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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Dec 08. 2021

점잖게 저물어가고 싶다.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신 그분처럼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어머니의 아버. 그러니까 나의 외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가 1년 하고도 몇 개월이 흐른 지금. 나에게 가까운 사람,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죽음을 맞이한 건 외할아버지의 부고가 처음이었다. 어머니와 이모들이 그토록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더 어렸을 적에는 작은 아버지의 부고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본가 식구들과는 얼굴을 본 지가 십수 년이고 여러 사정으로 인해 사이도 좋지 않은 상태여서 가족의 별세라는 느낌은 없었다. 먼 친척의 장례식에 온 것 같은 기분에 가까웠다.


옛날 시대 한자 표현이 그대로 내려와 흔히 아버지의 본가를 친가(親家), 어머니의 본가를 외가(外家)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집안은 정반대이다. 아버지의 본가가 바깥쪽에서 어색하게 머무른다. 어릴 때부터 방학마다 내려가 사촌들과 만났던 어머니의 본가가 훨씬 친근하고 편한 건 어쩔 수 없이 당연한 일이겠지.


나는 조부모님께서 어떤 분들이신지 정확하게 몰랐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른다. 내 눈에 그저 할머니는 할머니셨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셨다. 엄마와 이모들이 "할아버지는 ~하신 분이다.", "할머니는 성격이 ~하셔서" 같은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런 면도 있으셨다고? 무심하고 개인주의적―이기주의와는 엄연히 다른 말이다.―인 손주와 자식임에 늘 죄송하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야 그분을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시면 잠자코 들으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할아버지를 알아가곤 한다. 몇 주 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외할아버지께서 '점잖고 조용하신 분'으로 유명했다는 이야기다.




외조부모님께서 살고 계시는 곳, 어머니와 이모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은 전라도 모 도시에서 몇십 분을 들어가야 나오는 농촌 시골 동네. 시를 넘어서 면, 리, 마을까지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여담이지만 부모님께서 모두 전라북도 출신이셔서, 내게 전라도는 제2의 고향 같은 느낌이다.― 아무래도 '농촌에 살고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라고 하면 농사를 짓거나 밭을 가꾸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어머니 가라사대 외할아버지께서는 일하는 이미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몇십 년 전 작은 분교에서 행정실 직원으로 근무하셨던 할아버지는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도 농사보다는 마을을 산책하시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곤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반 농담으로 '한량'이라는 별명이 있으셨다고 한다. 나와 사촌형제들이 어렸을 때도 할아버지는 손주들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신나게 달리셨다.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연령 중 가장 어렸던 나는 막내라는 특권으로 언제나 맨 앞자리를 차지했었다. 앞사람의 등 없이 탁 트인 시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온몸으로 시원한 바람을 맞았던 그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주 소중한 추억이다.


할아버지는 면내나 가까운 읍내로 외출을 하실 때, 자식의 결혼식 같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하얀 구두를 신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또 하나의 별명이 'OO면 빽구두'―백(白)구두―셨다나. 상상해 보니 꽤 멋진 모습이다. 170대 중반이라는 큰 키에 정장을 입고 깨끗하게 닦은 하얀 구두를 신으셨던 할아버지. 가까운 우체국 직원에게 '점잖으시고 말도 조용조용하게 잘하셨던 분'으로 기억되신 할아버지. 죽음 이후에도 어떠한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 모두의 눈물과 그리움을 바람 삼아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신 할아버지.


생각해 보면, 그런 걸 바로 호상(喪)이라고 부르는 거라고 생각한다. 떠난 사람은 세상에 없지만, 그 사람이 남기고 간 삶은 어딘가에 기록되거나 기억되거나 새겨지고, 그 잔해가 모두에게 따스하게 남아 추억될 수 있는 것. 내가 죽은 후 남은 사람들이 나의 죽음과 삶에 대해 이런저런 뒷이야기를 나눈다면, 그건 마치 삶의 전면을 부인당한 기분일 것이다. 나를 그리워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좋은 모습으로 떠올리는 사람이 남아있는 세상. 그 세상은 내가 태어나 충분히 잘 살아왔다 자부할 수 있는 세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차분하고 점잖은 사람. 의젓하고 신중한 태도를 가지고 삶의 소중함을 음미하며 생을 보내고 싶은 바람. 이것이 나에게는 좋은 대학교를 나와 좋은 회사를 다니고 연봉이 높고 명예로운 직업을 가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우면서도 그만큼 중요한 삶의 가치로 다가온다. 아무래도 물질에 큰 욕심이 없고 검소한 성정을 타고나 이런 게 아닐까.


인생의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손위 형제가 나에게 인생을 재미없게 산다고 핀잔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는 돈은 쓰기 위해 모으는 것이고, 인생은 1분 1초를 즐기기도 아까운 순간이다고 말한다. 흥. 누가 그걸 모르나.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는데 말이다. 다만 조금 더 탄탄하고 안정된 기반을 다진 후 그 위에서 신나게 뛰어 놀 것이라는, 나름의 철저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자유로운 인생을 살았다간 1년도 지나지 않아 쫄쫄 굶어 객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어쩌면 어머니와 이모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로 외할아버지를 존경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처럼 진중하고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그렇게 사람들에게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누군가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이 삶의 방향이 되고 내가 원하는 모습이 나의 색깔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거짓과 위선으로 치장되지 않는다면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다. 결국 내가 그 모습을 온전히 '나'의 모습으로 만들 테니까. 나는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는 내가 될 테고.


점잖게 저무는 태양은 늘 마지막까지 밝게 빛났다. 지평선 너머로 저무는 해는 끝까지 아름다운 하늘과 찬란한 풍경을 남기고, 그윽한 달에게 세상을 선물하고 사라진다. 드넓은 하늘에서 밝게 살다가 천천히 노을빛 여명을 남기고 저무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 인생을 설계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삶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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