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가 아니라
둘째에게 심한 자폐가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무렵 첫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학교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 돌봄 교실도 다녀오고, 태권도 학원도 다녀왔다.
하지만 교우관계가 좋지 않았고, 나도 학교 발령과 함께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하면서 첫째도 전학을 시켰다. 그때부터 메디키넷을 먹기 시작했다.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잘 다녀보자.
초품아인 이 아파트는, 게다가 놀이터뷰인 우리 집은 아이들과 어울리기 참 좋은 곳이다.
첫째에겐 많은 친구들이 생겼고, 또 그만큼 트러블이 있었다.
게다가 메디키넷을 먹으면서 몸무게와 키가 너무 안 늘어서 2학년 끝날 무렵엔 의사와 상담 후 단약을 했다.
단약하고 맞이한 3학년 때는 담임 선생님이 첫째의 문제점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시기도 하셨다.
- 수업시간에 멍 때리고 있다가 지시를 잘 못 따른다.
- 지시를 제대로 듣지 못해서 혼자 엉뚱한 활동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
- 선생님이 말하고 있을 때 불쑥불쑥 끼어든다.
- 몸을 자꾸 흔든다.
다 끄덕여지는 부분이었다. 역시 폭력성, 공격성이 없는 조용한 ADHD이구나. 그리고 다시 약을 먹일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메디키넷은 아니다. 부작용 때문에 끊었으니 다른 약으로 상담을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토목세틴을 처방해 주셨다. 아토목세틴은 식욕부진의 부작용이 없다고 하셨고, 효과도 그만큼 덜하지만 은은하게 효과가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맞이한 4학년.
가장 큰 변화는 동네 작은 영어학원을 다니던 녀석이 숙제가 많기로 악명 높은 대형어학원으로 3월부터 옮겼다는 것. 2월에 이 녀석이 잘 적응할까, 혹은 영어 트라우마 생길까 봐 노심초사했던 영어교사 엄마의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너무나 잘 적응했고 심지어 재밌다고 했다. 4학년 생활도 지금까지는 큰 문제없이 이어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두꺼운 줄글 책을 잘 읽게 되었다는 것이 큰 변화이다.
무엇보다 예쁜 말을 너무 잘한다. '엄마처럼 날 잘 챙겨주는 사람은 없을 거야.'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좋아' '나는 사춘기가 오지 않을 것 같아' 등등 눈물 적실만한 발언들을 쏟아낸 3월...
아토목세틴 덕 만은 아닐 테다.
그간 둘째도 심한 자폐에서 벗어나 경계선 정도까지 성장한 것을 보며, 둘째가 초등학교에 과연 완전통합으로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우리 첫째의 ADHD는 정말로,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너는 그래도 학교에서 잘 앉아 있었지. 게다가 그 내용들도 다 이해했지. 무엇보다도 너에게는 친한 친구들도 꽤 있어서 생일초대도 매달 받고 있지. 너는 정말로 훌륭한 아이구나. 우리 둘째는 그럴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이어지지 않고, 첫째가 그저 기특하기 따름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것.
그래서 첫째가 요즘은 눈물이 날 만큼 예쁘다. 사회성을 키워주겠다고 무리해서 낳은 동생이 이렇게 느린 동생일 줄이야... '엄마, 맑음 이가 말을 좀 특이하게 해서 친구들에게 놀림받을까 봐 걱정돼'라는 말을 하는 네가, 언젠가는 성인이 된 동생도 챙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내심 안심이 되기도 한다.
이번 주도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