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고 싶은 것은 내 손에 들어오기 한참 전부터 바라보고 있다.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치 그것만을 바라보면 품에 끌어안을 수 있을 것처럼 맹목적으로 달려든다.
하지만 잃는 것은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다.
나는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 그만큼 많은 것을 잃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많은 것을 얻고 잃어버린 내가 정작 나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무엇을 상실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 무언가를 얻었다기엔 두 손은 텅 비었고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기엔 내 마음은 이렇다 할 그리움 없이 공허하기만 하다. 뭔가가 열심히 채우다가 자꾸 떨어져 나가긴 했는데 그게 무엇이고 내게 무슨 존재였는지는 좀처럼 알 길이 없다.
어른의 사정이라는 말은 오묘하다. 어린아이 눈에 어른들은 얻는 것 없이 모조리 버리고만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표면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하다. 직관적이고 그 뒤에 숨겨진 어른들의 사정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아직 그만큼 세밀하고 깊은 내면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사정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어른은 아이만큼 미성숙한 어른일 것이다.
아이들은 단순하기에 예리하다. 아이 눈에 돈을 벌어오는 엄마와 아빠는 돈을 택하고 시간을 버린 어른이다. 엄마와 아빠가 돈을 버는 이유는 나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기 위함이다. 엄마와 아빠는 항상 나를 위해 일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는 나를 위해 돈을 얻으면서 정작 나를 버린다. 함께 밥을 먹을 시간도 없고, 새로 산 옷을 입고 놀러 가지도 않는다. 함께 밥을 먹어도 엄마와 아빠는 항상 돈 이야기만 하고, 함께 나들이를 가도 엄마와 아빠는 어느 순간 언성 높여 싸우고 있다. 시간과 부모님과 사랑을 잃어버린 아이는 돈을 싫어하다가 이내 그 돈에 매달리는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와 아빠의 곁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얻은 돈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어른은 경제적 책임을 다하는 어른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일에 열중하다가 잃어버린 시간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멀어진 아이와의 거리감은 평생 좁혀지지 않는 자기장이 된다.
돈을 버는 엄마와 아빠가 나라면, 내가 잃어버리고 나를 잃어버린 아이는 나의 모든 것이다. 내가 야금야금 갉아먹다가 땅바닥에 내버린 것들. 제대로 도전하기도 전에 포기해 버린 꿈, 현실적인 조건이 맞지 않아 내려놓았던 여행지, 뒤로 미뤄두었다가 영영 잊어버린 시, 평생 내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올 줄 알았던 건강, 어른이 되어도 항상 내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부모님, 소중한 사람을 만드는 마음, 그 소중한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와 마음, 남보다 더 몰랐던 나를 이해하고 들여다보는 성찰, 잠시 세상을 잊어버리고 나에게 가장 집중하는 시간…. 정말 모든 것들.
사라진 건 뒤늦게 잃어버리고 나서야 알아차리게 된다. 잃어버리지 않을 거라고 믿었거나, 잃어버려도 다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던 고래는 한 번 놓치면 그 자리에서 평생을 기다려도 다시는 볼 수 없고, 우연히 달에 가까이 다가간 금성을 지나치면 그 밤하늘은 내가 죽은 후에야 다시금 찾아온다. 사람은 때로는 착각에 휩싸인다. 뭐든 간절하게 원하면 얻을 수 있다는 착각.
사실 이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도박' 때문이다. 얻는 것을 위해 역으로 가진 걸 내놓는 모순적인 행위. 물론 범죄 영화에 나오는 도박은 당연히 아니다. 도박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곳곳에 아주 교묘하게 숨어 있다가도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뉴스에 나오는 억대 규모의 불법 도박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친구와는 만 원짜리 내기를 한다. 명절에 모인 어른들은 지폐와 동전을 모아 화투를 친다. 게임은 일정 확률로 아이템을 주는 뽑기로 과금을 유도한다. 특히 게임의 아이템 등장 확률은 극악 수준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어서 큰 비판을 산다. 아이템 등장 확률을 아예 0%로 설정해 두어서 뉴스에 보도된 게임 회사도 있다. 그건 유희를 위한 '일상적 도박'을 넘어서 명백한 사기 행위다.
나 또한 그런 도박에 잠시 눈이 멀었다. 20캐시를 지불하면 일정 확률로 최대 1만 캐시를 얻을 수 있다는 문구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혹하지도 않았을 텐데 어쩐지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소유였던 150캐시는 눈 깜짝할 사이에 10캐시로 전락했다. 잠시 눈앞이 아찔했다. 이게 '떡락'을 맛본 인간의 정신인가? 진심으로 잠시 정신이 멍했다. 마치 전 재산을 몽땅 날린 것처럼 말이다. 과장이 아니라 순수한 사실이다.
멍청한 도박으로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나는 내가 멍청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후회는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짓. 지나간 시간은 되감기가 불가능하고, 떠나버린 캐시는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생각했다. 사람은 얻을 수 있는 것만 바라보고 잃어버릴 것은 생각하지 않는구나. 설령 얻는 것과 잃는 것을 고민한다고 해도 끝내 이해타산적인 결말로 흘러가 버리겠지. 나도 내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툭툭 떨어뜨리면서 캄캄한 밤길을 헤매고 있겠지. 그러다가 문득 뒤돌아 보면 내가 잃어버린 건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조금 극단적일지라도 분명한 현실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참 무서운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