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야사 Feb 18. 2022

뜨거움의 기쁨

심장에 연탄불을 달고 태어났다고 믿고 싶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무척 유명한 시다. 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 정도는 어디선가 들어봤을 시. 안도현 시인이 쓴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는, 이 글이 맨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당시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 싶다. 나의 삶에서 불씨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실현하고 싶은 버킷리스트에 '무엇이든, 누구에게든 한 번은 뜨겁게 타오르는 사람이 되기'라는 문장을 넣어준 글이기도 하다.


나는 어떤 일에는 미적지근하다. 결코 천성이 무신경하거나 모든 일에 무던한 사람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 점점 나이를 먹고 겪는 세상이 달라지면서 조금씩 변했다. 하얀 눈이 내리면 눈싸움하고 눈사람 만들 생각에 신나서 달려 나갔던 아이는 이제 하얀 눈을 보면서 '출근길 너무 막히면 안 되는데. 추운데 길까지 미끄러워지겠네.'라고 생각하며 한숨 쉬는 사람이 되었고, 무언가에 타오르기도 언젠가 식어버릴 감정의 마침표를 가정하는 습관을 가졌다. 수많은 실망을 거듭하면서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 아픈 버릇을 가진 것이다.


온몸을 다해 뛰어들 용기는 없다.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찾아온다는 말은, 솔직히 조금 막연한 희망을 심은 풍선이다. 지나치게 부풀어 오르면 처참하게 터져서 찢어진 고무 조각만 남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모습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이 훨씬 많은 세상. 발을 디디기도 전에 어차피 나중에는 이 마음도 식을 텐데 생각하며 주춤한다. 정말 결과가 안 좋더라도, 쏟은 시간과 노력과 마음이 무색하게 아무것도 나오지 않더라도, 그때의 난 여전히 '좋은 경험을 했고, 뜨거운 도전을 했으니 그걸로도 만족한다.'라며 좌절과 막막한 현실을 넘길 수 있을까?


그래서 더욱 궁금한 것이다. 내가 미친 듯이 매달리며 달리는 순간은 언제일지. 그것은 무엇일지. 나의 꿈일지, 돈일지, 목숨일지, 사랑일지, 아니면 지금의 난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또 다른 무언가일지. 모처럼 건강한 심장을 가지고 태어났으면서 정작 한 번 불태우지도 못하고 식어갈 심장을 상상하면 그것도 마음이 아프다. ―여기에서 말하는 건강한 심장은 신체적으로 문제없는 심장이란 뜻은 아니다.―




하지만 한 순간이라도 뜨겁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고작 스무 살 먹고 20년 전 과거를 되돌아보는 말투가 우습긴 하지만, 어쨌든 나도 무언가에 열광하며 뜨겁게 사랑했던 순간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연예인은 고사하고 그 시절에 유행했던 가요도 잘 몰랐던 내가 갑자기 내가 살던 세계와 전혀 다른 세상에 빠졌던 순간. 그 순간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평소처럼 빈둥빈둥 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어느 무대 영상을 보았고, 청명하고 맑은 목소리에 놀라 홀린 듯이 뮤직비디오를 눌렀다.


그리고 순식간에 풍덩. 누군가 나를 바다에 떠민 것처럼. 잡음 하나 없이 깨끗한 비트와 신나는 멜로디가 얼마나 내 몸을 강하게 울렸는지. 이어폰으로 듣던 노래가 순식간에 귀를 뚫고 뇌를 잠식하고 심장에 내려앉는 기분이란, 일말의 과장 하나 없이 첫사랑에라도 빠지는 것 같았다. 이 사람들 뭐지? 이건 뭐지? 그리고 그렇게 내리 3년을 사랑했다. 나는 그들로부터 음악을 배우고 열광하는 마음을 얻었다. 팬으로서의 사랑을 깨달았다. 흔히 가수가 앨범을 발매할 때 대표곡으로 내세우는 '타이틀 곡'을 비롯하여 많은 수록곡이 함께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난생처음 가수의 실물 앨범을 구매했다. 지금이야 아이돌 그룹을 비롯한 가수가 한 번 앨범을 발매할 때 버전을 3~4개로 만들어서 판매하는 건 일반적이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2개의 앨범조차 너무 거창다. 어머니에게 부탁해서 샂 앨범 하나가 덩그러니 택배 상자에 담겨 왔을 때 설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커터칼을 쥔 손이 떨릴 정도로 기쁨과 기대와 행복에 가득 찬 아이였으니.


처음 그들을 봤던 순간도 기억한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평화로운 시절. 무려 10만 원이 넘는 금액을 내고 단독 콘서트 티켓을 손에 쥐었다. 난생처음으로 콘서트에 갔다. 음악을 들이마시고 분위기에 취하는 그곳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공연장 내부는 어둡고 갑갑했다. 그래서 더욱 뜨거웠다.


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응원봉을 들고 앉았던 좌석. 공연장의 조명이 완전히 꺼지자 그 안을 가득 채웠던 커다란 함성. 이윽고 조명이 빛나고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처음 마주한, 어린 청소년이던 나의 별처럼 멀고 태양처럼 빛나는 우상(Idol)은 아무리 봐도 실물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누르고 우렁찬 함성을 방패 삼아 마음껏 소리를 질렀다. 2층 좌석인 데다가 워낙 거리가 멀어서 정말 눈앞에서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고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 '함께'라는 단어가 이렇게 좋은 것이었나 생각이 들 만큼.


사실 연예인, 특히 아이돌이라고 하면 일종의 '만들어진 스타'라는 이미지가 있기도 하다. 어리고 철없는 학생들이나 따라다닌다는 시선. 아티스트나 뮤지션보다는 그냥 아이돌. 좋아하는 것 자체를 유치하다고 여기는 시선도 생각보다 흔하다. 어릴 때야 그러려니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아이돌을 좋아하면 그 나이 먹고서 애처럼 어리고 예쁜 연예인이나 쫓아다니냐는 핀잔을 듣는 것도 흔한 일. 왜일까. 아이돌은 말 그대로 누군가의 우상이 되고 동경이 되고, 어찌 됐든 하나의 꿈을 이룬 사람들이며,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을 텐데.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그때처럼 애정이 뜨겁지도 않다. 그룹 활동이 아닌 멤버 개인의 방향을 찾아가는 쉼표가 찍히면서 열다섯 살에 시작되었던 '열정 황금기'는 조용히 박수갈채를 받았다. 아쉬움과 기쁨과 섭섭함을 남긴 채 천천히 막을 내렸다. 이제 그들은 내 앞에서 타오르는 횃불이 아니라 저 멀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추억 속 북극성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다. 그때는 정말 질리지도 않고 하루 종일 그들의 노래 듣고, 그들의 영상을 찾아보면서 힘을 얻었다. 귀한 주말에 새벽같이 일어나 무려 지하철 첫차를 타고 서울까지 달려가도 괜찮았. 힘든 일이 있고 속상한 날이어도 그들이 있었기에 물렁하고 약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바로잡을 수 있었다. 미완성과 미완결이 괴롭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의 내가 힘들고 아픈 날이면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돌아보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것처럼.


그들은 그저 나에게 잠깐 좋아하고 마는 유치한 '아이돌 가수' 아니었을 것이다. 힘이 되고 웃음이 되고 위로가 되고 가르침이 되어 주었던 사람들. 나는 항상 그들에게 감사한다.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함께했던 시간도 잊지 않을 것이고, 그 마음은 항상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어쩌다 보니 추억을 회상하는 글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무언가에 뜨겁게 열광하고 마음을 쏟아부었던 순간은 그때를 제하고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없다. 글쓰기는 어떨까. 그 시절만큼의 애정과 열정이 존재할까. 오히려 갈증은 덜하고 욕심은 더하다.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지 알지 못한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 매달리고 있다. 마음 편히 온몸을 던지기엔 지나치게 깊고 어두운 공간이기도 하다.


뜨거워질 수 있다는 건 생명의 특권이다. 심장에 연탄불을 달고 태어난 사람의 소원. 어쩌면 무의식이 갈구하는 본능일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마음과 시간을 쏟고, 뜨겁게 타오르고, 식어가는 불씨를 보며 눈물 흘리고, 좌절하고, 후회하고, 무너지고, 그리고 다시 일어나 심장에 피를 채우는 모든 과정이.


어차피 모든 일에는 끝이 존재하는데 이렇게 매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으면서도,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항상 마지막을 상상하는 버릇을 가장 좋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결과는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끝을 보기 위해서 도전하고 시작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 마음에 담는 일 자체가 정말 어려우면서도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 믿는다. 심장에 아무도 찰 수 없는 연탄불을 피우고선 그 온기에 서서히 녹아들고 싶다.


뜨거워질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의미 없이 태어나 의미 없는 삶을 살며 의미를 찾는 일. 살아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그러므로 나는 더 뜨거워지고 싶다. 언젠가 시작도 끝도 생각하지 않고 불태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삐뚤어진 치아도 내 모습인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