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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희 Apr 03. 2024

에워싸고 에움길로

양귀자의 소설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들>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소설의 구성이 탄탄하다. 김밥 아줌마, 빵떡모자 아저씨, 김대호 씨 각각의 일화를, 작품 속 서술자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이 작품과 관련하여, 시험에도 많이 나오는 문제는 바로 제목의 의미이다. 왜 하필 사람들을 ‘길모퉁이’에서 만났느냐는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대로변에 있는 사람들은 별 노력 없이도 볼 수 있지만, 길모퉁이에 있는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여 살펴봐야 하고, 그렇게 봐야 보이는 소박한 우리네 이웃을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들’이라고 지칭한 것이라고 말이다. 이 소설에서는 이렇듯 주변에 있을 법한 우리의 이웃에 주목한다. 하긴 대로변에는 스타벅스, 베스킨라빈스 같은  대기업들이 떵떵거리며 자리를 잡고 있는데,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개인이 운영하는 꽃집, 찻집, 책방 등 소박한 삶들이 펼쳐지고 있으니, 소설의 제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


얕은 담으로 에워싸인 집들을 돌아 나 있는 작은 골목길은, 그런 의미에서 내 맘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에우다’는 ‘다른 길로 돌리다’라는 뜻이다.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 아니기에, 이 ‘에움길’은 앞으로 무엇을 만나게 될지 예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지난 주말, 북페어에 참여한 글방 동료들을 따라 제주에 갔었다. 제주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새벽, 산책길에 나섰다. 전날 낮에도 나는 이 거리를 걸었었다. 햇볕이 따가운 나머지, 표지판에 적힌 가장 가까운 용두암까지만 걸었었다. 다음 날 새벽에는 날도 선선하였기에, 조금 더 걸어가 보자 생각했었다. 용두암 너머에 있는 ‘용연’까지 가보기로 했다. 좁다란 길이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하며 구석진 곳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처음에는 별 거 없던 길이었다. 그런데 그 끝에는 노오랗게 핀 유채꽃이 한바탕 펼쳐져 있었고, 더 들어가 보니, 용연 계곡이 신비로운 에메랄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끝까지 걸어가지 않았으면 이 아름다운 것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에움길에서 우리는, 이렇듯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만나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 조금 더 가 보지 않으면, 뒤에 얼마나 많은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다리가 아파서, 햇볕이 따가워서 걷기를 포기했다면, 유채꽃과 용연의 아름다움은 내 기억 속에 자리 잡을 수 없었겠지. 하루 하루 내가 걸어가는 길이 쭉 뻗은 직선의 탄탄대로가 아니라면, 오히려 더 몇 걸음 가보겠다는 용기를 얻게 된다.


‘에우다’의 또 다른 뜻에는 ‘사방을 빙 둘러싸다’가 있다. 어린아이들은 왜 그럴까.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그 속에 숨어 들어가 있기를 좋아한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엄마가 방 한 켠에 의자를 두 개 놓고, 이불로 지붕을 만들어 주면, 그 안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하며 놀기를 좋아했다. 포근함 속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서겠지. 진화론적으로도 사람들은 자신의 뒤를 보호하고, 앞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잘 살필 수 있는 장소에 근거지를 마련하였단다. 그 버릇이 남아서, 카페에서도 뒤가 막혀 있고, 앞이 잘 보이는 구석진 곳부터 자리가 차곡차곡 채워진다고 한다.


운동 경기에서 서로를 응원하고 싶을 때도, 서로 어깨를 맞대고 빙글빙글 원을 만들어 도는 모습이, 나타나곤 한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에워싸고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미 승리한 기분이 든다. ‘에우다’라는 단어를 읊조리다가, 책에서 봤던 단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에우다이모니아’인데, 이 말은 그리스어로 ‘행복’을 뜻한다. ‘행복’에 대한 열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행복이라는 말에 ‘에우다’가 숨어 있는 건, 우연이 아닐지도… 혼자 있지만 영원히 혼자는 아닐 때, 든든한 울타리가 있을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닐까.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묵직한 한 방으로 악의 무리를 소탕하여, 위기에 처한 선한 사람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누가 너 괴롭히면 언니(혹은 이모, 혹은 쌤) 불러!”라고 말하면서 내가 그 아이를 에워싸는 상상을 한다. 운동도 전혀 안 하는 애가 싸움으로 정의로워지긴 글렀으니, 쫄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담대함만큼은 꼭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사람을 에워싸고, 에움길로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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