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자가격리, 2번의 응급실행, 그렇게 한 해가 끝

그럴 수도 있다.

by 메이

폭풍 같은 한 해였다.


2월에 다른 도시로 이사를 와서 13개월 둘째를 떼놓고 복직을 했고,

남편과의 갈등,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첫째 아들의 자가격리.

숨 막히는 상반기였다.

이때만 해도 온 가족이 집에 꼼짝 말고 있어야 하는 찐 자가격리였다.


하반기에는 첫째 아들이 태권도장 건물 앞 조형물에 기어올라갔다가 떨어져서 머리가 찢어져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가서 스테이플러로 머리를 꿰매었고,

스테이플러 심을 빼고 집에 온 날 아들의 유치원에 확진자 발생으로 두 번째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자가격리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유치원에서 유리창이 깨지면서 첫째 아들 팔에 깊은 상처가 나서 응급실로 또 출동했고 두 바늘 꿰매었다.

그리고 실밥을 풀고 온 다음날 태권 도발 세 번째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남편과 나는 휴가를 번갈아 쓰며 직장생활을 유지했다.

직장생활 10년 만에 처음으로 연가가 소진되어 코로나 3차 백신 접종으로 공가를 벌어오는 상황까지 생겼다. (그래도 다행이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정신없었던 하반기.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계속 크고,

내 앞으로 일은 계속 쌓이고,

산적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하지만 시간은 흐른다.


나는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성장했을까.

아니면, 무뎌졌을까.


겪어보지 않고 이해한다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작년에 도서관 수업에서 돌도 안돼 보이는 아가를 아기띠에 메고 6세 아이에게 집중하지 않는다고 소리소리를 지르던 그 엄마,

그때는 수업에 이상한 여자가 있다며, 같이 수업에 갔던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수군댔지만,

올해 2월 돌도 안된 아가를 재우는데 계속 문을 벌컥벌컥 여는 7살 첫째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내 모습을 보며 비로소 그 엄마에게 진심으로 미안했고, 아, 그 엄마도 도움이 절실한 사람이었구나 라며 다시 만나 토닥여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7세 2세 아들 둘을 데리고 개판이 난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는데 “쉬시는데 죄송합니다.”라고 직장에서 업무 관련 전화가 오면 날카롭게 “저 쉬는 거 아닌데요????!!!!!”라고 먼저 쏘아붙이게 되는 나를 그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겪어보지 않은 자들에게 이해를 구할 필요도, 이해를 못 한다고 분노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자기의 경험치만큼 이해한다.

그리고 그 어떤 경험도 버릴 것이 없고, 아무리 부정적인 경험이라도 그 시간을 이겨낸 것을 기록으로 남기면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는 사람에게 가이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기에 올해는

내 인생에서 그 어느 때 보다 힘든 한 해였지만, 나는 성장했을 것이다.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고, 애썼고, 노력했다. 그런 나를 인정해주자.


그리고 간절히 바라건대

내년은 좀 더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종식되진 않겠지만

그 속에서 또 새로운 의미를 찾으며 나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반짝반짝 빛나는 한해까진 되지 못하더라도, 행복하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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