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들 속에 파묻혀 살면서, 사람 없는 세상을 꿈꾸다가도 결국 사람을 떠날 수가 없다.
온기는 따스한 기운이라는 뜻과는 어울리지 않게 느리고 드물고 더디게 찾아온다. 퍽 매정한 행보. 차갑고 무섭고 아프고 버거운 날에 비해 따뜻한 날이 찾아오는 빈도는 제법 드물다. 그리고 그만큼 한 번 손에 쥔 온기는 쉽게 잊지 않는다. 좁고 어두운 길목에서 혼자 피어난 색감 선명한 꽃 한 송이가 마음에 작은 꽃잎을 하나 떨어뜨리고 가는 것처럼. 담벼락에서 유연한 몸을 쭈욱 늘이며 기지개를 켜고 떠나는 고양이의 여유롭고 느린 걸음이 꼭 심장에 꾹꾹이를 해 주고 발자국 하나 남긴 채 떠나는 것처럼.
특히 그 온기를 사람에게서 느낀 날이면 미묘한 감정이 든다. 사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들 속에 파묻혀 살면서도, 정작 그 이유 때문에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한 명의 인간이 지닌 끝을 알 수 없는 가능성, 불완전하면서도 그렇기에 인간적이라 말하는 변덕스러운 감정, 성격에 상관없이 품고 살아가는 어떠한 인류애와 도덕심과 잔정은 나름대로 존중하고 경외하는 편이지만 그것과 사람 자체를 향한 애정은 조금 다른 부분이다.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타고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 이해와 존중 없이 팔다리를 마구 휘젓는 사람들, 종종 인간이 맞나 싶을 만큼―그와 동시에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잔혹하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무언가들을 보거나 생각하면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게 아주 좋은 일만은 아닌 것이다. 인간의 이지(理智)와 짐승의 본능을 엄격히 구별하면서도 결국 지성을 벗어난 감정에 휩쓸리고 마는 사람. 그중에서도 유난히 박약한 정신력을 타고난 사람이라서.
그렇기에 사람에게서 온기를 느끼면 조그마한 희망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다. 작은 일에 일비일희하는 사람이라 따뜻하게 데워진 기운을 만지는 순간도 작은 것들이다. 뒷사람이 오는 걸 보고 문을 잡아주거나 버스 하차벨에 손이 닿지 않는 사람을 보고 대신 버튼을 누르는, 지극히 사소한 사람과 사람 사이 배려에 불과한 것들. 그런데도 그런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거나 내가 직접 행하거나 받는 순간이면 마음이 간지럽다. 언젠가 버스 정류장에서 보호자 손을 잡고 걸어가던 서너 살 정도의 아이와 눈이 마주쳐서 장난스러운 마음에 가볍게 손을 흔든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본 아이가 나에게도 손을 흔들고 아장아장 걸어갔던 날처럼. 순수하고 마모되지 않아 내려가는 계단이 많았던 지하 집과 벽이 온통 시커먼 곰팡이로 뒤덮였던 집에서도 즐겁게 뛰어놀았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무언가를 따지고 가늠할 시간에 지금 이 순간의 기쁨에 충실할 줄 알았던 어느 때를 회상하듯이.
결국 나 또한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어느 한 사람인지라, 사람이 데우는 세상 속에서 존중과 긍정을 체감하며 살고 싶다. 사람 많은 곳에서는 시야가 어지럽고 정신이 피곤하지만 사람 없는 삶을 꿈꾸다가도 이내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외로움을 덜 느끼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 그래서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거창할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 그냥, 한 줌의 온기를 간직한 것만으로도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 세상이 따뜻하게 데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비겁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