 자신의 모든 열의와 도전 정신을 불태우며 내달리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일지라도 마음에는 아주 뜨거운 열기가 장작 넣은 기관차처럼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에 미친 사람은 동경하게 된다. 삶의 에너지란 정말 대단하다. 저렇게까지 착실하게 살아 있을 수 있구나 싶다. 착실하게 살아가는 것과 착실하게 살아 있는 것은 다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안다는 건 분명 행운이다. 게다가 이루고자 하는 일을 확고하게 밀어붙이는 결단력과 실행력은 얼마나 멋진가! 나처럼 답답하고 느긋하고 우유부단한 사람 곁에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두 권의 책 중에서 무엇을 살지 한 시간 동안 고민하고 있으면 옆으로 다가와서 "그냥 둘 다 사자! 하나는 내가 먼저 읽고, 하나는 네가 먼저 읽으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사람. 친구라면 더 좋다. 그런 친구라면 어떻게든 곁에 두고 싶다. 물론 지금 내 친구들도 좋다. 정말 좋다. 자주 연락하지는 않지만 이건 진심이다.


이 책의 작가는 좋아하는 일에 제대로 미치는 사람이다. 책에서 마주친 첫인상부터 그렇게 느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망설임보다 행동이 먼저 나오는 사람. 고민하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사람. 인생은 마이웨이.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차곡차곡 모으기보다는 즐거운 지금을 위해 돈과 시간을 마음껏 쓰는 사람. 카르페디엠을 철저히 실행하는 사람인지라 나와는 결이 몹시 다르지만,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게 읽기도 했다. 작가의 인생 좌우명이 '뭐든 하나에는 미쳐있자'라고 하니 두말할 필요가 없다.



23p -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 분야에서만큼은 최고로 미친 사람이 되어라.

내가 했던 행동과 선택은 모두 당시에 자신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

무언가를 망설이다가 끝내 하지 못하고 돌아서면 어김없이 후회가 차오른다. 그래도 역시 한 번은 해볼걸, 시도라도 해볼걸, 그런 마음이 미처 다 빠져나가지 못한 물처럼 마음에 고여 있다. 무엇보다 하고 싶었던 일에서 그런 망설임을 겪으면 머릿속은 최고조의 갈등을 겪는다. 좋아하는 일마저도 이토록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새로운 삶을 꿈꾸면서 살아갈 수 있겠느냐는 자문이 드는 것이다.


어리숙했던 행동과 후회만 남긴 선택들. 떠올리기만 해도 얼굴에 열이 오르는 순간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는 건 역시 그런 말들이다. 그건 그때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고. 물론 아닌 것들도 있다. 더 좋은 행동을 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순간도, 더 나은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순간도 존재하나 지나간 일에 얽매인 후회는 앞으로의 내 삶에 걸림돌이 될 뿐. 다른 일에는 미지근하더라도 좋아하는 일만큼은 영혼이 불타오르고 싶다. 지금의 나는 불타오르고 있는가? 역시 나는 제정신이다. 아직 무언가에 미치지는 못했다. 미침의 영역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미치고 싶다고 미치지는 못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아직 예열이 필요하다. 언젠가는 제대로 미치기 위해서.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잠도 잊고 아침을 맞이해 버린 나에게 쏟아지는 그 찬란한 새벽녘과 아침햇살을 만끽하기 위해서. ― 나는 이 경험을 아주 드물게 겪어보았다. 그때 느껴지는 희열과 동시에 머릿속에 쏟아지는 졸음은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다. ―



30p - 노는 게 왜 낭비인가? 행복했던 추억은 열심히 살기 위한 인생의 연료다.

학창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하는 생각은 '좀 더 공부할걸'과 '좀 더 놀걸'이다. 이건 공부와 놂의 균형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비운의 학생이었던 사람이 가장 흔하게 하는 후회인데, 사실 중학교 때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고 반대로 고등학교 때는 성적과 미래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마음이 늘 불편했다. 방학에도 학교에 나가서 반강제로 공부를 했을 정도니까.


긍정적으로 남는 건 즐거웠던 기억이다. 힘겹게 달려왔던 시간 역시도 내게는 더없이 소중하다. 그렇지만 지쳐서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건 역시 행복했던 기억들. 친구들과 분식집에서 수다를 떨었던 기억, 방과 후에 교실에 남아서 함께 놀았던 기억, 시험공부를 하다가 편의점에 가서 저녁을 먹었던 기억, 책상을 붙이고 앉아 보드게임을 했던 기억…. 그런 기억들이 모여서 나에게 우정과 친구의 소중함을 알려 주었다.


생각해 보면 유년 시절도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나도 부모님으로부터 사랑받았던 기억은 상처받은 기억만큼이나 오랫동안, 색이 바래서 흐려지더라도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 있다. 아빠가 비행기와 목마를 태워 주었던 기억과 엄마가 나를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해 주었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바쁘게 살면서 부모님에 대한 걸 까맣게 잊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떠올라서 마음의 벽에 연달아 부딪히겠지.


찬란한 미래를 위해서라면 쉬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안다. 하물며 학벌주의와 자본주의가 팽배한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에서도 학원 안 다니는 애를 거의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공부 대신 노는 일에 치중한다니.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그리고 나는 그 '학원 안 다니는 애' 중 하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영어 학원이라도 다닐 걸 그랬나 싶은데, 그랬으면 지금의 내가 훨씬 망가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일어나지 않은 과정이니 결과 또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


하지만 행복한 기억이 없다면 얼마나 슬픈 삶인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중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현재를 갈아 넣어 만들어내는 미래와 과거를 투자하여 만들어낸 현재. 무엇도 불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며 사는 사람들의 인생을 모독하는 말이 된다. 우리는 꿈을 찾고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라고 말하지만,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 것 또한 우리다. 어른들은 꿈도 없고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아이들을 다그칠 자격이 없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기억을 많이 심어줘야 한다. 행복을 기억하면 그걸 잃어버렸을 때 찾아가는 길도 조금은 쉬울 테니까.


책을 읽다 보면 아무리 그래도 오늘만 보고 사는 건 조금 무모한 짓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작가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이전에 행해야 하는 책임과 역할을 강조한다. 애초에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는 건 부잣집에서 태어나 망나니로 자란 인간이 아니고서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건 가혹한 현실이다. 당장 나부터 돈을 벌기 위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해서 일을 한다. 먹고 싶은 걸 먹고, 사고 싶은 걸 사고, 원하는 만큼 저축하고, 원하는 만큼 기부하기 위해!


책임감이란 비단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마음이 아니다. 어쩌면 책임감이란 생물의 본능으로 탑재된 마음일지도. 무책임한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이 없다. 나의 삶에 주어진 책임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내가 여전히 나로서 살아 있으니까.



삶에 미친 사람의 이야기


중간중간 질의응답 방식의 글이 나온다. 예를 들어 "꿈이 뭐예요?"라는 질문이 나오면 "자연사요."라는 작가의 대답이 나오는 식(25p)이다.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산다. 뻔해 보이는 말이라도 가만히 생각하면 제법 해답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특히 살아가는 일에 고민 대신 Go를 먼저 외치는 이 책의 작가라면. 나는 망설임 없고 가치관이 확고한 사람의 이야기를 꽤 재미있어한다.



55p - 일단 당신은 어딘가에 쓰이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 두세요. 잘하는 걸 찾으려고 하지 말고, 재밌는 걸 찾아보세요 미치면 잘하게 될 겁니다. 잘 못하게 되더라도 재미는 있겠죠.

잘하는 일이 없어서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진다는 사람. 학교에서 자기소개나 자아성찰 학습지를 쓸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역시 '내가 잘하는 것'이나 '나의 장점'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교실에 있는 아이들 대다수가 그랬다. 몰래 친구한테 내 장점이 무엇이냐고 곤란한 질문을 하기도 했었다. 더욱 슬픈 건 '내가 못하는 것'이나 '나의 단점' 같은 건 많은 아이들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줄줄 썼다는 것. 언제부터 우리는 나 자신을 이렇게 각박하게 검열하는 방법을 배운 것일까?


사실 좋아하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는 건 각오나 다짐만으로는 쉽게 뚫을 수 없는 현실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지만 그만큼 큰 좌절과 우울을 이불 대신 뒤집어쓰기도 한다. 나는 내가 읽는 책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지 못하고, 글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큼 글을 잘 쓰지도 못하니까. ― 물론 나는 문예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고 재능인도 아니니 당연한 말이다. ― 특색 없는 나의 글이나 투박하고 미숙한 문체가 얄미운 날이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역시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안도감이 든다.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쓰이게 되는 순간이 온다. 어디로 가면 쓸모가 있었지만 또 어디에서는 소모품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결국 세상이 원하는 인재에 나를 맞출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딜 가더라도 나는 변하지를 않으니, 차라리 내가 맞출 수 있는 세상을 찾는 게 훨씬 빠르다. 다만 찾아내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또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92p - 내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다 나를 포함한 주변 환경의 거대한 협업이었다. 그 존재 자체가 베풂이었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당연하지 않다. 생각은 하지만 역시 피부로 직접 체감하기는 어렵다. 아마 내가 당연시했던 무언가가 사라지고 나면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날 것이다. 역시 나에게 주어진 것들은 당연하지 않았다고. 매일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할 존재였다는 것을.


종종 이 세상이 나를 키워냈다는 말을 떠올린다. 그러면 세상을 향한 염증이 번지다가도 문득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만났던 모든 이들이 나의 일부를 키워낸 존재라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애정이 생길 것 같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싱싱카, 그 싱싱카를 타고 달렸던 도로, 신나게 내달리는 나의 뒤를 지켜보던 엄마까지 무엇 하나 마땅하게 주어진 것은 없었다. 모든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에서 성장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내가 이만치 살아오는 동안 나를 돌보고 사랑을 안겨준 존재는 얼마나 많을까.



많은 사람이 현실적인 문제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꿈을 포기한다. 꿈을 이룬 사람을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는 이유는, 삶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실패해도 좋아하는 일을 해봤으니 실패가 아니라는 말은 가슴에 스며든다. ― 물론 하고 싶었던 일이라고 해도 사업 실패나 도박 같은 일 빚더미에 나앉는 경우는 조금 다르겠지만 ― 어차피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이니까 하고 싶은 일은 최대한 도전해 보고 떠나야겠다는 가치관이 좋다.


하기 싫은 일을 한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하기 싫은 일만 하면서 산 인생을 '성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어도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일 것이다. 하고 싶었던 일을 제쳐두고 해야 하는 일만 수행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훗날 생각하면 후회가 사무치겠지. 이제 와서 다시 도전하기는 너무 늦었다고 중얼거리면서. 그러나 도전에는 적정한 때가 없다. 내가 시작하는 그 순간이 바로 적정한 순간이다.



178p - 나에게 닥친 모든 상황은 큰 문제가 아니라, 그저 살면서 내게 잠깐 왔다가 흘러갈 일련의 사건일 뿐이다. 그것이 행복이든 불행이든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간에 우린 그 감정이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두면 된다. 행복이 찾아왔다고 해서 꽉 붙들고 있을 필요도, 불행이 왔다고 해서 외면할 필요도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솔로몬 왕이 떠오른다. 어쨌든 모든 건 흘러간다. 허무하기도 하고 평온하기도 하다. 나의 삶은 이제 막 태어난 영혼이 잠시 육체를 빌려 세상을 여행하는 시간 같다. 아주 괴롭고 힘겨운 여행. 산다는 건 역시 행복하고 즐거운 일보다는 우울하고 슬프고 화가 나는 일이 훨씬 많으므로. 그렇지만, 그럼에도 나의 삶을 우울과 슬픔과 분노만이 가득한 과정이라고 여기지 않으려 한다. 나는 그것들과 매 순간을 함께하면서도 그것들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니.


행복해도 나의 삶. 불행해도 나의 삶. 내 인생은 나만의 것. 그래서 나는 사람으로 태어난 김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느껴보고 싶다. 성실하게 맛보고 음미하면서 살고 싶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건 아직 내가 제정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제대로 미치지 않아서, 무언가에 미쳐서 나의 영혼까지 불태우는 지경까지 미치지 못해 이렇게 신중하고도 망설이는 것이겠지. 한 번 정도는 무언가에 미쳐보고 싶다. 내 마음이 활활 타고 나면 어떤 재가 남아서 나의 일부가 될지 궁금하다.


언젠가 이 책을 모티브로 해서 인생 엉망으로 만들기 프로젝트라도 진행하고 싶다. 물론 진짜 엉망진창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고, 돈을 많이 모아서 몇 개월 동안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이다. 하루종일 놀 수도 있고 새로운 공부를 할 수도 있고 여행을 갈 수도 있다. 꿈만 같은 일이다. 찰나의 순간이겠지만 그 순간을 평생에 걸쳐 남기고 싶다.


카메라와 물통과 공책 한 권을 가방에 넣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 해외는 무서우니까 전국 여행을 계획하고 싶다. 사진을 잔뜩 찍고, 사진을 출력해 공책에 붙여가면서 그날그날 일기와 떠오르는 시와 짧은 소설을 쓰는 것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여행일지가 탄생하겠지. 하지만 운전면허도 자차가 없으니 구석구석 돌아다니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열심히 걷자. 슬슬 자전거도 연습해야겠다. 몸이 기억하고 있을까?


나도 언젠가 엉망으로 한 번 살아보겠다. 좌충우돌 도전기가 인생 전반에 걸쳐 진행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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