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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Jun 07. 2022

길바닥

자작시


태어나기를 느린 발로 태어나

자꾸만 내 발에 내가 치여 넘어졌고

걸리고 넘어지고 일어서지 못한 것을 말미암아

그저 제자리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그것은 길바닥이 나에게 주었던 유일한 기회


지나가던 농부 아저씨가 다가와 혀를 끌끌 찬다

거 사람이 제대로 좀 걸어야지 그러믄 쓰나

달달 굴러가는 바퀴가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얇다

돌멩이 울퉁불퉁한 길에서 끌끌대며 떠난다

그의 수레는 언제까지고 달리고 있을까


조금 더 걸으면 갈림길이 나오고

그곳에서 넘어져 구멍가게 주인을 만났을 때

그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팥맛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이제 슬슬 제대로 걸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

그렇게 말하고선 전등 밑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글쎄 난 제대로 걷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발이 제멋대로 꼬이고 풀려버리는 것을

냇가에서 물수제비를 하던 아이는 내게 다가와

저는 좋아하는 아이가 넘어져 울 때 그 아이를 업고

새벽녘을 내리 걸어 마을까지 돌아왔단다


너는 길바닥에서 터질 듯한 숨을 품고 왔구나

잉태한 몸에서 빠져나왔을 때 비로소 가졌던 심장을

눈물 젖은 몸을 업고선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 쓰고

반듯한 걸음을 의젓하게 옮기며 코를 훌쩍거렸겠지

그리고 나는 다시 길바닥에 앉아 가만히 바라본다


해가 뜨고 지고 머리맡에 몇 움큼의 별이 뜨면

나는 또 어떻게 걷나 다시 넘어지지 않을까 불안해

그치만 걷지 않을 수 없어 나는 태어나길 느린 발을 붙잡고

다시 걷고 넘어지고 나와 같은 속도로 부는 바람을 따르고

어느 순간 고개 드니 모닥불 피어오르는 집이 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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