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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Jan 29. 2022

어쩔 수 없이 한숨과 눈물이 나오는 날이라면,

이 글을 다시 찾아오시오


2020년 6월 1일 화요일에 쓴 일기 중 일부.


미래의 내가 과연 오늘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한숨이 나오는 날이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렴풋이 예상은 가지만 아쉽게도 자세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마음의 둑이 워낙 약해서 대포 따위는 갖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이따금 날아오는 엄격하고 냉정한 화살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가 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아주 많다. 어제의 고민은 오늘의 갈등이 되고 오늘의 갈등은 내일의 걱정이 된다. 해가 달을 죽이고 달이 해를 죽이며 하루하루 살아가듯이.


좋아하는 게 많은 나는 싫어하는 것도 많다. 특히 말에 관해서는 더욱 그랬다. 결과가 안 좋으면 과정이 어떻든 소용없다는 말을 들으면 우울해지는 작고 좁은 마음. 듣고 싶지 않지만 들을 수밖에 없는 말들이 너무 많았다. 어긋난 퍼즐 조각처럼 구겨지는 마음을 견뎌야만 한다는 게 억울하기도 하다. 어른이 되는 게 이렇게 답답하고 힘든 일이었나? 좋은 결과만을 보고 달려가는 게 어른이라면, 나는 어른이 되지 않겠다. 평생 생각 없고 고집만 부리는 아이로 남아있겠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다.


나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 키는 크지 않지만 피부와 장기는 조금씩 늙고, 세상을 보는 눈은 날마다 달라진다. 세상에 태어나서 몸을 뒤집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다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처럼. 어물어물 단어를 옹알거리다가 문장을 말하고 생각을 말하게 된 순간처럼. 영아기,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나누는 인간의 생애 발달 중 하나에는 '상처를 입어도 참고, 부조리한 일을 보아도 못 본 척 넘기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면 조금 더 크고 싶은 마음에 성장하고 싶지 않은 욕심이 끼어든다. 그건 나쁜 일도 아니고 무책임한 것도 아니며 어른스럽지 못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 사실 난 내가 생각하는 어른스러운 사람이 될 수 없어서 환상의 어른을 동경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딱히 죄책감 느낄 필요는 없지.




2022년 1월 29일 토요일에 이 글을 쓰는 나는 여전히 힘들다. 사람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성인으로서, 어린 어른으로서, 자식으로서, 친구로서. 어디든지 힘든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한숨이 나오고 때로는 눈물이 나는 날도 있고. 직장에 적응하느라 힘들고 사회를 받아들이느라 힘들다.


매서운 바람에 넘어지면 눈물과 분노와 괴로움이 한껏 약해진 나를 쥐어패려고 저 멀리서부터 신나게 달려올 것이다. 어떤 날에는 그래 날 때려라 아이고 아프다 하면서 맞고. 또 어떤 날에는 야구 방망이를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힘들면 잠깐 쓰러져서 쉬다가 또 맞고. 힘이 생기면 다시 때리고 내쫓아버리고. 그렇게 하루하루 잘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버틸 수 없는 날이면 나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아이처럼 엉엉 울어줬으면 좋겠다. 강하고 굳건하게 자라주면 더 좋겠지만, 약하고 부드러운 나를 원망하지 않으면 더더 좋겠다.


그래도 나름 잘 버티고 있다. 직장은 처음 들어갔을 때보단 아주 조금 편해졌다. 업무에도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다. 앞으로 힘든 날이 더 많겠지만 괜찮다. 천천히 괜찮아지고 있다. 매일 일기도 쓰고 있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남기고 있고, 곧 이사를 가면 실내 사이클을 사서 열심히 운동할 거라는 멋진 계획도 세웠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나는 언제나 네 편이라는 걸 기억하기를.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어쩔 수 없이 한숨이 나오는 날이라면, 이 글을 다시 찾아오시오.


여기에는 그 한숨을 잘 넘기고 다시 천천히 세상을 걷고 있는 내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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