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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Jul 01. 2024

영원의 기억을 담아내고

자작시


사진집을 본다


나의 반대편 어느 나라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땅을 파고 파고 파 끝없이 내려가 정확히 반대편으로 솟아나면 있을 대지의 숲과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설원과 이름 모를 꽃봉오리 그 옆의 가지에 앉은 이름 모를 새 두 마리 서로 날개를 비비고 눈을 감고 얼굴을 맞대는 새 두 마리


옛날 사람들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의 모습을

자신이 서 있는 곳과 똑같은 자리 하지만 전혀 다른 땅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 이름 목소리 식성과 성격

다른 나라의 하늘 태양 구름 달 노을 나무 꽃 거리 냄새 음식 언어와 말 혹은 말과 언어


것이 무엇이든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집을 본다

새하얀 초원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독일과 핀란드와 베트남과 터키와 우즈베키스탄과 드넓은 땅과 바다와 숲들


시베리아의 광활함

대륙을 횡단하는 열차

빈틈없이 그러나 정렬되지 않고 늘어진 상록수들

누군가의 집 혹은 가게 혹은 거처 혹은 안식처

역사의 묘지 유골이 묻힌 땅


돌아가는 레코드에서 흐르는 음악의 제목은 모른다 언어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군가의 영혼 사이로 들어가 빛과 그림자의 간극을 좌우하고 존재를 증명했겠지 눈물이 스며들 때까지


나는 영원히 남을 기록을 본다

영원할 기억의 흔적을 눈앞에서 본다

가만히 앉아 지구 반대편을

같은 하늘 아래에 있는 다른 땅과 사람들의 모습을

그들이 이곳까지 가지고 온 삶의 냄새와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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