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감래
스카웃 제의를 받고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직을 하게 되면 경력을 인정받기 때문에 대출회사에서 받고 있는 연봉보다 훨씬 많이 받을 수 있는데다가 단절된 경력을 연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력직으로 입사하면 가시적인 성과를 업무적으로 바로 보여줘야하기 때문에 자녀 계획을 한참 뒤로 미뤄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당시에 결혼한지 1년이 채 안되서 자녀 계획은 없었지만 앞으로 자녀가 태어날 경우 출산 휴가 및 육아 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장을 포기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남편과 이직문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어느 날, 이직을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있던 나에게 남편이 적극적으로 이직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5년간 쌓은 경력이 너무 아깝다는 이유와 함께 동종 업계에서 부부가 같이 종사하면 업무적으로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직을 권유하는 이유였다.
남편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하자면,
편입한 대학교에서 선후배 사이로 남편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학기 중에는 선후배 사이로 지내다가 졸업한 이후에 조심스럽게 교제하기 시작했다. 교제 당시 남편은 취업준비생 이었는데 내가 몸담고 있던 업종에 관심이 상당해서 나와 비슷한 업계를 중심으로 이력서를 제출하고 있었다.
교제한지 3개월정도 지났을까... 남편이 드디어 중소기업에 기술영업직으로 취업하게 되었다.
규모가 비교적 작은 중소기업에서 적은 연봉으로 시작했지만 기술영업사원으로서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남편은 본인 업무에 진심으로 늘 최선을 다했다.
취급하는 제품은 달랐지만 나와 동일한 업종에서 근무하게 된 남편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열심히 일했고 3번의 이직을 통해서 현재 대기업에서 같은 직종으로 근무하고 있다.
아무튼, 남편의 적극적인 권유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고 현재 외국계 회사에서 엔지니어로서 5년 넘게 근무하고 있다.
이직할 당시, 업계 호황으로 첫 3년동안 일에 파묻혀서 지냈을 정도로 정말 쉬지 않고 바쁘게 일했다. 주말에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집으로 노트북을 가져가서 종일 일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업무 강도가 무척 세서 감당하기 힘들 때도 있었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날도 많았지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업무적인 성장을 거듭했기 때문에 회사에 대한 만족도와 충성도가 꽤 높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곳으로 이직한 것은 나름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복지 부분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대기업에서 파견직으로 근무했을 때 정규직으로 전환되어도 보상받지 못했던 급여나 진급을 이곳에서 보상받았고 편입한 대학교의 학력도 인정 받았기 때문이다.
성수동의 작은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면서 오너로부터 상처를 크게 받아서 어린 마음에 트라우마도 생기고 대기업에서 파견직으로 근무하면서 학자금 대출금 갚아가며 학력을 업그레이드 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신성분 때문에 더 이상의 성장과 발전이 허락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 심한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중도에 직장을 포기하였지만 그동안 고군분투하며 노력했던 흔적들은 남아 있었기에 뒤늦게나마 현 직장으로 이직하면서 그동한 고생하면서 만든 경력을 보상 받은 것 같다.
물론 한번에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해서 수월하게 경력을 쌓은 분들도 계시지만 나의 경우 여기까지 오기까지 정말 너무 힘들었다.
최근 1-2년 사이에 우리 나라 경제가 안팎으로 심한 경기불황을 겪게 되면서 구조조정을 당하게 되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을 하고 싶어도 못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애 둘딸린 워킹맘이 아직까지 경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거의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다른 곳으로 이직할지 모르겠지만, 현 직장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여 역량을 발전시키고 성장한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초심을 잃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려고 노력중이다.
마지막으로, 쌍둥이 엄마가 되기 전까지 고생했던 고군분투기를 정리하면서 다음 글 부터 어떻게 아이들을 임신한 상태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전업주부가 아닌 워킹맘으로의 인생을 선택한 이유와 직장에서의 에로사항, 힘든 점을 공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