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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Apr 04. 2024

왜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는가

자작시


왜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는가

인형에게 이름을 붙이고 가족처럼 친구처럼

소중히 여길 줄 알았던 아이는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슬퍼하고

이내 다시 일어날 줄 알았던 아이는

어째서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어른만큼 나약하고 겁 많은 존재도 없어

그들은 작은 화분에도 이름을 붙일 줄 모르고

인형은 쳐다보지도 않으려 하고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 한다

혹시나 손해를 보게 될까 무서워서

비눗방울에도 풍선에도 더는 설레지 않는 어른의 무료한 삶


아이는 어째서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힘차게 달릴 줄 알았던 아이는

추운 겨울날 손이 어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눈덩이를 던지고 굴렸던 아이들은

왜 어른이 되었다는 이유로 더는 그런 놀이를 하지 않게 되는가


어른은 왜 그런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가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는가

어른의 정의는 아무도 내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법은 죄의식 없이 어기고 살면서

어째서 어른의 법은 그렇게도 철저하게

어기면 당장이라도 어떠한 자격을 잃어버리는 사람처럼

노심초사하는가


경전철을 타고 달리며 본 아이들 풀밭을 뛰노는 아이들

꽃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에서 폴짝폴짝 뛰며

하룻밤에 한 마디 더 자라나는 아이들

영원히 순수하고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 없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야 하니까

어른은 순수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존재

그래서 불쌍한 사람들


왜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는가 어른이 뭐가 좋다고

어른은 왜 아이처럼 굴면 안 되는가

사실 우리는 여전히 아이를 속에 넣고 사는데

울고 싶다는 아이를 억지로 밀어 넣는 일은

사실 어른이 되면 안 되는 일

때로는 눈물도 흘리고 사랑도 하고 말도 하고

세상을 향해 웃어주고 남의 손을 잡아주기도 하는 게 어른이 된 아이의 일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어른은 여전히 아이를 품에 껴안고 산다

자식만큼 사랑해야 하는 어린 시절의 나

그 마음 내가 보았던 세상 즐거운 순간을 받아들일 줄 알았던 아이

너는 자랐지만 여전히 나에게 존재할까

때로는 어린 시절의 나는 완전한 타인이 되기도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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