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가린 채 모든 신체를 자유롭게 훤히 드러낸 사람, 팔다리 손발 머리카락을 은밀히 감추고도 눈만 드러낸 사람이 있다면, 나는 아무 말 없이도 후자와 훨씬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 소녀는 또 다른 영상을 보고 있었고, 소녀가 보던 또 다른 영상에서는 눈물 맺힌 사람의 까만 눈동자가 나와 온전히 화면을 채웠다. 그러자 그 영상을 보던 소녀가 울었다. 지금 가만히 그 장면을 곱씹으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째서 사람은 눈동자에서 그토록 많은 감정을 읽을 수 있을까. 비단 사람뿐이 아니다. 감정과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존재.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그 존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함께 느끼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말 그대로 착각에 불과하지만 그만큼 눈동자는 아주 커다랗고 미묘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아닌 나에게 '본다'는 행위는 태어나서부터 지극히 당연했다. 살아왔던 시간 동안 모든 순간을 보았다. 하물며 눈 감고 잠든 꿈에서조차 아주 많은 장면을 보며 살았다. 그렇기에 나는 세상과 나를, 사람과 나를, 세상과 사람을 잇는 가장 기본적인 매개체가 눈동자라고 여긴다. 사람이 말없이 눈만 마주치고도 마음을 알고 함께 웃거나 울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 것 또한 그런 이유일까.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훗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고백을 눈동자로 하고 싶다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아무리 잘 통하더라도 말없이 눈맞춤으로만 감정이 전달되길 바라는 건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그런 뜻보다는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감정을 전하고 싶을 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하는 말이다.
어째서 눈썹도, 콧방울도, 입술도, 귓바퀴도, 귓불도, 턱도, 손가락도, 손목도, 목덜미도, 머리카락도, 정수리도 아닌 눈동자가 그리도 사람의 마음을 울린단 말인가. 어째서 문득 마주치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리거나 당황한 티를 온전히 드러내며 시선을 피하게 되는 것일까. 반드시 시선이 존재할 필요도 없다. 시력이나 눈동자가 없더라도, 눈이 없는 사람이라면 눈동자만큼―또는 눈동자보다― 선명하고 아릿하고 구슬프고 활기찬 것을 가지고 있겠지. 나는 아무 소리 없이 호흡하다가 불현듯 눈이 마주치면 눈꼬리 접어 웃거나 눈물을 쏟아버리는 이들에게서 출처 모를 어떠한 동질감과 동경심을 느낀다.
일말의 인면식도 없고 서로 죽을 때까지 이름 하나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과도 종종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보통 그런 상황이면 재빨리 시선을 피하는 편이다. 시선이 닿으면 수많은 이들과 아주 멀거나 아주 가까운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나의 인생 구획선 안에, 아주 작고 희미한 사람이 하나 생긴 기분이다. 저 사람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생을 평생 동안 살아가겠지. 마치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멍하나 보다가 문득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 세상 어딘가에서 각자 인생을 살고 있다니!'라는 생각에 신기해지는 것처럼.
그래서 눈동자는 신기하다. 눈빛과 시선은 오묘하다. 수많은 감정과 무수한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버리기도 하는 그 작고 까만 동그라미가 좋다. 동공을 감싼 홍채는 전 세계에 수십억 쌍이 있지만 그 무엇도 똑같은 색깔이 없다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