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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Aug 15. 2022

피가 굳어 뼈로 덮인 땅에서

자작시


참으로 이상하지 않니.

네가 말하면 나는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생생한 피가 차갑게 굳고

뼛가루가 먼지처럼 뒤덮였던 땅을 밟고 살지.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떠올리지 않아.

나 역시도 그렇지. 매번 그걸 잊은 채 살아가.


속이 빈 것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것인지

흐리게 충혈된 흰자위보다 갈색 홍채를 본다.

너의 이목구비에는 죄책감이 묻었다.

자유를 외치다 팔 하나를 잃고 시름시름 앓고

삶을 갈망하다 끝내 차가운 길바닥에서 떠났다는

외증조부의 짓눌린 살덩이를 기억이라도 하듯.


너는 달력에 선심 쓰듯 새겨진 빨간 숫자와

그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태어나 지금껏 무서우리만큼 고요하고,

그렇기에 치열하게 평화롭고 잔인한 곳에서,

지금껏 멀쩡히 숨을 쉬고 있음을 부끄러워했다.


나는 그 옆에서 말했다.

아니야. 이상하지 않아. 다들 그렇게 사는걸.

기억하지 않고, 느끼지 않고, 자각하지 않고.

그건 나쁜 일이 아니야. 나는 그렇게 말했다.

푸른 나뭇잎이 떨어진 길가에 멈추어 너를 보았다.


나의 발밑에서 언젠가 누군가의 몸이 얼었을까.

선혈이 낭자하고 눈물이 괴성을 지르는 곳에서

수많은 이들의 몸이 영혼을 잃어 시들어가던 땅.

문득 나는 그곳에 발을 디디고 눈을 깜빡인다.

너와 함께 생의 경이로움을 죄책감으로 껴안는다.




2021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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