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수많은 인간을 죽이고 파멸시키면서도 수많은 인간을 구렁텅이에서 건져냈을 것이다. 수치심이 없는 인간은 남을 해할 것이고, 자괴감이 없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해할 것이고, 죄책감이 없는 인간은 세상을 해할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신이 인간임을 버리지 않고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존재할 수 있게 만든 마음. 그 감정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안전장치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정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근이다. 어느 날 문득 수치심이라는 감정의 중요성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수치스러운 상황에 놓여서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어떻게든 나 자신에게 느끼는 부끄러운 감정을 잊기 위해 이런 자기 합리화 같은 생각을 한 걸지도 모르겠다.
수치심은 사람으로서의 인간성과 양심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중요한 감정이다. 우리는 수치심을 느끼기에 잘못을 반성한다. 감정적으로 행동했던 것을 후회한다. 나 자신의 언행을 부끄럽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은 내가 곧 사람 다운 사람이라는 증거다. 그와 비슷한 자괴감도 마찬가지다. 수치심이 남들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이 한심해서 느끼는 부끄러움이라면, 자괴감은 그 대상이 오로지 나 자신을 향해 있고, 죄책감은 남과 나의 경계를 넘어서 사회 전반의 도덕적인 행위와 인간으로서의 윤리에 국한되어 있는 것 같다.
사실 수치심, 자괴감, 죄책감의 명확한 차이를 모르겠다.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읽어 보았지만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아직 어렵다. 다만 세 가지 감정에는 감정의 발원지나 감정이 향하는 방향에 분명한 차이가 있고, 어떤 감정이든 모두 사람이 사람으로서 느껴야 하며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다만 문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과 범죄에 놓여 있다. 이런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느낀다는 것. 범죄를 저지른 인간 실격의 인간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는데 정작 굽힐 것 하나 없이 당당하게 살아야 할 피해자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수치심과 자괴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하는 세상에서, 이토록 무서운 세상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다. 그 비참하고 잔혹한 얼굴을 나는 도무지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다.
무언가에 절망한 경험. 솔직히 말하자면 특별한 게 없다. 사업에 실패한 적도, 몇 년 동안 준비했던 시험에 떨어진 적도,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적도 아직은 없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크고 작은 범죄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된 적이 있다. 사람을 염세적으로 바라보고 세상을 비관한 적도 있지만 그것이 모든 희망을 끊어버리는 '절망'까지 이어진 적은 없다. 절망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입에 담지 않는다. 절망은 죽음 끝자락에 존재하는 가장 마지막 관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을 이겨낼 힘도 우리에게는 있다.
그러나 간절히 바랐던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아 좌절하고, 있어야 할 무언가가 결핍되어 우울감에 시달리는 괴로운 시간은 알고 있다. 수시로 그런 감정을 겪는다. 그건 타인을 향한 삐뚤어진 증오나 질투심 때문이기도 하고, 부족한 나 자신을 향한 자책과 자괴감일 때도 있으며, 과거에 내가 저지른 실수 혹은 잘못에 대한 수치심과 죄책감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부족하고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 나는 평생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지 못한 못난 어른으로 남아서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수치심과 자괴감과 죄책감이 얼마나 소중한 감정인지 안다. 그것들이 나를 절망에 빠뜨리면서도 나를 '사람'이라는 간사한 바구니에서 버리지 않는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는다.
계절이나 시간 상관없이 불현듯 덮치는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떨쳐내기 위해 조금이라도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하기로 했다. 나를 잡아먹을 듯한 부정적인 감정은 글로 쓰면서 조금씩 버려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반쯤 충동적인 마음으로 시작한 미술 교과서 스크랩은 의외로 마음을 환기시키는 취미가 되었다. 소설이나 시를 쓰거나 나의 일상 또는 마음을 이야기로 만들어 글로 기록할 때마다, 나는 이것이 지금의 나를 가장 잘 붙잡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좌절한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절망했던 사람은 희망을 찾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니까. 그 과정은 험난하고 고통스럽고 또한 외롭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인간이기에, 사람이기에 때로는 수치스럽고 자괴감에 시달리거나 자책하지 않아도 될 일에 죄책감을 가진다. 그건 신이 나에게 준 마지막 자비이자 애정이다. 나는 신의 존재를 딱히 믿거나 입증하려 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신론 무관심주의에 가깝다. 하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그리고 신이 인간을 창조한 존재라면, 우리가 마주하기조차 힘든 감정들이 어쩌면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