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따라 햇살도 바람도 딱 적당하여 기분이 좋았는데, ‘삑삑-’ 거리는 피리 소리 같은 소음, 아니 소음 같은 피리 소리가 들렸다. 화음이 전혀 맞지 않은, 정제되지 않은 여러 개의 피리 소리. 뒤를 돌아보니, 이제 막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 두 명이 리코더를 불면서 내 쪽으로 걸어 오고 있었다. ‘학교에서 리코더를 배우기 시작했나 보다, 그래 뭘 배우기 시작할 땐 저렇듯 몰두하게 되지, 우리 땐 리코더가 검정색이었는데, 지금은 분홍색, 초록색 .. 색도 참 다양하게 예쁘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이들의 리코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지 않았고, 열정적인 꼬마 연주자들이 참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연주하는 곡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내가 아는 멜로디여서, 하마터면 “아, 이 노래 ○○이구나” 하고 말을 걸 뻔했다.
바야흐로 리코더의 계절인가 보다. 수업 중에 리코더 수행평가 이야기가 나왔다. 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중학생인데, 중학생들도 아직 리코더와 함께하고 있다니, 리코더는 정말, 초등학교 때부터 쭉 함께하는 국민 악기가 아닐 수 없다. 국민악기와 함께했던 나의 학창시절 경험도 나누었다. 나는 음악적 재능은 정말 꽝이었다고, 남들 다 쉽게 하는 리코더 연주도 나에겐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고 말이다. 정말 그랬다. 손가락으로 구멍을 잘 막았다가 열고, 입으로 ‘투투-’ 바람을 불어 넣어 연주하기만 하면 되는 거라 생각했지만, 박자에 맞춰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음을 따라가는 게 참 어려웠다. 더군다나 자그마한 구멍 두개 중 하나만 열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구멍의 개폐를 담당하는 것은, 손가락 중에서도 제일 힘이 없는 새끼손가락이었다. 새끼손가락은 너무도 무력하여 힘도 잘 안 들어가는데, 자그마한 구멍을 컨트롤해야 하는 섬세한 임무가 주어진 거였다. 가진 능력에 비해 버거운 임무 앞에 새끼손가락은 최선을 다해 연주하다 쥐가 나기도 했었다.
연약했던 새끼손가락에게 주어진 너무도 큰 임무. 그 임무를 완벽하게 해 내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지라도 도망가지 않고, 숨지 않고, 그 임무를 잘 감당한다면, 너무나 기특하다 여겨지는 새끼손가락의 모습에서, 연약한 것들의 노력은 왜 이리 사랑스러울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주인이 우울해 보이면 살며시 찾아와 솜방망이 같은 발로 꾹꾹이를 해 주는 고양이의 움직임, 비뚤빼뚤한 글씨로 위로를 건네는 아이들의 손편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 말하고 싶을 정도로 아무런 도움이 안 되지만, 엄마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엄마를 도와주려는 아이의 고마운 뒷모습… 이런 것들에 나는, 연약하지만 강력한 힘을 확인하게 된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는 어릴 적 말은 느렸지만, 걸음마가 빨라 제 돌상에 올릴 떡 접시를 뒤뚱뒤뚱 날랐다는데, 기저귀 찬 빵빵해진 엉덩이와 함께 위태롭지만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을까. 어린 나는 참으로 귀여웠을 것 같다. (ㅋㅋ) 우리말에는 ‘괴다’라는 말이 있다. ‘특별히 귀여워하고 사랑하다.’라는 뜻을 좀 예스럽게 표현한 말이다. 우리 주변에 새끼손가락 같은, 귀여운 존재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의 모습은 보고 또 봐도 또 보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턱을 괴고 반복시청하게 되니, 사랑스러워 하는 마음을 ‘괴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어색한 일이 아니다. 돌상에 떡을 나르던 나를 바라보는 어른들도 모두 턱을 괴고 날 쳐다봤을까. 한 생명체가 이 땅에 태어난 후, 부족하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해 보려 노력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을 먹게 되었을 때, 그들은 다시 한 번 더 태어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착하게 커진 마음을 꼭 지켜 주겠노라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고 싶다.