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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Feb 01. 2024

생각할 수 없는 시가 싫어

자작시


나는 생각할 수 없는 시가 싫어


친구가 말했고 나는 깜짝 놀랐다


사실은 뜨끔한 것이다. 정곡이 찔려 구멍이 난 것이다


왜 싫은데?


떨리는 손을 반대쪽 손으로 붙잡아 숨기며 물었다


나는 상상할 수 있는 시가 좋아

아무런 장면도 떠오르지 않는 시는 싫어

갑자기 혼잣말을 했다가 허공이 말을 걸고

답장을 호흡으로 받고 파란 열매를 따 먹고

눈앞의 연인이 눈이 커다란 뱀으로 변하고

부모님은 괴물이 되고 하늘이 울렁울렁 토를 하고

해부하지 않으면 속뜻도 알 수 없는 문장들

그런 것들이 자기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어

나도 분명 초대를 받았는데 아무것도 즐길 수가 없지

그래서 싫어


사실 친구의 말 하나에 나는 구멍 하나를 만들었다


그래 그럼 앞으로 진솔한 시를 쓸게


그러자 친구가 놀라서 묻는다


지금까지 진심으로 시를 쓰지 않았어?


글쎄 나도 내가 그동안 뭘 썼는지 잘 모르겠지만


사실 나의 마음속에는 아무런 장면이 없고


그러니까 나는 보이지 않는 어느 가장자리의 보이지 않는 풍경과 아름답지도 않은 어느 감명을 쓸게


친구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역시 나는 생각할 수 없는 시가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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